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앤스틸 손정수 대표
스틸앤스틸 손정수 대표

한국철강자원협회가 표류하고 있다. 임순태 회장이 2연임을 마치고 새로운 회장을 선임해야 하지만 선임에 실패했다. 회장을 하겠다는 인사가 없어서다. 지난달 정기총회에서는 협회 해산까지 언급될 지경에 이르렀고, 4월 중에 임시 총회를 열어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지만 아직 마땅한 인사를 찾지 못한 눈치다.

꼭 회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를 대표할 얼굴도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현재의 철 스크랩 산업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아 관계자들조차 몹시 씁쓸해 하는 것 같다.

# 철 스크랩 산업은 전환기에 있다. 철강산업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탄소를 다량으로 배출하도록 설계돼 있다.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광석(Fe2O3)에 붙어 있는 산소를 제거해야 했고, 제거에 가장 흔하게 쓰이는 것이 탄소였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인류는 수 천 년간 탄소 덩어리인 석탄으로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쇠보다 많은 탄소를 만들어냈다. 

한때는 국력의 상징이었던 철강산업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기후 위기로 ‘빌런’이 되었다. 철강 기업들이 탈 빌런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수소'와 '스크랩'이다. 수소는 멀리 있고, 스크랩은 가까이 있다 보니 스크랩에 대한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코 등 주요 전기로 업체들이 철 스크랩 업체를 인수하기도 하고, US스틸 은 전기로를 늘리고 있다. 일본에서도 일본제철과 JFE스틸, 도쿄스틸이 경쟁적으로 전기로 투자를 발표하고 있다. 전기로 투자 확대로 전세계 스크랩 교역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조차 수출 여력이 고갈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러시아처럼 스크랩을 자원으로 보고 수출을 규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Scrap is King”이라는 간단한 영어 문장이 작금의 스크랩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 한국 정부와 철강사들도 바빠졌다. 정부의 제안으로 한국철강협회가 중심이 되어 전기로 경쟁력 강화 방안이 모색 중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에 철 스크랩 산업의 실태 조사가 이루어졌고 발전 방안이 제안되었다. 나아가 제강사와 철 스크랩 업계 사이의 상생을 위한 “포럼”도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연구 개발도 한창이다. 한국금속재료연구조합은 탄소 중립과 전기로 빅 데이터 등에 수천 억 원을 쏟아 붇고 있다. 새로운 전기로를 개발하고 있고, 이에 맞춰 철 스크랩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AI 검수를 개발하는 등 변화가 역력하다.

얼마 전 산업부와 한국철강협회, 한국철강자원협회, 제강사 관계자들이 일본의 슈레더 산업을 둘러봤다고 한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지원 방향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도 들린다.

산업연구원에서는 한국에서 향후 노페 스크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회수율을 현재 1.4%에서 향후 1.7%로 높이면 수입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 중립을 위해 필요한 철 스크랩도 한국에서 자체 조달 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따라서 탄소 중립의 관건은 노폐 스크랩의 회수율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와 어떻게 정제할 것인가로 모아지고 있다.

정부의 역할과 지원이 커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철 스크랩과 관련된 정부 주도의 논의가 전기로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철강협회는 물론이거니와 정부의 시각도 전기로의 경쟁력 강화와 철 스크랩 산업의 발전이 동일시 되거나 종속돼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전기로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철 스크랩 산업의 발전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기로 산업의 발전이 철 스크랩 산업의 발전은 아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전기로 산업 국가 중 하나이지만 철 스크랩 산업의 발전은 매우 더디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한국 스크랩 산업은 지난 수 십 년간 구좌제도를 매개로 제강업계와 종속적인 관계를 맺어 왔고, 이 제도가 스크랩 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 왔다. 대형 야드 업체들이 주도해 만든 한국철강자원협회가 회장도 선임하지 못할 정도의 위상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왜곡된 시장 구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전기로 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비단 스크랩을 잘 수거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류와 정제에서 앞서나가고 영세 야드 업체들이 기업화 되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스크랩 산업이 세계화 되어가는 것일 것이다. 정부가 지원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시각은 제강사에 묶여 있고, 전기로 산업의 발전에 스크랩이 종속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서의 스크랩 산업의 위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으로는 탄소 중립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지금 그 기로에 서있다. 스크랩 업계가 전환기를 주도적으로 끌고 갈 힘이 있는지 의문이다. 적자 생존의 논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경제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누구도 봐주지 않는다.

철 스크랩은 탄소 중립의 핵심 자원이지만 아직도 이중 삼중의 제재를 받고 있다. 폐기물로 분류돼 야드를 조성하기도 어렵고, 소음 진동 분진 악취 등 각종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발생한 폐기물 처리도 곤란한 경우가 많다.

스크랩은 자원이고 중요하다고 하는데 정작 야드 상황은 열악하다. 폐차 내에는 각종 쓰레기가 덤으로 따라오고, 기요틴 가공을 하려면 각종 이물질이 고의적으로 혼입된 흔적이 나오기 일쑤다. 

스크랩과 관련된 문제의 대부분은 법과 제도 그리고 인식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정부와 제강사와의 관계를 통해 현안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 철 스크랩 업체가 해결할 수 없다. 

전환기에 스크랩 산업의 발전은 정부의 지원 없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의 창구이자 철강업계와의 창구인 한국철강자원협회의 위상은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대형 납품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정부의 시각을 바꾸고 제강사와 대등한 관계에서 발전을 얘기하기 위해선 대형 야드업체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지금처럼 대형 야드업체들이 자사의 이익만 쫓고 공공의 이익, 업계의 이익을 모른척 한다면 업계의 발전은 고사하고 개별 기업의 발전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철 스크랩은 다단계 유통업체이다. 대형사로의 성장은 혼자의 힘으로만 오른 것이 아니며, 더 발전하기 위해선 산업의 발전이 동반되어야 한다. 스크랩이 말 그대로 자원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표 기구 없이 불가능하다. 대형 야드업체의 역할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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