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탄소중립 시대의 핵심자원이 된 오늘날까지, 철스크랩 산업은 한국 산업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함께 해왔다. 그리고 그만큼 흐른 시간에 따라 산업의 모양은 물론 산업역군들의 세대도 변하고 있다. 사업이 대를이어 이어지며 2세와 3세 경영이 나타나는 것은 경영계에선 흔한 일이지만, 최근 나타나는 철스크랩 업계의 세대전환은 사뭇 다른 지점들이 있다.
고철을 모아서 제강사에 팔고 그 가운데서 이윤을 남기던 고철 유통업은 폐기물인 고철을 발생 ‘시키고’, 가공하여 ‘재사용’하는 ‘자원순환업’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꿔가고 있기 때문이다. 장비는 첨단화 되고, 경영은 다변화 됐다. 스크랩 산업은 오래됐지만 더욱 젊어지길 요구하고 있다.
㈜알엠의 강산 대표는 국내 최초의 코스닥 상장 스크랩 업체인 스틸앤리소시즈 강진수 회장의 장남이다. 늦둥이인 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인 강 회장은 국내 스크랩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은 인물이었다. “굳이 아버지가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철 스크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랄 수밖에”없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강산 대표는 자연스럽게 철스크랩 업계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지만, 철스크랩 사업이 기피하고 싶다거나, 고물상은 3D라거나 하는 생각을 딱히 하진 않았다”는 그는 “오히려 경영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철스크랩 사업은 환경적 측면에서나 최근 산업계의 트랜드에서 굉장히 주요한 산업이라 ‘경쟁력이 있는 매력적인 사업’으로 인식”했다. 그렇게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철스크랩 업계에 들어선 강산 대표는 ‘아버지의 시대엔 생각해보지 못했을 일들’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다. 패러다임의 변화, 강산 대표는 철스크랩 업계의 2세 경영이 단지 ‘대를 이어 가업을 물려받는 유지’가 아니라 ‘이전 세대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해내는 전환’임을 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알엠, “고철을 찾아다니지 않고 만들어내는 것”
최근 강산 대표는 ㈜알엠(구 강산)을 설립하고 목포의 한 조선소를 인수했다. 폐선박 해체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강산 대표는 폐선박 해체업을 통해 철스크랩을 회수하고 그밖에 중고 선박 장비를 회수-판매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 중이다.
“국내에 전용 부두를 보유한 폐선박 업체가 없습니다. 대부분 조선소 일부를 임대해서 사용하는 상황인데, 그렇다 보니 스크랩 단가에 따라 적절한 매도 타이밍을 잡기도 어렵고 전문적인 공간이 아니다보니 안전이나 환경에서도 열악한 부분이 많았죠. 해체를 전문으로 하는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으면 선박을 해체하고 스크랩을 회수하는 일, 적절한 보유 공간에 스크랩을 보관하고 적절한 시기에 이를 판매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겁니다. 발생한 고철을 찾아다니며 회수하는 게 아니라 발생 시점부터 가공, 판매, 재사용 시점까지 스크랩 순환 전반에 인벌브 하는 사업인 거죠.”
강산 대표는 ㈜알엠의 사업을 ‘유통’에만 머물던 기존의 철스크랩 사업을 과정 전반으로 확장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조선소 부지 확보는 그 과정의 일환이다. 그러나 폐선 해체에는 전문인력이 필요하고 부지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결국 폐선박 해체 사업에 ‘수익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폐선박도 컨디션에 따라 가치가 상이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케이스를 축적하는 과정도 필요해요. 그에 따라 폐선박 한 척에서 기대할 수 있는 수익도 상이해질테니까요. 그러려면 전문적으로 폐선 작업을 하는 부두가 필수적이죠. 또 효율적인 해체 작업을 위해 충분한 인력과 장비도 필요할 거에요. 지금은 일단 1,600 톤 규모의 대형 길로틴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장비를 적절히 활용해 산소절단 작업에 투여되는 인건비를 확실히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당장은 수익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지만 체계적으로 수익을 실현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접근”
강산 대표는 목포의 조선소를 ㈜알엠의 ‘시작’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스크랩 유통업이 한 지역에 자리를 잡고 인근의 스크랩을 수집하고 유통하는 것에 그쳤다면 ‘발생에서부터 스크랩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에서는 전국 규모의 ‘프랜차이즈’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상상력이다.
