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자르는 프로쿠르스테스.
다리를 자르는 프로크루스테스.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라는 말을 잘 알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손님을 잡아 놓고 쇠 침대에 맞춰 짧으면 망치로 쳐서 늘리고, 길면 튀어나온 부위를 잘랐다고 한다. 침대 사이즈라는 자기 잣대와 기준에 맞춰 사물을 재단하고 판단하고 자기 주장을 펴는 사람을 말 할 때 쓰는 관용적인 말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크루스테스는 달군 금속을 두들겨서 늘리는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즉 프로쿠르스테스는 모루를 상징하는 쇠침대에 쇠를 올려 놓고 담금질을 하는 대장장이라고 할수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집과 독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지만 철강의 본질을 꿰뚫은 첫 대장장이다.

흔히 철강은 5% 전쟁이라는 말을 한다. 5%가 부족하면 공급 부족으로 파동이 난다. 소비자들이 부족한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너도 나도 구매에 나서다보니 조금의 공급 부족도 극심한 부족으로 보이는 것이다. 반대로 5% 이상 남으면 철철 넘치는 느낌을 준다. 생산업체들은 늘어나는 재고를 처치하지 못해 덤핑 판매를 하기  마련이다. 

수요에 맞는 철강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공급자도 소비자도 고통스러운 것이  철강 시장이다. 이런 점에서 철강인들은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수요에 맞는 최적 생산을 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다.

철강의 이러한 속성은 생산의 비탄력성에 기인한다. 특히 고로는 한번 불을 붙이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웬만해선 생산을 멈추지 않는다. 반면 전기로는 단속조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시설이어서 감산은 제조원가의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단속조업이 가능하다고 해서 감산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다.  

얼마전 동국제강에서 7월 한달간 철근 생산을 야간에만 하겠다고 발표했다.  7월 한달간 약 20% 정도 감산이 이루어질 것 같다. 20% 이상 감산을 하는 제강사도 있어 주목을 받는 것에 비해 시장에 미칠 파장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국제강의 야간조업 발표는 철근업계에 남다른 의미로 읽힌다. 

'야간 조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 탓이다. 지난 20여년간 철근업계에 유령처럼 떠돌던 말이 '야간 조업'이다. 특히 철근 수요가 줄 때마다 '야간 조업' 시대가 임박했다는 말이 돌았던 것. 일본 철근업계의 야간 조업을 보면서 한국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한국의 철근 제강사들이다. 

제강업계는 올해 철근 수요를 980만 톤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본격적인 야간 조업 시대 개막을 알리는 900만 톤 전후보다는 많은 수요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국제강이 기존 감산 방식 대신 '제한적인' 야간 조업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듯 하다. 

내부적으로는 가까운 미래에 열릴지도 모를 야간 조업 시대에 대비한 테스트이고,  외부적으로는 수요에 맞는 생산, 야간 조업도 열어 놓아야 할 때가 됐다는 선언을 통해 최적 생산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그런 점에서 동국제강의 7월 한달간 야간 조업 선언은 철근업계가 그동안 해 왔던 감산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3년간 철강업계는 예상치 못한 초 호황의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지금의 수요 감소와 감산이  더 힘들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안일한 자세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수요 감소에 따른 공급 과잉기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간이기도 하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연구되는 기간이어야 한다. 최악의 빙하기에도 철강인들이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가 있다면 프로크루스테스의 정신일 것이다. 침대의 사이즈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생산하는 프로쿠르스테스의 굳은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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