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업계와 후판업계간의 가격 협상이 한창이다. 계절은 여름에 들어서는데 아직 상반기 가격 협상을 진행 중이고, 언제 종료될 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가격 협상 지연이 일상화되면서 양 업계는 1년 열 두 달 가격 협상만 하는 모양새다.

협상 지연 사유도 매번 비슷하다.

조선사들은 경영실적이 나쁘고 선가가 낮으니 후판 가격을 깎거나 인상을 최소화 해 달라는 요청이고, 후판업체들은 수익성이 나빠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매번 같은 상황이 반복되니 지칠 법도 한데, 양측 모두 협상에 사활을 걸다 보니 장기화되기 일쑤다. 어느 한쪽이 상대의 팔을 비틀기 항복을 받아 내기 전에 협상이 끝나지 않는 것이 이젠 상례가 됐다.

조선업계와 후판업계는 전후방 산업으로 매우 긴밀한 관계다. 조선사의 경쟁력에 후판의 품질과 원가 경쟁력은 상당한 요소를 차지한다. 또 후판업계도 후판 수요의 절반을 차지하는 조선산업의 경쟁력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사실상 양 업계는 철근과 건설, 가전과 도금산업간의 관계보다 훨씬 친밀해야 한다. 비즈니스 파트너라기 보다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인 "어수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30년 가까이 양 업계의 협상 과정을 지켜본 필자의 눈에는 서로 소원한 관계로 보이기까지 한다.

상생보다는 이익이 앞세우고, 상대의 양보를 바라는 협상이 매번 반복되면서 갈등 비용이 높아진 결과이다.

대표적인 갈등 비용은 수입으로 표출된다. 지난해 보통강 중후판 수입량은 169만 톤이다. 상당한 수량이 조선용으로 수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국내 생산업체들의 조선용 후판 국내 판매량은 366만 톤이다. 조선사들이 수입만 줄여도 국내 후판 공장의 가동률이 오르고 원가 구조도 바뀔 수량이 수입되고 있는 것이다.

양 업계의 갈등이 서로에게 비용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의 후판 업체들이 어부지리를 하는 모양새이다.

 

# 외부자의 눈으로 보면 후판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두 세가지 정도 보인다. 

하나는 협상을 통한 타협이다. 일 예로 후판업체들이 가격에 대해 양보하면 조선사들은 수량에 대해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현재 양측이 진행하고 있는 방식인데 지금까지 진행 과정을 보면 그다지 실효적이지 않아 보인다.

두 번째는 제3자의 중재와 조정이다. 중재자는 대체로 정부가 될 듯 하다. 과거 철근 가격을 두고 제강사와 건설사간의 반목이 커지고, 제강사가 납품을 중단하면서 사회 문제가 되자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협상을 중재한 바 있다. 개별 기업간의 가격 협상에 정부가 나서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아 제3자에 의한 중재가 좋다고 하기는 어렵다.

결국 협상은 당사자간에 결정을 해야 할 사안이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철강협회와 한국조선협회가 후판 가격 포뮬러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을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다.

한국은 철강 대국이지만 소수의 생산업체와 소수의 소비자간의 거래가 시장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양자간의 협상 지연은 상당한 협상 비용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가격 결정의 룰을 만드는 것은 협상 비용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수요와 공급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가격과 수익성으로 수급을 조절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가격 포뮬러가 시장 기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협상으로 시장기능이 마비되고 갈등이 커지는 구조라면 가격 결정 방식을 만드는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미 포뮬러를 만들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건자회와 현대제철이 가격 포뮬러로 철근 가격을 결정한지 수 년째다. 양 업계는 더 이상 가격 협상을 하지 않고 있다. 큰 줄기는 포뮬러로 결정하고 개별 기업간 가격은 포뮬러를 근거로 추가 협상을 통해 결정하고 있다.

또 형강과 철근 등 제강사의 유통 출고 가격도 스틸데일리의 가격표를 기준으로 삼아 적절한 할인 금액을 통해 결정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자동차 등도 철강재를 구매할 때 스틸데일리 가격표를 근거로 포뮬러를 만들어 구매한지 몇년 됐다. 

일부는 삐걱대기도 하지만 협상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철강사와 수요업체간의 노력이 공신력을 기반으로 가격을 산정하는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협상 비용을 가장 많이 지불하는 후판을 둘러싼 조선사와 철강사의 갈등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양 협회를 중심으로 협상비용 줄이기 위한 노력을 높게 평가해야 하며 양 업계도 단기적인 이익만 볼 것이 아니라 '어수친' 관계라는 것을 인지하고 협상 비용 줄이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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