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 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한국 후판산업이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주력 수요산업인 조선 침체와 만연해진 공급과잉, 저가 중국산의 범람 등은 국내 후판업체들을 끝없는 수렁 속으로 내몰고 있다. 개별 후판업체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위한 다양한 전략들을 펼치고는 있으나 역부족인 상황으로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까지도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후판산업의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됐을까? 일각에서는 국내 후판 수요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조선의 장기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국내 조선사들은 대규모 부실과 함께 저조한 수주를 이어가며 국내 후판 공급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원인을 찾고 싶다. 바로 국내 후판 공급업체들의 설비 증설 경쟁에 따른 공급과잉 심화다. 최근 몇 년간 현대제철 중심의 설비 증설이 잇따르면서 국내 후판 총 생산능력은 2014년 1,470만톤 수준까지 증가했다.

당시 수출까지 감안한 연간 후판 총 수요가 약 1,100만톤 내외였음을 감안하면 370만톤 가량의 잉여 생산능력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동국제강이 포항 2후판을 폐쇄하며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그만큼 후판 수요도 급감하면서 실질적인 수급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결국 수요를 배제한 개별 공급업체들의 설비투자와 시장전략은 당장 전반적인 공장가동률 하락과 조선사들과의 가격협상에서 주도권을 내주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으며 이는 각 업체들의 수익성에 직격탄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이러한 수급 왜곡을 해결하고 후판산업이 정상적인 궤도에 재진입하기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공감대 형성과 대응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판단이다. 각자 뒤에서는 자사의 이익을 위한 투자와 전략들을 구상하고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조선산업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찾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제 업체들은 능동적으로 협력체제를 구축해 위기를 타계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할 때다. 이미 늘어난 생산능력을 줄일 수 없다면 협조감산, 중국산에 대한 무역규제 등에 대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장수급 개선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 후판시장의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경쟁력이 가장 취약한 업체의 구조조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안정화된 공급구조를 와해시키고 자칫하면 한국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국과 일본업체를 안방에 불러들일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 후판산업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각자도생을 위한 전략은 시장에 그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없어 보인다. 고객뿐만 아니라 경쟁업체와도 장기적인 파트너쉽을 구축할 수 있다면 현 시장을 탈출하는데 보다 수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다. 국내 후판업체들이 마음을 열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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