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연 AD 여파, 中 냉연 반제품 확대하나...“복잡해진 셈법”
- 중국산 열연 13만→1.5 만 톤, 냉연 5만→7만 톤 - 열연 막히자 FH·CR 등 냉연 반제품 수입 확대 예고 - 열연 대신 냉연...업계, 중국산 우회수출 본격화 우려 - 경미한 가공 통한 수출 범위는?...정부 대응 주목
중국 및 일본산 열연에 대한 반덤핑(AD) 조치가 본조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중국 철강사들이 풀하드(FH)와 냉연강판(CR)을 활용해 사실상 ‘우회수출’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AD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시장 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열연 AD 본조사 진행…중국산 직접 수출 ‘사실상 차단’
현재 한국 정부는 중국산 열연에 대해 약 30% 수준의 잠정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무역위원회는 지난 9월 말부터 국가 및 업체별로 일본산 열연은 31.58~33.57%, 중국산 28.16~33.10%의 관세율을 적용 중이다.
특히 국내 고객사들이 재수출용으로 중국산 열연을 사용하는 것은 어렵고, 일본산처럼 보세구역을 통한 우회수출도 중국산의 경우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실제로 잠정관세가 부과된 9월 중국산 열연 수입 물량은 약 3만 톤, 10월에는 1만 5천 톤 수준으로, 지난해 월평균 13만 톤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중국 철강사들은 관세 규제가 없는 풀하드와 냉연강판을 활용해 수출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열연 AD 조치로 막힌 통로를 풀하드와 냉연강판으로 대체하겠다는 구상을 펼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참고로 냉연 반제품인 풀하드는 열연강판을 냉간압연한 뒤 소둔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강판으로, 가공성이 거의 없어, 그 자체로 사용되기보다는 주로 냉연강판이나 아연도금강판 등의 중간재로 사용된다. 용융아연도금설비만 갖춘 업체나 구조용강관 제조업체에서 원자재로 활용되고 있다.
중국산 냉연 반제품 얼마나 저렴하길래?
업계에 따르면 열연과 풀하드간 수입가격 차이는 톤당 약 30달러 수준이다. 이는 냉연사의 압연 총원가(7만~8만 원)에 비하면낮은 수준으로, “압연원가보다 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처럼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보니 일부 국내 열연 수요업체들이 저가 원소재 확보를 위해 풀하드 수입을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냉연사 입장에서도 열연 수입이 제한된 상황에서 풀하드 등을 중간재로 활용하면 원가 절감과 경쟁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 업계에 따르면, 대형 열연 수요업체들은 기존 압연 설비 부족으로 일부 풀하드를 수입해 왔는데, 일각에서는 열연 AD 이후에는 가격 메리트를 이유로 수입량을 늘리거나, EGI용 냉연강판 확보를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즉, 저가 원소재를 확보하기 위해 냉연도금재 중간재의 수입이 증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열연 AD 조치 이후 중국산 FH·CR 수입이 늘어나고, 국내 업체들이 이를 원가 절감 수단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산 냉연강판 수입 물량은 지난해 월 5만 1천 톤 수준에 불과했으나, 올해 하반기 월 평균 수입 물량은 7만 3천 톤으로 증가했다.
열연 AD 회피 위한 ‘경미한 가공’?
업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열연 AD 회피를 위한 경미한 가공’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열연 수요처 입장에서는 풀하드·냉연강판을 중간재로 들여와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중국산 열연을 경미하게 가공해 수출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통상 회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통상 관련 법무법인 관계자는 “열연에 최소한의 가공을 더해 풀하드로 수출하는 행위는, 중국산 슬라브를 제3국에서 후판으로 가공해 한국에 들여오는 구조와 유사하다”며 “이 역시 명백한 우회수출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도 “열연 AD 이후 중국 밀들이 FH와 CR 수출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며 “정부가 이를 단순한 시장현상으로 볼지, 반덤핑 회피행위로 판단해 추가 조치를 취할지가 시장의 최대 관심사”라고 말했다.
정부, 원산지 검증 강화…2026년부터 MTC 의무화
정부는 지난 4일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통상 리스크 및 불공정 수입 대응 강화를 예고했다.
우선 2026년부터는 품질검사증명서(MTC) 제출을 의무화해 수입 단계에서 원산지와 품질 검증을 강화한다.
관세청은 원산지 표시 위반 단속과 반덤핑 회피행위 조사를 강화하고, 철강협회와의 합동단속 및 우범정보 공유체계를 운영한다. 또 관세청-무역위원회, 관세청-철강협회 간 MOU를 올해 7~9월 중 체결해 기관 간 정보교환 체계도 정비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제3국 조립·가공을 통한 반덤핑 회피행위를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고, 보세공장 내 회피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원료과세 신고 의무화와 특허기간 단축(10년→1년)도 추진한다.
잠정관세 조치 이후 중국산 열연 수입이 눈에 띄게 줄어든 가운데, 대만·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무관세 지역을 통한 물량이 늘고 있다. 여기에 중국산 냉연 반제품 유입까지 확대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원가 절감과 시장 안정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