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분쟁 화약고, 내진철근 시장 ‘술렁’

- 현대제철, 영남권 제강사 2곳에 경고장···특허 침해 논란 본격화 - 건설업계, ‘납품 철근 괜찮나’ 잇단 문의···특허 리스크 확산 - KS 규격 충족만으론 부족···특허와 시장 질서 사이 새 균형점 필요

2025-09-22     김영대 선임기자

국내 내진철근 시장이 거센 특허 분쟁의 회오리에 휘말리고 있다. 특허권을 보유한 현대제철이 영남권 제강사 2곳에 공식 경고장을 발송하면서 시작된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 분쟁을 넘어 건설사·유통사 등 철근 공급망 전반에 불안을 확산시키고 있다.

특히 ‘내진 성능’이라는 사회적 민감도가 높은 분야에서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시장의 흐름도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현대제철, ‘SD600S 특허 침해’ 정조준
현대제철이 문제 삼은 것은 ‘특허 제10-1787287호(고강도 철근 및 이의 제조 방법)’다. 이는 고강도 철근의 항복강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제어해 연성을 확보하는 기술로, 내진 구조물에 적합한 철근 제조 공정에 관한 권리를 포함한다.

현대제철은 경고장을 통해 해당 특허 기술이 일부 제강사의 제품에 무단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민·형사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수신처는 영남권에 위치한 중견 제강사 2곳으로 확인된다. 이는 국내 내진철근 시장에서 사실상 최초의 본격적인 법적 경고 조치다.

특허 침해 넘어 시장 관행까지 도마 위에
현대제철의 이번 조치는 단순히 특허 침해 의혹을 넘어, 시장의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목적성도 존재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내진용 철근이 가진 고유의 기술적·상업적 가치를 일반 제품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시장 관행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실제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철근 입찰 과정에서 내진용 철근을 포함한 고강도 제품이 일반 철근과 큰 차이 없이 거래되는 사례가 적지 않게 포착되고 있다.

사실상 현대제철의 경고장은 단순한 특허 침해 금지 요구를 넘어, 내진철근 시장의 상업 질서 확립까지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허 리스크, 건설사까지 확산···“납품 받은 철근은 괜찮은가?”
건설사들도 이번 사안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실제 일부 건설사들은 최근 철근 유통사와 제강사에 내진용 철근 관련 특허 상황을 확인하는 문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히 KS 인증만으로는 자재 선택에 충분치 않다고 보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내진철근의 특성상 프로젝트 입찰 과정에서 사용 자재가 함께 제출되는데, 만약 분쟁 이슈가 있는 제품이 포함된다면 향후 절차에 불필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술 vs 규격···KS 인증만으론 피할 수 없는 특허의 벽
현행 KS D 3562 규격은 내진철근의 항복비(YS/TS 0.85 이하), 연신율, 반복하중 시험 등을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과’ 중심의 성능 규격이며, 제품을 제조하는 ‘공정과 원리’는 보호하지 않는다.

반면 특허는 제조 방법과 기술 원리를 보호한다. 따라서 KS 규격을 충족한 철근이라도, 제조 방식이 특허 범위에 포함되면 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 이는 많은 제강사들이 간과하고 있는 위험 요소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제철의 조치에 대해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쌀을 씻어 밥 짓는 법을 특허 받은 격'이라는 비유처럼, 특허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문제 제기다.

아울러 현대제철이 해당 특허를 취득한 지 8년 가까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 갑자기 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높다. 특허 침해 단속보다는 시장 주도권을 노린 전략적 행보로 보인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건설사들을 자극하며 사안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같다”며 “결국 이번 사태는 기술 보호와 시장 공정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으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기술 기반 경쟁 구도 고착···대안은 ‘협상’과 ‘우회 기술’
현재 국내에서 내진철근 관련 주요 특허를 보유한 기업은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두 곳뿐이다. 그 외 다수 제강사들도 자체적으로 내진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나, 이번 사태 이후에는 특허 회피 설계나 라이선스 협상이 필수 전략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한 철강업계 인사는 “내진철근은 단가보다 기술력이 중요한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며 “제강사 입장에선 특허 분쟁을 피하기 위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거나, 보유 특허 간 크로스라이선스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