스틸데일리 김영대 기자
스틸데일리 김영대 기자

철근 시장의 침체가 깊어지고 있다. 수요는 빠르게 줄었고, 가격은 한계 원가 이하로 내려갔다. 출하는 끊기고, 유통은 손을 놓았다. 제강사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모두가 위기를 말하지만, 현장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위기의 본질은 여기 있다.

요 근래 철근 시장에서는 감산 얘기가 끊이지 않는 중이다. 다들 감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곳은 드물다. “누군가 먼저 감산하면 나머지는 점유율을 늘릴 기회로 본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감산은 공감대가 아니라 경쟁의 도구가 된 듯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시장은 이상할 정도로 반복되고 있다. 가격이 급락하면 감산 얘기가 나오고, 일부가 생산을 줄이면 재고가 빠지고 가격이 반등한다. 그러면 다시 생산을 늘린다. 다시 가격이 무너진다. 불황을 피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익숙한 흐름을 반복하는 데서 안도감을 찾는 분위기다.

이쯤 되면 매너리즘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매너리즘은 단순한 관성이 아니다. 위기에 둔감해지고, 변화에 무관심해지며, 손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종의 ‘분위기’다.

구조조정은 복잡하고, 가격 방어는 어렵고, 수요는 더 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대응은 느리다. 가격을 낮추면 저가 판매라 비난하고, 출하를 막으면 눈치 싸움이 시작된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감산조차 전략이 될 수 없다. 경쟁을 피하려고 감산을 주저하고, 경쟁에서 밀릴까봐 감산을 회피하는 등 감산이 시장 안정의 수단이 아니라 시장 점유율 싸움의 변수로 활용되는 부분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철근 시장의 문제는 수요가 아니다. 수요는 줄어들 수 있다. 문제는 줄어든 수요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다. 공급이 유연하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수요가 줄어든 현 상황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더 이상 기다릴 것도, 계산할 여지도 없다. 감산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가 되어야 한다. 철근 시장이 다시 중심을 잡으려면,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감산을 실행해야 한다. 감산이 경쟁의 도구가 아닌, 시장 안정화와 공존을 위한 출발점이 될 때 비로소 시장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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