“아직 목포의 폐선박 조선소 사업이 한창 준비 중이지만 이미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 역시 준비하고 있어요. 가장 많은 폐선박이 있는 부산 일대에 또 폐선박 전문 조선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미 시작한 상황이고, 멀리는 해안 벨트를 따라 폐선박 전문업체들을 설치하려는 계획도 구상 중이죠. 우리나라엔 폐선 처리를 하지 못하고 방치된 폐선박들이 매우 많아요. 타당한 사업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산 대표에겐 ㈜알엠 외에도 몇 개의 명함이 더 있다. 그는 AI 기반으로 철스크랩 가격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아이번의 공동대표이고, 슈레더 기반의 철스크랩 가공업체인 가람의 대표이기도 하다. 철스크랩의 발생부터 가공, 유통, 가격 예측까지 철스크랩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모든 순환 과정에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과거와는 다른 시대인만큼 사업에 접근 하는 방식도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고 봤어요. 또 아직은 아버지만큼 사업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지 않다는 점도 명확했고요. 그래서 AI 기반의 가격 예측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연구중에 있죠. 폐선박 사업도 마찬가지에요. 과거에는 수집과 유통에만 골몰했다면 스크랩에 대한 사회적 필요가 높아지는 지금 시점에선 스크랩의 발생부터 끝까지 전 과정에 인벌브 했을 때 얻는 수익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자명하니까요.”
“스크랩 슈퍼스타”
강산 대표는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중국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에서 아버지의 사업체를 들락거리며 ‘어깨너머’로 사업을 배웠다기 보다는 미국과 중국에서 배운 경영학적 시각에서 철스크랩 사업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럴싸하게 표현해도 ‘고물상’이 맞죠.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편견’같은 걸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 아버지의 사업이었으니 물려받아야 한다는 ‘선망’도 딱히 없고요. 그저 미래 자원으로서 철스크랩 산업의 가치를 높게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산업에 뛰어들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이건 되는 사업’이라고 판단 한거죠. 요즘 각광받는다는 IT 산업 같은 것들은 끊임없이 신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잠시만 뒤쳐져도 도태되는데 반해 스크랩 사업은 그보다는 경영의 측면이 더 중요하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진수 회장은 철스크랩 업계의 유명인이다. 강산 대표가 새로운 사업과 패러다임을 제시해도 당장에 아버지의 영향력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실제로 강산 대표의 사업체에 강진수 회장은 ‘회장’의 직함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당장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내 자신의 사업을 독립적으로 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해본 적 없어요. 모든 일이라는 게 그렇듯, 스크랩 사업도 최소 10년 정도는 경험을 쌓아야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요. 더구나 지금은 오히려 아버지를 제가 더 필요로 하는 상황입니다. 가격을 비롯해 시장의 방향을 예상하고 전망할 때 아버지의 조언이 언제나 가장 정확한 편이거든요. 말했듯 AI를 통한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아버지의 조언을 제가 더 구하기 어려워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자립 같은 것보단 아버지의 경험과 실력을 제가 흡수하는 게 우선이겠죠. 자립은 그 다음에 생각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강진수 회장의 경험을 흡수하는 게 우선이라는 강산 대표지만 그럼에도 강산 대표의 명확한 목표는 있다. 업계를 대표하는 것. 강 대표는 ‘수퍼스타 기업’이라고 표현했다.
“핸드폰은 애플, 반도체는 삼성 같이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 있잖아요. 그동안은 스크랩 업계가 그렇게 크지 않았으니 그런 기업도 없었을 것이고, 또 규모 면에서도 그렇게 업계를 대표할만한 기업이 나타나지 않았었죠. 저는 스크랩 업계에 다양한 방식의 어프로치를 하고 다양한 사업구상을 하고 있지만 결국 귀결은 ‘스크랩’이거든요. 목표는 저희 회사가 스크랩 업계를 대표하고 선도하는 ‘슈퍼스타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