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앤스틸 서정헌 대표이사 사장
▲ 스틸앤스틸 서정헌 대표이사 사장
우리나라 정부는 철강통상에 대해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해 우리 스스로 시장경제를 운운하면서 특별히 잘 못한 것이 없다는 식의 변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와 달리 미국정부는 수입규제를 원하는 자국 철강업계의 목소리를 정치논리에 따라 산업정책에 잘 반영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지금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철강관련 산업정책은 너무 안이하고 근시안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철강업계의 목소리를 산업정책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철강업계 역시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정치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당장 밀려오는 미국의 통상압력만 피하고 보자는 근시안적인 시각에 갇혀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철강통상 관련 이슈도 우리나라 철강산업 사양화에 대응하는 산업정책 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인 미국도 아직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정부가 철강시장에 개입하고 있는데, 사양화 위기에 처한 한국 철강산업을 두고 우리 정부는 스스로 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사실 미국은 철강이 아니더라도 서비스 등 다른 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선진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자국의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수입규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은 스스로 비시장적 행동을 하면서 한국에 대해서는 시장의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 지금 철강재 수입규제가 필요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다.

미국은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보다 자유무역을 강조해 온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강산업에 대해서만은 유달리 강력한 수입규제를 하고 있다. 서비스 중심의 산업구조로 많이 전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여전히 철강산업의 역할이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이미 성숙기를 지나 사양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한국 철강산업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뜬금없는 일이다. 미국이 국가안보 등을 운운하면서 232조를 내세워 철강수입을 규제하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AD, CVD, VRA, TPM 등이 대표적인 수입규제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힘의 우위를 이용하는 PMS, AFA, 232조 등 더 강력한 다양한 제도가 동원되고 있다.

미국은 철강통상에서 다소 모호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힘의 우위를 이용하여 밀어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PMS를 적용하여 한국과 중국 철강시장을 통틀어 특별시장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철강산업이 비난받을 만큼 중국산 철강재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본 적이 없다. 현실적으로 중국 같은 대규모 개도국이 인접해 있는데 중국산 철강재를 쓰지 않고 버틸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과거 미국도 일본산 유럽산 수입 철강재에 밀리는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지금 한국 철강산업은 중국산 수입 철강재로부터 혜택을 보기보다 중국산 철강재에 떠밀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중국에 밀리고, 미국으로 도망가는 돌파구가 막히면서 진퇴양난의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세계 철강시장에서 우리나라 철강산업이 설 자리가 차츰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선도기업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높은 시장지배력과 수익성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 중국산 수입재에 밀리면서 이 두 선도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 한국 철강산업은 걷잡을 수 없는 빠른 속도로 후퇴할 수 있다.

철강은 전통적으로 내수중심의 산업이기 때문에 내수시장만은 끝까지 지키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철강산업의 사양화 징후는 내수보다 수출입에서 먼저 나타난다. 철강산업의 경우 수출입이 먼저 무너지면 내수가 무너지고 연이어 철강산업 전반이 가파르게 후퇴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금 한국 철강산업이 처한 “40% 수출과 40% 수입” 역시 이러한 위기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양화 위기에 처한 철강산업을 위해 우리 정부가 철강산업을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국가간 힘의 역학관계를 보면 우리나라 철강 통상정책은 많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철강업계가 미국 철강업계만큼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국가간 형평성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철강통상 이슈를 방어적인 시각이 아니라 적극적인 산업정책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산업정책을 주도하기 때문에 철강업계가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 철강 통상정책은 더 이상 미국의 논리에 끌려가서는 안된다. 성장 단계로 보면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미국 철강산업과 완전히 다른 상황에 있다. 이제 우리 스스로 국민경제에서 철강산업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고,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철강통상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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