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수 기자
손정수 기자

# 레가툼 (Legatum) 번영 지수라는 것이 있다. 레가툼이라는 영국의 싱크탱크에서 조사 발표하는 것으로 경제, 기업 환경, 국가 경영, 교육, 보건, 안전 안보, 개인의 자유, 사회적 자본, 자연환경 등 9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만든다. 한국의 올해 종합 순위는 29위로 경제력에 비해서는 낮지만 준수한 성적표다.

한국의 번영지수가 경제력을 밑돈 것은 불균형한 성적표 탓이다. 특히 사회적 자본 신뢰 지수가 167개 국 중 107위에 불과하다. 아시아 태평양 국가 18개 국만 놓고 봐도 15위에 쳐져 있다고 하니 한국은 불신의 사회이고, 불신에 따른 비용을 상당히 지불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8월 18일에 철자원 상생포럼이 발족했다. 한국철강협회와 한국철강자원협회가 업무 협약을 맺고 철 스크랩 산업 기반 구축, 철 스크랩 제품의 품질과 활용도 향상, 철 스크랩 관련 기업 역량 제고, 철 스크랩 관련 제도 개선 등을 양 협회가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과거에도 철자원 포럼 같은 것은 있었다. 한국철강협회는 산하에 철 스크랩 위원회를 두고 제강사와 납품사가 동수로 참여했다. 위원회에서는 스크랩 등급 제정 등 다양한 긍정적인 활동을 했지만 구조적으로 대표성과 평등성에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의 제강사와 납품상의 구조는 매우 불평등한 구조로 돼 있어 스크랩 위원회의 활동은 구조적으로 제강사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 이번 철자원 포럼은 양 협회가 중심이 돼 평등하게 운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한계를 상당히 극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포럼이 양 업계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선 몇 가지 선결 과제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불신이다. 레가툼에서 한국사회에 대해 분석할 때 사회적 자본 신뢰지수가 매우 낮다고 지적했는데 제강사와 스크랩 업체 사이에도 통용되는 얘기다. 제강사는 스크랩 기업들이 공급량을 조절해 일년에도 몇 번씩 공급부족의 곤란한 상황을 맞는다고 생각한다. 또 고의적인 이물질 혼입으로 품질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반면 스크랩 기업들은 제강사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스크랩 기업을 옥죄고 있다고 믿는다. 양업계는 입으로는 상생을 말하고 있지만 상대방이 상생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신은 스크랩을 둘러싼 모든 문제의 시작점이다.

두번째는 형식적으로는 양업계가 대등한 관계가 됐다. 그러나 한국철강협회와 한국철강자원협회는 규모 차이가 크다. 이러한 규모의 차이로 인해 한국철강협회 주도로 포럼이 진행될 여지가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국철강자원협회 회원사들이 포럼에 적극 참여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다행이 이번 포럼에는 철 스크랩 산업을 대표하는 대형 업체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어 대표성과 실행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

양업계는 말 뿐인 상생이 아니라 실질적인 상생의 길로 가야 한다. 포럼은 탄소 중립 시대에 철 스크랩 산업의 발전에 꼭 필요한 원탁 테이블이 되어야 하고 상호 신뢰 지수를 높이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철 스크랩이 탄소 중립 시대에 자원으로서 올곧게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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