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CBAM 잠정 배출계수 공개...저탄소 강재 시대 열릴까?
- 생산방식에 따라 열연 기준 탄소비용 최대 120유로 차이 - 고부가 및 가공도 높을수록 배출량 증가...탄소비용도↑ - 현 시점 수입재 EU산 대비 약 100유로 저렴…단기 대응은 가능 - 전면 전환은 난제...자동차 등 수요처 요구 따라 대응 달라질 듯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하에서 철강 및 철 제품에 적용할 잠정 탄소배출 계수(benchmark) 설정 작업에 착수했다.
Fastmarkets 및 Argus에 따르면 철강 생산 방식별 탄소 배출량이 최대 5배 이상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업계는 CBAM 정식 적용 이후 수입 경쟁력이 기존 ‘가격 중심’에서 ‘생산 공정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CBAM은 EU 역내 배출권거래제(ETS)와 연계해 수입 철강 제품에도 동일한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이번 초안은 ‘잠정’으로 명시됐지만 CBAM 가격 산정 기준이 처음으로 구체화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제도 도입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EU는 내년 1월부터 철강 제품에 CBAM을 정식 적용할 예정이며, 실제 탄소비용 산정에 필요한 최종 기준 및 기본값은 내년 3~4월경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유럽 철강업계는 전망했다.
전기로 대비 고로 탄소배출 최대 5배 차이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적용을 위한 벤치마크 배출계수 초안이 공개되면서 철강 생산 공정 간 탄소배출 차이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초안에 따르면 철강 분야의 잠정 벤치마크 배출계수는 생산 방식에 따라 △고로·전로(BF/BOF), △직접환원철(DRI)·전기로(EAF), △스크랩 기반 전기로(EAF) 등 세 가지 공정으로 구분됐다.
Fastmarkets에 따르면 열연강재 생산 시 톤당 배출계수는 고로(BF/BOF)가 1.530tCO₂로 가장 높았으며, DRI+전기로(EAF)는 1.033tCO₂, 스크랩 기반 전기로(EAF)는 0.288tCO₂로 나타났다. 특히 스크랩 전기로 공정의 배출량은 고로 대비 약 5.3배 낮은 수준으로 확인돼 공정별 탄소 효율성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탄소권 가격을 톤당 80~90유로로 가정할 경우, 예상 CBAM 부담액은 고로 방식 제품이 최대 약 120유로로 가장 높고, DRI 기반 전기로 방식은 80~90유로 수준, 스크랩 기반 전기로 방식은 40유로 미만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CBAM이 본격 적용될 경우 공정별 탄소배출 관리 능력이 수출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며 “특히 스크랩 활용도가 높은 전기로 방식은 상대적으로 부담이 낮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냉연도금재는 열연보다 더 높아....고부가 강종 부담 커질 수도
추가 공정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제품의 경우 열연보다 탄소배출 부담이 더 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최근 Argus가 확인한 CBAM 초안에 따르면 냉연강판의 배출계수는 고로 기준 1.641tCO₂, 전기로 기준 0.350tCO₂로 산정됐다. 도금재 역시 고로 방식 1.692tCO₂, 전기로 방식 0.400tCO₂로 열연 제품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열처리·도금 등 추가 가공 과정에서 에너지 사용이 증가하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슬래브·빌릿 등 반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고로 기반 생산 시 배출계수는 1.520tCO₂, 스크랩 기반 전기로 방식은 0.279tCO₂로 나타났다. 단순 압연재뿐만 아니라 중간재 또한 CBAM 적용 시 비용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CN 코드 7207.1190 및 7207.1290에 해당하는 제품의 경우, 이번 초안에서 제시된 수치보다 더 높은 배출계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로 제품 가격 메리트로 단기 경쟁력 유지할수도?
Fastmarkets에 따르면 현재 EU 내 열연강판 가격은 톤당 약 612.92유로 수준이며, 수입재는 480~520유로로 집계돼 유럽산 대비 약 100유로 저렴한 아시아산 공급 물량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EU 수요처에서는 “현 시점에서는 수입재 가격이 유럽산보다 약 100유로 낮아 단기적으로는 경쟁력 유지가 가능하다”면서, “가격 차이를 통해 현재까지는 CBAM 비용 흡수가 가능하지만, CBAM 비용 부담이 본격 확대되면 생산 공정 전환 여부에 따라 수출 경쟁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업계에 따르면 올해 서유럽 시장의 열연 가격은 톤당 580~600유로 수준에서 등락을 반복했으며, 남유럽은 이보다 50~90유로 저렴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철강협회 자료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대EU 수출 열연광폭강대 평균 단가는 568달러로, 536~630달러 범위에서 거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계산 기준, 한국 고로 제품은 서유럽 시장에서는 CBAM 비용 일부 흡수가 가능하지만, 남유럽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CBAM으로 친환경 강재 시장 열릴까?
이번 초안은 CBAM이 EU 배출권거래제(EU ETS)의 무상할당(FAA) 조정 방식과 연동될 예정임을 명확히 하면서, 해당 제도가 단순한 비용 부과가 아니라 생산 방식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구조적 요구로 풀이된다.
유럽 철강업계 관계자는 “CBAM은 비용을 내라는 의미가 아니라, 저탄소 기술 도입을 요구하는 시장 신호”라며 “탄소 효율은 앞으로 유럽 철강 수출의 핵심 경쟁 지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자동차 등 고품질 제품을 요구하는 수요처의 경우, 고로 제품이 여전히 선호되는 경향도 있다. 업계에서는 “인증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고로 기반 고품질 강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하며, 일부 제품은 전기로 방식으로 대응 가능하더라도 모든 제품으로 확대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편, 국내 고로사들도 CBAM 등 저탄소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에 연산 25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설비를 건설 중이다. 해당 설비는 내년 상반기 완공 및 하반기 제품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제철 역시 지난해 당진제철소에서 연간 150만 톤 규모의 전기로 가동 준비를 완료했다. 전기로와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을 혼합하는 방식으로, 내년부터 연간 약 400만 톤 규모의 저탄소 고품질 자동차 강판 생산이 가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