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Q&A] ② 반덤핑 계산 원리와 실제 사례 총정리
- 덤핑률 산정, 단순 가격 차이 아닌 품질·조건 반영해 공정하게 계산 - 산업 피해 판정은 생산·판매·고용 등 전반적 지표로 종합적으로 평가 - 반덤핑 관세율, 덤핑률vs산업피해율 더 낮은 쪽 택하는 ‘레서 듀티 룰’ 적용
반덤핑 제도는 실제 산업의 피해 여부, 관세율 산정 방식, 최종 판정 절차, 가격약속제 적용 가능성 등 복잡한 변수들이 얽혀 있다. 특히 한국의 반덤핑 제도는 WTO 협정과 긴밀히 맞물려 운영되며, 조사 결과에 따라 업계의 생존 환경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이번 연재 2탄에서는 덤핑률 산정 방식부터 산업 피해 평가, 반덤핑 관세율 결정 원리, 판정 절차와 실제 사례까지, 철강 업계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궁금증을 Q&A 형식으로 심층 해설한다. 본 기획은 스틸데일리 기자들과 스틸앤스틸 유승록 연구소장이 함께 준비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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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5. 덤핑 여부는 어떻게 계산하나?
A. 덤핑은 A사라는 기업이 자국 내에서 파는 정상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값에 외국에 제품을 수출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를 계산할 때는 보통 ‘내수 판매 가격’과 ‘수출 가격’을 비교한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1톤을 100만 원에 팔지만, 외국에는 70만 원에 팔았다면 그 차이인 30%가 덤핑률이 된다.
다만 단순히 가격 차이만 보는 것은 아니다. 제품의 품질, 거래 조건, 환율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비교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한다. 이렇게 해서 수출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덤핑 사실이 있다고 판정된다.
Q16. 산업 피해는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는가?
A. 덤핑이 확인됐다고 해서 바로 제재가 이뤄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덤핑으로 인해 국내 산업이 실제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다. 정부는 국내 기업들의 생산량·판매량·수익성·시장 점유율·고용 상황 등을 두루 조사한다.
예를 들어 덤핑 수입품 때문에 국내 제품 판매가 줄었다거나,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우가 있다면 산업 피해가 있다고 판단한다. 즉 ‘덤핑이 존재한다’와 ‘산업에 피해가 있다’라는 두 가지 조건이 함께 충족되어야만 규제가 시작된다.
Q17. 반덤핑 관세율은 어떻게 정하나? 덤핑률과 산업피해율 중 왜 낮은 쪽을 선택하나?
A. 반덤핑 관세율은 두 가지 수치를 기준으로 측정한다. 첫째는 덤핑률, 즉 내수 가격과 수출 가격의 차이를 계산한 비율이다. 둘째는 산업피해율, 즉 덤핑으로 인해 국내 산업이 입은 피해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관세율은 이 두 가지 가운데 더 낮은 쪽을 택하는데, 이를 ‘레서 듀티 룰(lesser duty rule)’이라고 부른다. 한국은 WTO 반덤핑 협정에 맞춰 관세법을 운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국제 규범을 따르고 있다. 필요 이상으로 높은 세금을 부과하면 무역 갈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산업을 보호하되, 최소한의 규제만 가하겠다는 취지다.
Q18. 반덤핑 최종판정이 나고 실제 관세 부과 시점은 얼마나 걸리나?
A. 반덤핑 조사는 통상 1년 안팎이 소요되며, 예비판정과 최종판정의 두 단계로 진행된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가 조사와 판정을 맡고, 최종판정에서 덤핑과 산업 피해가 인정되면 사건은 기획재정부로 넘어간다. 기획재정부는 무역위원회 판정 내용을 검토한 후, 실제 관세 부과 여부와 세율을 확정·고시한다. 이 과정때문에 최종판정 직후 바로 관세가 적용되지 않고, 보통 몇 주에서 2개월 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또한 예비판정 단계에서도 ‘잠정관세’를 먼저 부과할 수도 있다. 이때 관세를 내야 하는 주체는 해당 제품을 한국에 들여오는 수입 업체다. 따라서 수입 업체는 조사 과정 중에도 이미 비용을 부담하게 되고, 이는 곧 시장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Q19. 가격약속제(Price Undertaking)란 무엇인가? 판정마다 매번 같은 룰이 적용되는가?
