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H형강 가격인상 ‘온도차’가 말해주는 것
H형강 시장의 방향성이 엇갈리는 중이다. 불과 몇 만 원의 격차를 두고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대형 생산업체가 11월 판매가를 115만원으로 책정하고 전월 판매분에 대해 '원칙 마감'을 단행했지만, 유통 시세는 여전히 110만 원 이하에서 맴돈다. 격차가 줄어들 기미도 현재로썬 보이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가격 주도권을 둘러싼 제강업계와 유통업계 간의 갈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싸움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생산원가 구조의 차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제강업체 간에도 목표 가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같은 H형강을 만들어도, 어떤 업체는 110만원에 수익을 낼 수 있고, 다른 업체는 115만원은 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대외비로 알려진 생산업체들의 원가를 모두 뜯어볼 수는 없지만 원가 상승의 핵심은 고정비 부담으로 추정된다.
과거 H형강 시장이 호황이던 시절에는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공략하며 설비를 풀가동했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했고, 수출을 주도하던 대형 업체의 고정비는 대량 생산으로 효과적으로 분산됐다.
그러나 중국산 저가 공세로 해외 수출 시장이 잠식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수출을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수출을 포기하거나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수출 물량이 빠진 설비는 가동률이 떨어졌고, 고정비 부담은 급증했다.
반면 내수 중심으로 적정 규모의 설비를 운영해온 업체는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애초에 수출 비중이 크지 않았기에 타격도 적었고, 작은 설비는 내수 수요만으로도 일정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정비 부담이 적으니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과거의 '강점'이었던 설비가 오늘날의 '족쇄'가 된 셈이다. 규모의 경제는 가동률이 뒷받침될 때만 유효하다. 가동률이 떨어진 대형 설비는 오히려 고정비 폭탄이 된다.
이런 구조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H형강은 여타 품목과 비교해 그간 성공적으로 가격을 방어해왔다. 실제 2021년 피크 대비 철근은 약 130만원에서 65만원으로 절반가량 폭락했지만, H형강은 2022년 약 140만원에서 108만원으로 23% 하락에 그쳤다. 이는 제강사들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가격 관리를 해왔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다만 수요가 줄어드는 시장에서 가격만 올리는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지금 H형강 시장이 직면한 갈등의 본질은 '가격 책정권'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생산원가 경쟁력'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영업 측면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생산과 설비 측면의 구조적 혁신이다. ‘가동률이 떨어진 대형 설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정비를 줄이기 위한 설비 통폐합이 필요한가?’, ‘아니면 틈새 수출 시장을 개척해 가동률을 끌어올릴 것인가?’ 등의 고민 말이다.
이는 단순히 영업부서의 가격 전략이 아닌, 전사적 차원의 결단이 필요한 문제다. 철근 시장이 이미 정부 주도의 설비 감축 압박에 직면한 상황에서, H형강 시장도 자발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얼마에 팔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에 생산할 수 있는가'로 답을 찾아야 한다. 다른 품목보다 선방했다는 안도감은 위험하다. 지금이 H형강 시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