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11월 4일 정부가 드디어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본 방안에는 설비조정, 통상대응, 고부가∙저탄소, 상생협력의 4가지를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각각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을 담고 있다. 이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 국내 철강산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차원의 종합 대책이라 할만하다. 금년 1월부터 민관합동으로 T/F를 결성하여 추진할 당시만 하더라도 지난 6월에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으나 4개월 이상 늦어졌다. 그만큼 한국 철강산업이 처한 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했고, 그 원인도 매우 복잡했으며 이로 인해 문제 해결방안도 간단치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금년이 가기 전에 이러한 종합적인 대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이제부터 국내 철강사들은 그 내용을 보다 꼼꼼하게 살펴보고, 각 사가 처한 현실에 가장 적합한 전략과 대책을 선택하여 실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
고도화 방안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제시된 것은 ‘구조조정’이다. 특히 기업의 자발적 설비조정 노력이 제한적이며, 수입재 침투율도 낮은 철근을 설비규모 조정 중점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철근 사업재편 추진 가능성 검토 및 대안 모색’을 부처합동으로 즉시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철근산업의 구조조정이 임박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철근산업의 구조조정은 실제 실행단계에서 여러가지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로 인해 예상보다 해결이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사실 국내 철근 산업은 수요 절벽과 가격 급락으로 다른 어떤 제품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국내 철근 생산 기업들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출하 중단, 생산량 조정 등 극한의 노력을 지난 수년간 진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더욱 악화 일로에 있다. 단기간 내에 매출 확대와 수익성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국내 건설산업의 장기적인 성장성을 고려할 때, 현재와 같은 상황이 더욱 길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전문가들이 철근 산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의 실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 철근업체들 중에는 철근 이외에 다른 철강제품을 함께 생산하는 기업도 있지만, 오직 철근만을 생산하는 철근 전문업체들도 많다. 이들 철근 전문업체의 경우 구조조정은 회사의 존립과 직결되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구조조정이라 하더라도 쉽게 응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부가 구조조정을 강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업체들의 동의와 적극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과연 현 정부는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가? 그리고 기업간 생사가 걸린 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답을 제공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실행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주장들을 구체적으로 예상해보고 각각에 대한 정부 차원의 설득 논리와 지원 방안 등을 사전에 체계적으로 점검해 봐야 한다.
관련하여 금번 대책에서는 구조조정이 업계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기업활력법’상에서 사업재편 진행 가능성을 검토하고, 사업재편 기업에 세제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필요시 ‘철강특별법’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부가 제공하는 이러한 인센티브에 기업의 생존을 내놓을 수 있는 기업주가 얼마나 되겠는가? 자칫 2015년에 추진했던 구조조정의 재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번에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자율적인 구조조정은 기본적으로 기업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인센티브 이상의 명분도 제공해 줘야 한다. 업계 공동의 자율적인 비전 작업이 우선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의 문제, 원인, 해결방안에 대한 업계 자체의 진지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구조조정 이후 국내 철근산업은 어떠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업계 공동의 의견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대책은 설비조정이라는 명분 하에 각 기업들의 생존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바짝 엎드려서 다른 기업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눈치만 살피는 눈치싸움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높다. 이렇게 되어서는 구조조정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앞장서서 진두지휘하기 보다는 업계의 자율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환경을 조성하는데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