A. 가격약속제란 수출 기업이 ‘앞으로는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팔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제도이다. 이렇게 합의가 이루어지면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도 덤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고,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 왜곡을 막을 수 있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모든 조사에서 반드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수출 기업이 가격 약속을 제안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경우에만 활용된다. 따라서 판정마다 같은 규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성격과 당사자 간 협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적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가격약속제는 한국에만 있는 제도가 아니라, WTO 반덤핑 협정(ADA, Anti-Dumping Agreement)에 규정된 국제 제도다. 따라서 WTO 회원국이면 원칙적으로 모두 활용할 수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인도, 브라질 등 주요 무역국들도 가격약속제를 제도적으로 두고 있다.
다만 나라마다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EU는 가격약속제를 ‘Price Undertaking’이라고 부르며, 특정 수출 업체와 합의해 최소수출가격(MIP, Minimum Import Price)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가격약속제가 실제로 활용된 사례가 있는데, 중국산 철강·금속 제품을 대상으로 한 반덤핑 조사에서 종종 체결된 바 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서의 수출을 이어가기 위해, ‘관세 대신 약속’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철강·석유화학 일부 품목에서 중국 기업들이 가격약속을 제안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수락한 사례들이 있다.
Q20. WTO 협정과 한국 제도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
A. 한국의 반덤핑 제도는 WTO 반덤핑협정(GATT 1994 제6조의 이행에 관한 협정)에 근거해 설계·운영되고 있다. 국내에서 반덤핑 조치를 취할때는 WTO 협정에 규정된 요건(덤핑 존재, 국내 산업 피해, 양자 인과관계)이 반드시 조사로 입증되어야 하며, 운영 절차별로도 WTO 규정과 일치하도록 하고 있다.
Q21. 반덤핑 규제 시 연장은 얼마나 가능한가? 최장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A. 반덤핑 규제는 일반적으로 최초 5년간 부과되고, 이후에도 덤핑 및 국내 산업 피해가 계속된다고 판단되면 5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하다.
한국의 반덤핑 규제 가운데 가장 장기간 유지된 대표적인 사례로는 일본·스페인·인도산 스테인리스 스틸바(봉강)와 일본산 스테인리스 후판을 꼽을 수 있다. 스테인리스 봉강은 2004년 7월 최초로 반덤핑 관세가 부과된 이후, 5년 단위 재심을 거쳐 2024년 1월까지 무려 20년간 유지됐다. 이는 국내 철강 제품 반덤핑 역사상 최장기 적용 사례로 기록된다. 일본산 스테인리스 후판 역시 원심 판정 이후 12년 만에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의 재심사 종료 결정이 내려지면서 관세 부과가 해제됐다.
Q22. 한국 철강 업계에서 올해 반덤핑 관세가 실제 적용된 사례는?
A. 무역위의 조사를 거쳐 올해 기재부가 잠정 혹은 최종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사례는 모두 5건이다. 최근 기재부는 9월 23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 4개월간 일본산과 중국산 열연에 반덤핑 잠정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산에는 31.58~33.57%, 중국산에는 28.16~33.10%의 관세율이 책정됐다.
지난 8월 28일 무역위는 중국산 탄소강 후판에 대한 반덤핑 최종 판정을 내렸다. 중국산 후판에 대해 27.91~34.10%의 관세를 부과하되, 중국 내 9개 주요 수출업체가 향후 5년 간 수출가격과 물량 약속을 이행할 경우 관세를 유예하는 방식이다. 현재 잠정 관세가 발효 중인 가운데 기획재정부가 최종 관세 부과를 검토 중에 있다.
또한 9월 5일부터는 중국산 스테인리스강 후판에 21.62%의 반덤핑 관세가 적용 중이다. 스테인리스강 평판압연 제품은 재심을 거쳐 반덤핑 관세(23.69~25.82%)를 5년 추가 연장했으며, 가격 약속을 수락한 업체는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베트남산 스테인리스강 냉간압연 제품의 경우 7월 11일부터 11.37~18.81%의 최종 덤핑방지관세가 적용 중이다.
