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강자원협회가 지난 4월 28일 총회를 열었다. 수도권 모 골프장에서 30개팀 120여명이 참석했다. 몇 년간 보았던 철 스크랩 관련 행사 중 최대 규모이다. 참석자 면면도 주요 스크랩 야드업체 대표는 물론이고, 유관기관 임원과 철강 전문지, 장비업체 임원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협회는 소속 회원사의 친목과 권익을 대변하는 곳이다. 혼자서 할 수 없는 것,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곳이기 때문에 협회의 일은 ‘정당성’과 ‘대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총회는 한국철강자원협회가 철 스크랩 산업 내에서 갖는 지위를 보여주었고, 대표성이 있는 조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이번 총회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만간 열릴 미국의 ISRI나 일본의 JISRI 총회에 비해 규모와 내용에서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번 총회는 내용면에서 ‘골프 행사화’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협회의 사업은 친목에서 시작된다. 올해 총회는 골프 행사 중심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여느 때보다 많은 회원사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매우 성공적인 총회였다. 지난 몇 달간 황호정 회장이 전국의 회원사와 가진 소통과 사무국의 노력이 거둔 결과여서 한계만 보고 폄하해서는 안된다.
# 친목 중심에서 정책 중심으로
이번 총회는 한국철강자원협회의 과제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많은 스크랩 업체들은 여러 모임을 갖고 있다. 골프 모임만 해도 철우회니 스틸샷이니 지역별로 많다. 협회가 친목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굳이 협회라는 틀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협회가 존재 이유를 확인받기 위해선 업계의 발전을 지원하고,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것, 철 스크랩 산업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활동을 해야 한다. 철강자원협회는 사업의 중심이 친목에서 정책으로 발전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철강자원협회를 둘러싼 환경은 매우 우호적이다. 세계적으로 탄소중립과 환경이 현안이 되면서 스크랩 산업의 지위는 수직 상승 중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스크랩 산업 정책이 철강 산업 정책의 종속 변수이다. 철강 업계와 스크랩 업계의 이해가 항상 같을 수 없지만 정부의 정책은 거의 대부분 철강 산업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창 진행중인 ‘상생 포럼’이다. 철강산업의 발전은 얘기되고 있지만 스크랩 산업의 발전 논의는 찾기 어렵다. 스크랩 산업의 발전도 철강산업의 발전을 위해서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스크랩 관련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협회의 지위, 한국사회에서 스크랩 산업이 갖는 지위가 낮은 탓이다.
한국철강자원협회가 스크랩업계의 이익을 대변하고 소속 회원사들이 협회의 존재를 느끼기 위해선 협회가 스크랩 산업의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1) 협회의 재정 확충 2) 정책 개발능력 향상 3) 통계 등 협회만 할 수 있는 고유의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철강자원협회는 정책 협회로 발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총회 자료집을 보면 올해 협회 예상 수입은 1억 7,000만 원이고, 지출 계획은 1억 8천 만원이다. 물론 협회 운영이 돈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정한 사업비 책정은 사업의 기본중의 기본이다. 재정 확충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 사업 발굴과 참여에도 회원사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나 황호정호 출범 후 수개월이 지났지만 홈페이지 개편 외에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철강자원협회에 대해 일부 회원들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거나 “왜 협회가 존재하는지 모르겠다”와 같은 무용론을 말하곤 한다. 지난해에는 회장 선출을 못해 협회 해산 가능성도 얘기된 바 있다. 협회가 친목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무용론은 계속될 것이다.
# 협회의 수준은 소속 회원사가 결정한다.
철 스크랩이 사회적 중요성에 걸 맞는 대우를 받는 가장 빠른 길은 협회가 정책 중심의 협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책 협회가 되기 위해선 회원사들이 협회에 무엇을 요구하고, 협회를 통해 업계의 공동의 발전을 모색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침묵하는 국민에게 국가는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회원사들이 협회에 무엇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협회가 정부에 어떤 것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철 스크랩 산업이 탄소 중립과 환경의 시대에 맞는 지위를 갖기 어렵다. 특히 재정도, 인력도, 사회적 인지도도 부족한 한국철강자원협회가 스크랩 산업의 중심에 서기 위해선 회원사의 적극적인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의 수준이 그 나라 민주주의의 수준이듯 한국철강자원협회의 수준이 한국 스크랩 업계의 수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크랩은 지난 수 십년간 음지에 있었다. 지금은 양지로 나와 스스로 지위를 찾아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