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결과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 발표하겠다던 계획이 9월이 다 지나가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10월 중 발표할 것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 와중에 국회에서는 지난 8월 4일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 소위 ‘K-steel 법’을 발의하였고, 산업통상자원부도 8월 28일 국내 최초의 철강산업도시인 포항시를 2027년 8월27일까지 2년 동안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한다고 공고했다. 국내철강산업을 위한 기본계획이라 할 수 있는 경쟁력 강화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실행을 위한 대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기본계획이 발표되기를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현재 철강산업과 철강도시의 위기가 엄중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사실 ‘철강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이라고는 하지만 여기에는 산업과 기업의 구조조정 대책이 포함되는 것이고, 각 철강사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리고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나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만사형통의 대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잉여설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업간 합병, 경쟁력 없는 설비의 폐쇄가 불가피할 것이고,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들도 발생하고, 금융업계의 손실도 뒤따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하지 않으면, 한국의 철강산업과 철강도시들은 미국과 유럽처럼 경쟁력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회생이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이해해야 경쟁력 강화 대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 대책을 마련하기에 앞서 먼저해야 할 일이 있다. 미래 한국 철강산업은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과 비전이 바로 그것이다. 모든 참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전이 없이 구체적인 대책만을 나열하게 된다면 실행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고, 또 다시 10년 전의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다.

향후 한국 철강산업은 미래 혁신 철강기술의 선두 주자로 우뚝 서야 한다. 그 첫번째가 수소환원제철기술이다. 이 기술은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핵심기술이 되기에 충분하다. 기존의 석탄환원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200년만에 찾아오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살리지 않으면 결코 한국 철강산업은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관련하여 정부와 철강사들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 기술개발 경쟁이 보다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R&D 예산 배분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일부에서 아직 이 기술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고 있는데, 정부와 기업들은 이 기술의 중요성과 성공 가능성에 대해 더욱 많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치밀하고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생산성 혁신 기술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철강산업은 자본집약적 산업이다. 생산성이 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요소이다. 그런데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 변화되고 있다. 기존에는 설비 대형화와 자동화가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동일한 설비에서도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산설비에 AI를 접목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철강업체들이 Digitalization라는 명목으로 AI를 도입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기업들은 상당한 성과를 보고 있고, 그 결과 도입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한국 정부도 AI를 신성장산업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국내 철강산업도 생산시설의 첨단화와 생산성 혁신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AI 혁신이 이루어져 국내 모든 철강업체들이 획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여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면 현재의 국내설비 과잉의 문제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세번째로는 철강도시의 혁신에 대한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이다. 한국의 철강도시는 그 자체가 철강산업 생태계의 보고이다. 철강도시는 대형 철강사만이 아니라 이를 가공하여 부품을 만드는 수많은 중소업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거대한 산업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생태계의 강건성 여부에 따라 철강도시의 운명도 결정된다. 따라서 철강도시를 도시의 관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철강산업의 생태계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철강도시 내에 있는 철강사와 철강가공업체 간에 상품, 기술, 서비스 등 모든 정보의 교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양자 간에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일어나서 시너지를 발휘하고, 한 기업의 혁신이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어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을 한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철강산업과 철강도시가 새로운 성장곡선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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