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잃어버린 3개월 (feat.가격 급락)
올해 2분기 고점에서 계약했던 물량들이 입고될 시점에 수요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가격이 급락했다. 올해 3~4월 국내산 304 냉연 정품은 톤당 470~480만원까지 치솟았으나, 7~8월 재고 부담과 수주 절벽에 부딪히며 톤당 400만원 아래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수요가 얼어붙으면 제 아무리 AD 규제 국면이라고 해도, 가격이 급락하면서 손실 판매를 할 수 있다는 걸 전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그리고 포스코 등 메이커들은 30%에 가까운 감산을 결정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이는 비단 국내산 제품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수입재 역시 AD 규제 속 최저가격 영향으로 가격이 1개 분기 후행하는 가운데 가격급락이란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까지 고공행진하면서 6~8월 수입업계는 톤당 70~100만원 이상의 손실을 보면서도 자금회전과 재고 소진을 위한 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최근 2년 여 넘게 가격 상승 국면을 이어왔던 스테인리스 시장은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 수요 부진의 벽에 부딪히며, 올해 6~8월 공급자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3개월을 맞이했다.
#2. 요동치는 시장 (feat. 가격 파동)
국내를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오히려 경기 침체에 대한 적신호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시장의 수요도 여전히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던 중 태풍 힌남노가 예상을 뒤엎고 포항을 강타했다. 포스코의 포항제철소 침수 피해로 일주일 이상의 시간 동안 공급자와 수요가 모두 패닉을 맞이했다. 포스코가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복구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시장에서는 포스코의 재가동 여부와 시점을 두고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했다.
포스코에서는 여러 차례 시장을 향해 가격과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란 시그널을 보냈지만, 시장에서는 구체적인 공급 계획이 발표되지 않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동시에 3~5개월 정도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범용재의 경우 2~3달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던 업체들의 스탠스도 바뀌기 시작했다. 불과 1~2주 사이 한두 달 정도도 안 되는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부득이하게 단가를 인상한다고 안내하는 곳들이 늘어났다. 시장은 대체 무엇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3. 뫼비우스의 띠(feat. 수요절벽)
포스코는 침수 사고 이후 가격 인상에 나서지 않았으며, 10월 가격도 동결로 스킵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통시장의 가격은 공급불안 심리와 가수요가 합쳐지며 종전대비 50~60만원 이상 올랐다. 열연 제품과 특수강종의 경우 더 높은 인상폭으로 오르자 시장의 우려감은 더욱 커졌다. 한쪽에서는 가격정상화라고 언급하고, 한쪽에서는 공포심리 조장에 따른 지나친 인상폭이라고 평가했다.
단순히 타이트한 재고 상황과 몇 개월 내로 포스코의 생산과 공급이 정상화 되지 않을 것이란 불안 심리가 아닌, 매입원가와 제조비용, 환율, 오퍼가격 등을 고려하여 수입재와 국내산 판매 단가를 별개로 나눠봐야 하는 지점은 있다. 수입재와 국내산의 인상 시점과 이유가 비슷한 듯 보여도, 전혀 다른 마진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끝을 모르고 급상승하던 니켈도 제품가격도 결국, 수요 절벽 앞에서 무너졌다. 상반기에는 러우 전쟁과 청산발 초유의 니켈 사건으로 전 세계 시장이 과열됐다면, 하반기에는 포스코의 침수 사고로 국내 공급자 측과 밀접한 시장에서의 과열 양상이 발생했다.
포스코의 침수 전후를 비교했을 때 수요단에서의 회복 움직임이나 물동량 변화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가격 상승기 때와 현재 시장의 분위기와 주변 기류는 동일시 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4. 역사는 반복된다
수요가 측과 밀접한 시장에서는 올해 상반기 유통업체들의 단가 인상 선반영 움직임에 우려의 시선을 한 차례 보낸 바 있다. 톤당 480만원에 육박한 304 스테인리스 냉연 범용재를 평소와 다름없이 매입하여, 제품 제작을 지속할 수 있는 실수요 업체가 많지 않다는 것은 업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소재 원가 비중이 높아질수록 완제품의 가격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게 되어 결과적으로 대체재를 찾아 수요 이탈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물론 현재 냉연 가격은 그 당시 수준까지 치솟진 않았다. 그러나 침수 사고 이후 유통시장에서 제시된 450~460만원이란 가격도 경기 침체 국면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동하게 된다. 스테인리스 냉연 1코일당 가격은 다시 9천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금번 사고로 생산 차질이 발생한 것 맞지만, 포스코에서는 공급과 가격의 안정을 위해 유통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확보된 물량들을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포스코의 언급대로 범용재의 공급 우려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결국 시장의 가격은 언제나 그랬듯이 수요가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은 호황은 지속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건 잃어버린 3개월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니라, 국내외 경제와 경기 흐름에 대한 정확한 판단 능력과 다양한 출구전략 그리고 빠른 선택과 결단력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