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가들이 자국 철강산업 보호에 한창이다. 중국 내수 성장률 둔화에 따른 수출량 증가로 인근국가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강철공업협회는 올해 중국의 철강재 수출량은 역대 처음으로 연간 1억만 톤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내수 부진을 수출로 타결하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까지 시행했다. 따라서 중국산 철강재의 수입량 증가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 시점에서 국내 철강업계의 대응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자국 철강산업 보호를 위해 안티덤핑 및 세이프가드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H형강이 유일하게 수입량을 조절하는 조건으로 안티덤핑을 실시하고 있다. 그나마 한국의 무역 구조상 중국의 심기를 건들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할 때 중국산 H형강 제품의 안티덤핑은 대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무역에 의존해 왔다. 따라서 초대형 인접국가인 중국과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쉽게 무역제재를 논의 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는 국내산 철강재의 우수성을 주장하며 국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수입산 철강재 사용을 자재해 줄 것을 요청해왔다.

주로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대형 사고의 원인이 중국산 저가 제품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조금은 유치한 방법을 사용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애국심 호소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 건설현장에는 “00건설은 엄격한 품질 기준을 통과한 국내산 KS 철근만을 사용합니다”란 플래카드가 대대적으로 걸린 적이 있었다. 국내산 정품으로 안정적인 건축물을 건설하고 있다는 것을 홍보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건설현장에서 이러한 현수막을 찾아보기 힘들다. 수입산 제품이라도 KS인증을 획득한 제품이기 때문에 수입 철강재가 모두 정품이 아니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일부 제강사들은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산 빌릿을 구매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고철을 용해하는 것보다 원가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품은 국산일까? 수입산일까?

제강사가 주장하는 수입산 철강재의 품질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산 철근은 대부분 고로에서 철광석으로 생산된다. 반면, 국내산 철근은 고철을 주원료로 사용된다. 한번 생산된 제품이 다시 리턴되어 생산되는 제품이 국내산 철근이다. 고철로 생산되는 제품이 천연 원료인 철광석으로 생산되는 제품과 품질을 논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필자는 중국산 철강제품의 수입량 증가로 국내 철강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우는 소리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은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이다. 보호무역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작은 것을 막으면 큰 것을 내주어야 한다. 철강을 보호한다고 나설 경우 자동차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산업구조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한국과 일본은 태생부터 틀리다. 또 하나의 불가능을 반복할 가능성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품질뿐이다. 안티덤핑이나 세이프가드 보다 KS인증을 강화하는 것이 수입산을 증가를 방어하는 유일한 길로 보여진다.

그러나 국내 철강업계는 한국산업규격(KS, Korean Industrial Standards)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지 않는다. 품질이 강화될 경우 제품 불량률이 증가해 원가상승 및 수익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철강메이커들은 KS범위 내에서 공식적인 ‘두께 빼먹기’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제품별로 차이는 있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작은 손실을 두려워하여 수입산 철강제품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포기하고 있다. 중국의 병법에는 이대도강(李代桃畺) 이란 말이 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뜻이다. 즉 적은 것을 내어주고 큰 것을 얻는다는 계략이다. 국내 철강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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