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속담에 ‘떨어지는 칼날을 잡지 마라!’, ‘칼날이 바닥에 박힐 때까지 기다려라!’라는 말이 있다. 하락장에 섣불리 뛰어들지 말라는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몇몇의 힘으로 시장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철강 시장에서는 몇몇의 의지로 시장의 흐름이 바뀌기도 한다. 지난 6월말 철근 시장이 그랬다.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잔기술로 움직인 시장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인위적인 가격 상승은 상승 동력이 약해지면 '스프링 백' 현상이 나타난 것처럼 그 전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감산이 느슨해지자 9월부터 가격이 약세로 전환되었고, 10월에는 폭락세를 보였다. 가만히 두면 인상분을 모두 반납할 기세다.
위기감이 팽배한 제강업계는 올해 들어 두 번째 시장 흐름 바꾸기를 시도할 것 같다.
우리는 향후 철근 시장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현 국면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지난 6월~10월까지의 시장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6월말 시장 흐름 반전의 힘은?
원동력은 절박감이다.
철근 유통 시세가 생산 한계 원가 이하로 하락하자 전 제강사가 생산을 극단적으로 줄이더라도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한국철강협회의 통계를 보면 7월 철근 생산은 59만 5천톤, 8월도 61만 7,000톤으로 올해 월별 생산량으로 가장 적었다. 생산을 줄이자 재고는 가파르게 줄어 8월에는 47만 8,000톤을 기록, 23년 4월 이후 가장 낮은 재고를 기록했다.
- 9월 이후 가격 하락 원인은?
제강사들은 수급 불균형과 판매 경쟁을 원인으로 꼽는다.
철근 시세가 어느정도 회복되자 제강사의 공장 가동률이 상승하면서 판매 압박이 커진 것. 제강사들은 각종 유인책을 제시하면서 움츠러든 유통을 움직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가격이 약세로 전환하자 유통과 가공업체들이 재고 조정에 들어가면서 낙폭을 키웠다. 특히 재무적 체력이 약해진 유통업체들이 자금 회전을 위해 저가 판매에 들어가면서 하락폭이 커졌다. 제강사는 제강새대로 유통은 유통대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적극적인 판매에 나서면서 큰 폭으로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1,000톤, 2,000톤 더 팔려는 노력이 가격 폭락으로 이어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우리는 최근 제강사의 가격 인상 움직임이 어느정도 시장에 침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근 가격이 한계원가 이하로 떨어진 곳이 있고, 지난 6월말 보다는 약하지만 가격 인상에 대한 절박감이 철근 시장 전반에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격이 오르겠지만 11월 시작 가격이 제강사가 원하는 75만 원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제강사들은 작금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선 단기 가격 정책 외에 장기 전략도 수립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 정면으로 마주하기 싫지만 정해진 것들
- 제강업계의 집단 지성은?
한국의 철근 생산 능력은 1,200만 톤이 넘는다. 2010년 이후 최대 생산은 2017년의 1,130만 톤이고, 가장 적었을 때는 2010년의 877만 톤이다. 올해 8월까지 생산은 531만 톤이어서 아마도 연간으로 800만 톤 넘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되면 가동률은 60%대 초반에 불과할 것이다. 건설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제강사에게 감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생산능력을 줄이지 않으면 생산이 조금만 많아도 가격이 폭락하고 적자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 살얼음 시장이 이어질 것이다.
단기적으로 제강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지난 7월처럼 유기적 감산인가? 아니면 9월처럼 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면서 각개 약진을 할 것인가(?)이다.
전자를 선택한다면 수요 예측력을 높이고 예측에 대한 업계의 컨센서스 형성이 중요하다. 함께 감산할 것이라는 동업자 의식이 필요하다. 후자는 한계 원가 이상이면 경쟁하고 그 이하이면 감산하는 작금의 고통스러운 일상의 타임 루프를 타게 될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제강업계의 집단 지성에 달려있다.
- 퇴출의 순서는 정해져 있다!
유기적 감산을 하던 경쟁을 하던 제강업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인구의 감소와 건설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축소를 생각하면 철근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철근의 잔존 수요가 700만 톤이 될지 800만 톤이 될지 분석을 해 봐야 하겠지만 한해 1,000만 톤 이상 생산되던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모든 철근 시장 참여자들이 동의하는 것이다.(통일이나 남북 경협 같은 특수가 없다면 말이다.)
따라서 60~70%대 가동률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자 현실이다. 제강사 내부적으로는 감산의 일상화로 인력과 설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몇몇 제강사의 퇴출 가능성도 있다.
퇴출이 된다면 순서는 정해져 있다. 1) 현금 창출력 2) 원가 경쟁력 3) 마케팅 능력 4) 규모의 경제 등에 따라 퇴출이 결정될 것이다. 대형 제강사는 현금 창출력과 규모의 경제, 마케팅 능력에서 우위에 있고, 중견 제강사는 원가 경쟁력에서 앞서 앞서있다. 치열한 생존 경쟁 시장이 도래하면 시장의 주도권은 대형 제강사가 쥐게 될 것이다.
- 유통의 구조조정도 임박했다.
철근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곳이 철근 유통이다. 철근 수요의 감소는 자연스럽게 제강사의 영업력 강화, 특히 건설사 판매 비중 확대나 전자상거래 활성화처럼 중간 유통상을 배제한 거래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연스럽게 철근 유통시장의 축소로 나타날 것이다. 또 철근의 공급과잉은 유통업체의 수익성 저하로 이어지고 유통의 구조조정으로 현실화할 것이다.
낮은 철근 수요는 1) 건설사 중심 시장 구조의 안착 2) 수요에 맞는 생산과 원가 중심의 가격 구조가 지배하는 시대의 진입을 의미한다. 구조조정이라는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철근업계가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 낮은 철근 수요가 지배하는 시장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톨스토이의 지적처럼 철근업계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불행을 낳을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하나라도 남겨두면 행복해질 수 없다. 지난 몇 달간의 철근 시장을 복기해 보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시장 참여자 모두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리고 철근업계는 제거할 능력을 갖고 있다.
“케이크를 먹으면서 살을 뺄수 없다.” 이것이 철근업계가 직면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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