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가공 연쇄 '야반도주', "약한 고리부터 붕괴"
- 2차 하청 가공장에서 연속 발생···구조적 취약성 드러나 - 호황기 ‘완충재’가 불황기엔 ‘첫 희생양’···수요 증발 직격탄 - 연쇄부도 우려 확산···“1차 가공장·유통까지 번질 수 있다”
철근 가공업계에서 업체 대표이사의 '야반도주'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며 건설경기 침체의 파장이 산업 생태계의 가장 취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리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특히, 두 사건 모두 2차 하청 가공장에서 발생했다는 점은 불황의 충격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약한 곳부터 무너진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부권 소재 한 철근 가공장 대표이사가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수도권 소재 가공장의 야반도주 사건에 이은 두 번째 사례다.
두 사건의 결정적 공통점은 모두 2차 하청 가공장이라는 점이다. 우연이 아니다. 산업 구조상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2차 하청업체들이 건설 불황의 최전선에서 가장 먼저, 가장 강하게 타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피해 규모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중이다. 철근을 빼돌리고 철 스크랩 선수금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리 준비해온 상황을 봐선 계획적인 범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호황기엔 '완충재', 불황기엔 '최약체'
철근 가공업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2차 하청업체가 왜 가장 먼저 무너지는지가 명확해진다.
제강사로부터 직접 수주를 받는 1차 가공장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물량과 신용도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2차 하청 가공장은 1차 가공장의 초과 물량을 처리하는 '버퍼(완충재)' 역할을 한다.
과거 건설경기 호황기, 아파트 건설 붐이 일던 시절에는 1차 가공장의 생산능력만으로는 폭주하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때 2차 하청 가공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업체들은 넘쳐나는 일감으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불황이 오자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전체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1차 가공장의 가동률도 약 50% 수준에 불과한 상황에서 2차 하청업체까지 흘러갈 물량은 사실상 증발한 셈이다.
사실상 무너지는 순서는 정해져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번 사태가 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철근 가공 수요는 건설업계, 특히 아파트 건설 시황과 직결된다. 설령 정부 정책으로 건축 착공 등 선행지표가 개선되더라도, 실제 철근 가공 수요 증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한다.
현재 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는 선행지표와 정부 정책을 종합해보면, 단기간 내 철근 가공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금력이 가장 취약한 2차 하청업체들부터 순차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그 범위는 점차 확대될 수 있다. 자금력이 부실한 1차 가공장, 나아가 수주를 받은 유통업체까지 연쇄 부도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나”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