Q23. 철강에서 예비판정과 최종판정 결과가 얼마나 차이가 있었는가?
A. 무역위의 예비판정과 최종판정 결과는 품목별로 차이를 보였으며, 쿼터 적용 여부와 반덤핑 조사 참여도 등이 최종판정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산 스테인리스강 후판(21.62%)은 예비판정과 동일하게 최종 확정되었고, 중국·인니·대만산 스테인리스강 평판압연 제품 역시 재심 결과 기존과 같은 판정이 유지됐다. H형강은 2015년 예비판정 당시 17.69~32.72%의 관세율이 제시됐으나, 최종판정에서 28.23~32.72%로 확정됐다.
중국산 탄소강 후판은 예비판정 27.91~38.02%에서 최종판정 27.91~34.10%로 상단 관세율이 약 4%p 낮아졌다. 반대로 베트남산 스테인리스강 냉연은 예비판정 3.66~11.37%에서 최종판정 11.37~18.81%로 크게 상향 조정됐다.
Q24. 최종 판정 결과에 대해서 기재부가 뒤집은 적이 있었나?
A. 우리나라 제도상 반덤핑 조사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가 예비·최종 판정을 내리고, 기획재정부가 이를 근거로 실제 관세 부과 여부를 최종 고시한다. 따라서 무역위가 긍정 판정을 내렸더라도, 기재부는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수급 상황, 외교적 고려 등을 반영해 부과 강도를 조정하거나 보류할 수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례를 보면, 기재부가 무역위원회의 최종판정을 전면적으로 뒤집은 경우는 찾기 어렵고, 대신 적용 대상이 일부 축소하거나, 관세율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표적으로 무역위의 중국·인니·대만산 스테인리스강 평판압연제품에 대해 5년 간 덤핑방지관세 부과 요청에 대해, 21년 9월 15일 기재부에서 3년으로 축소 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재심 판정에서는 원심 3년을 뒤엎고, 5년 간 연장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Q25. 반덤핑 조치가 국내 철강 산업(가격·수익성 등)에 미치는 영향과 수요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A. 철강의 덤핑 수입이 지속되면 국내 철강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응한 반덤핑 관세 부과는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시장 가격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복귀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국내 철강 가격은 반덤핑 관세율만큼 상승하게 된다. 국내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국내 철강 업체들의 생산과 국내 공급이 증대하고 수입은 감소하게 된다.
한편 지금까지 수입산 철강재를 사용하던 국내 수요가들은 단기적으로 반덤핑 관세 부과로 인해 △수입 원자재 가격 상승 △원가 상승 △수익성 하락을 겪을 수가 있다. 만약 덤핑으로 수입된 원자재를 사용해 제품을 가공한 후 최종 제품을 수출하는 최종 수요 업체들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인해 수출 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덤핑 수입된 원자재의 사용 확대로 국내 철강 생산이 감소하고 이로 인한 소재의 수입 의존도 증가는 더욱 큰 위험을 야기할 수도 있다. 덤핑 수입이 지속되어 수입산이 국산 제품을 완전히 대체할 경우 국내 철강 생산은 급감하거나 중단되고, 이로 인해 기존 수입산 철강 수요 업체들의 수입산 제품에 대한 가격 협상력은 급격하게 약화될 것이다. 현재보다 더욱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
이와 더불어 소재를 덤핑 수입재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수요 업체는 단순히 최종 제품의 가격 경쟁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높고, 이렇게 해서는 최종 제품에서도 덤핑 수출국의 가격 경쟁력을 극복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철강 산업만이 아니라 저가 수입산을 선호하던 기업들도 국내 생산 감소를 겪을 수밖에 없다.
Q26. 덤핑 수출국과의 분쟁 위험은 없나?
A. 반덤핑관세·상계관세 등 무역구제 조치는 항상 수출국의 보복을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2000년 초 중국산 마늘 수입에 대해 한국 정부가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취했을 때 중국은 보복조치로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한 사례가 있다. 이와 같이 수입국 일방의 무역구제 조치는 항상 상대국의 보복 조치로 이어질 수 있는 개연성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