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데일리의 철 스크랩 가격 그래프가 흘러내리고 있다. 제강사들은 11월 첫째 주부터 구매가격 인하에 들어가 25일까지 톤당 12만 원을 내렸다. 

철 스크랩 유통업체들은 예상보다 큰 폭의 인하에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또 그 동안 제강사들이 말한 ‘상생’이 이런 것인가(?)라는 지적을 하고 있다.

철 스크랩 시장을 20년 넘게 보아온 필자로선 원래 이런 것이 스크랩 시장으로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손실에 망연자실한 유통업체로선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이번 급락이 여느 때보다 유통업체를 힘들게 하는 것은 제강사의 입고 통제가 강하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파업까지 겹쳐 하루 구매량이 평소 1만 톤에서 1,000톤으로 10분의 1토막이 났다. 이 곳에 납품하는 납품사들은 쌓이는 재고처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전국의 제강사들이 모두 입고 통제 중이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손실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스틸데일리 철 스크랩 D/B
스틸데일리 철 스크랩 D/B

 

지금은 차트가 흘러내지만 비단 몇 달 전까지 그 반대 상황이었다. 예전에 비해 철 스크랩 가격의 급등락은 심해졌고, 주기는 짧아졌다. 커진 위험에 시장 참여자들이 대비하기 위해선 현 상황을 냉정히 봐야 한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과 극복해야 할 것을 나누어 봐야 한다.

감당해야 할 것은 철 스크랩이란 원래 이런 것이고, 변동성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스틸앤스틸의 철 스크랩 세미나에서 필자가 수 차례 지적했던 것. 철 스크랩은 1) 철 스크랩은 제조품이 아니며 2) 품질이 일정하지 않고 3) 발생 저장 소비되는 유통 상품인데다 4) 한국은 공급부족 국가이기 때문에 가격의 변동성이 클 수 밖에 없다는 속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철 스크랩은 트레이딩 품목이기도 하기 때문에 변동성을 예측하기란 어렵다는 점은 덤이다. 

특히 최근에는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유통업체들의 야드 운영비가 더 늘었다. 즉 중량A가 톤당 30만 원 시대에는 톤당 2~3만 원 정도 마진이면 최소한의 야드 운영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4~5만 원이 필요하고, 금리까지 고려하면 6~7만 원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더 많은 마진이 필요하다 보니 야드 업체들은 투기적인 야드 운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번 하락 국면이 끝나더라도 철 스크랩의 변동성은 여전히 클 것이고 거래 주체들을 난감하게 할 것이다. 

철 스크랩 시장 전망은 주식이나 환율 전방이 비유될 정도로 어렵다. 상승과 바닥은 벼락처럼 오는 경우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참여 주체들은 변동성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위험을 분산하고 줄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최근 가격 급락에 대해 일부 유통업체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상생을 떠들던 제강사들이 지금도 그렇게 많은 이익을 내면서 무자비하게 가격을 내릴 수 있냐는 불만을 분출한다. 그러나 제강사로 봐선 불과 몇 달 전 본인들이 마주한 상황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유통업체들의 생존을 위한 호소가 이들에는 푸념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듯 하다.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할 것이 큰 변동성이라면 극복해야 할 것은 이 점이다. 급등락으로 전후방 산업과 기업들이 위험에 빠졌는데 우리의 주체적인 노력으로 위험을 분산할 수 없을까(?) 하는 것이다.

철 스크랩의 속성상 투기적 요소를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더라도 거래 상대가 망하지 않는 한 계속 봐야 하고 서로 이윤을 나눠야 할 주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은 필수다. 철 스크랩 시장에서 상생은 누구를 도와주거나 이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분산하는 것, 즉 변동성을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이다.

이런 점에서 제강사와 철 스크랩 유통업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가격과 수급의 예측 능력을 높여야 한다. 특히 가격 상승기에 유통업체들은 제강사 납품량의 예측성을 높여 제강사들이 기민하게 대응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반면 하락기에는 제강사가 가격 예측력을 높여 유통업체들이 위험을 분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거 제강사들은 약 1주일 정도 시간을 두면서 단계적으로 인하를 했다. 또 가격 인하를 미리 예고하기도 했다. 유통업체들이 재고 평가 손실을 최소화하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풀이된다.

반면 올해는 11월만 하더라도 제강사의 입고 통제와 함께 한 주에 4만 원씩 내렸다. 납품업체로 봐선 감내하기 힘든 시련일 뿐만 아니라 제강업계가 납품업체들의 재고 평가 손실에는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조달 시스템으로는 상호간의 위험을 줄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며 이에 따른 비용은 결국 제강사가 지게 될 것이다.

철근 제강사는 철근 가격을 철 스크랩 가격을 연동형으로 전환해 스크랩 가격 변동성의 위험을 완화했다. 그러나 전방산업인 스크랩 산업의 가격 결정 방식은 수급 논리에 기반한 정글의 적자 생존 방식으로 남아 있고 더욱 심해지고 있다. 

철 스크랩 가격 상승기에 물량을 흐르게 하고, 하락기에 철 스크랩 유통업체들이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신뢰는 필수다. 신뢰가 쌓인 기업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많은 이익을 수확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가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히 제강사는 시장의 강자이자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강력한 주체이다. 단기적으로는 거래의 투명성과 가격의 예측력을 높여 유통업체들이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위험을 줄이는 장기 전략도 필요하다. 특히 한국의 철 스크랩 야드상들은 아직 가공 산업화 진전이 미흡하고 부가가치도 낮은 편이다. 제강사들은1) 대형 철 스크랩 야드상을 육성하고 2) 철 스크랩 가공 산업화를 유도해야 한다. 또 유통업체들도 단순 유통이 아니라 야드 매출과 가공을 통해 최대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흘러내리는 차트는 말뿐인 신뢰, 공허한 상생이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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