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테인리스 업계가 최근 2년간 겪고 있는 침체는 단순히 ‘불황’이라는 표현으로는 설명이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기준 스테인리스 냉연의 명목소비는 100만 톤을 겨우 웃도는 수준으로, 이마저도 40%는 수입재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수 판매량만 놓고 보면 시장 자체가 상당히 위축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들어오는 저가재를 막기 위해 반덤핑이라는 최소한의 방어막을 쳐놨지만, 결과는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분기별 최저가격 기준선을 두고 가격이 오르내리는 사이, 연간 30만 톤에 가까운 쿼터는 시장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국산 소재의 가격 경쟁력은 각종 원가 상승에 발목이 잡혔고, 중소 실수요 제작업체들은 매입원가 부담으로 일감이 크게 줄었고, 이는 중국이나 베트남, 대만 등에서 최종 완제품 혹은 중간 소재 수입 증가로 이어졌다. 특히 매입원가 경쟁력의 자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업계 전반은 이윤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결국 최종 수요처들의 일감마저 야금야금 줄어드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베트남산 스테인리스 냉연 반덤핑 조사는 지난 4월 24일 최종 판정에서 일부 밀에 18.81%라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최종 관세 부과까지의 시차를 노린 베트남산 수입이 크게 늘었고, 다른 국가들에서의 수입재들도 국내 제품과의 벌어진 가격차를 앞세워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포스코가 올해 상반기 제강과 2열연 대수리로 일부 감산을 했음에도 수입재 증가와 수요 급감으로 공급 과잉 상황이 지속됐다.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국내 가공센터들은 5~6월 내수 매입량을 크게 줄였고, 메이커들은 달마다 출하에 비상이 걸렸다. 반면 같은 시기 수입량은 오히려 늘어났다. 이 재고가 소진되려면 9월까지는 가봐야 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급 과잉과 수요 급감이라는 모순된 풍경은 7월 이후에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시야를 넓혀보면, 국내 만의 문제도 아니다.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시장 전체가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빠져 있다. 각국은 보호무역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관세와 인증 규제로 무장하며 상대국들의 숨통을 조이는 중이다. 내수 부양과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세계 각지에 투자해 놓은 설비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테인리스는 갈 곳을 잃어가고 있다.

생산업체들은 시장 방어에 사활을 걸고, 내수 유통사들은 재고 부담을 떠안으며 버티는 중이다. 단순히 막고 버틴다고 능사는 아니다. 제조 및 수요업체들이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이 필요하다. 각자의 포지션에서 모두가 절박한 상황이다. 이 절박함이 서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야 하지만 묘책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제조업의 시대가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한다. 작금의 바닥 시장의 수요 업체들이 처한 현황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반덤핑과 보호무역의 칼날 뒤편에서, 진짜 경쟁력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시장을 지킬 수 있을지를 다시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금리가 인하되고 경기가 회복된다고 해서 다시 돌아올 수요가 아닐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수요 자체가 크게 감소한 원인과 현실을 직시해야 하며, 단기적인 무역 구제조치와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수입 방어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 어렵다. 업계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경쟁력 있는 원가 구조의 회복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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