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산업 구조조정 정책] 한국의 철강산업 현황과 정책 방향 ③
- 최근 2~3년간 철강산업의 수요 크게 감소, 기업 수익성 악화 - 구조조정 정책은 시장안정, 철강산업 효율화, 탄소중립 대응의 방향으로 단계적으로 추진 - 향후 종합적, 전략적, 정교한 구조조정 정책의 수립 및 실행이 요구됨
지난 호에 일본과 EU의 철강산업 구조정책 추이를 살펴본 데 이어 이번호에서는 한국 철강산업의 구조정책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최근 K-스틸법이 국회에 발의되었고, 이어 지난 9월 1일,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이 연합뉴스와의 TV인터뷰에서 철강산업의 구조 개편의 일정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즉, 철강산업 구조조정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질문을 받은 자리에서 정부는 철강산업에 대해 생산량 감축, 설비 통폐합, 자발적 감산에 따른 인센티브 제공 등을 포함한 구조조정안을 마련 중이고 9월중에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현재 이와 같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우리나라 철강산업 구조조정 관련 현황 진단 및 그에 따른 정책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구조조정 관련 한국 철강산업 현황
철강산업의 구조조정은 해당 산업에서의 수요·공급 불균형, 기술 환경 변화, 국제 경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및 기업의 대응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구조조정과 관련된 한국 철강산업의 현황은 크게 ① 철강 수요의 감소와 기업경영 악화, ② 철강 산업에서의 저가 수입재 유입, ③ 국제적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④ 탄소 비용의 구조적 상향의 측면에서 언급될 수 있다.
1) 철강 수요의 감소와 기업경영 악화
철강 산업은 통계 특성상 철강 수요를 직접 나타낼 수 없고, 대신에 명목소비(생산+수입-수출)의 개념을 사용하나 수요가 감소하는 추세는 간접적으로 생산이나 수출이 감소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철강 생산은 조강 기준으로 2014년에 7,154만톤으로 피크를 찍고, 이후 연평균 -1.2%의 감소 추세를 나타냈고, 특히, 지난 3년간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전로와 전기로에 대해서도 피크를 기준으로 같은 방식으로 보면, 전로가 연평균 -1.5%의 감소 추세(2019~24)를, 전기로가 연평균 -4.2%의 감소 추세(2011~24)를 보였다. 고점 대비 전기로가 전로보다 급속한 생산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수출의 경우에도 같은 방식으로 보면, 조강 전체로 -5.2% 감소추세를 보였고(2012~24), 전로와 전기로는 각각 -6.8%(2017~24)와 -12.1%(2012~24)의 감소 추세를 보여, 전기로 부문이 전로 부문보다 가파른 수출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추세는 금년 상반기에도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철강 생산 및 수출 추이(2010~2024년)
한편, 철강사의 경영실적의 추이를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일관제철소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매출액은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고는 2010년대부터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다가 2021년부터 그리고 순이익은 2020년부터 빠르게 하락하는 양상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금년 상반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포스코/현대제철 매출액 및 순이익 추이(2010~2024년)
2) 철강 산업에서의 저가 수입재 유입
한국의 철강재 수입은 철강 수요의 감소 추세를 반영하여 지속적으로 줄어오는 추세를 나타냈으나 국내시장에서의 비중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난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서의 수출 제품이 기존 국내 가격보다 낮게 수입되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국내기업의 스프레드(판매가격-원재료 비용)을 축소시켜 왔고, 내수 시장에서의 가격을 하락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하여 왔다. 또한 이로 인해 중소 철강업체는 가격 경쟁력을 맞추기 어려워 수익성이 크게 감소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나아가 수입 물량이 급증시 단기적 과잉공급을 재고가 쌓이면서 이로 인해 재고변동성과 가격변동성이 높아져 국내 유통시장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과거에는 저가, 저품질 철강제품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중국과 인도 등에서 일부 고품질 제품과 일본 제품의 수입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 부문에서의 국내 시장의 불안정성도 증대되는 양상이다.
철강 국가별 수입과 철강재 가격 추이
3)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한국 철강산업에 대해 최근 해외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미국은 철강에 대해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EU는 세이프가드 연장과 CBAM 시행을 추진하면서 향후 한국산 철강 수출을 어렵게 하는 상황이다. 또한 미·중 갈등 장기화 속에서 한국산 제품이 우회 수출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고, 미국, EU, 인도, 동남아 등 주요 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은 상시적인 반덤핑·상계관세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철강산업에서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탄소 규제, 공급과잉, 환율·물류 불안정이 겹치면서 한국 철강업체들은 수익성 악화와 투자 위축,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해 있다.
4) 탄소 비용의 구조적 상향 추세
한국 철강산업은 앞으로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구조적 비용 상승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우선, 국제적 차원에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한국산 철강 수출품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비례해 사실상 관세 성격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더 나아가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교역국이 철강 산업을 대상으로 녹색조달·탄소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한국 기업의 대외 경쟁력은 점차 제약을 받을 것이다.
국내 제도적 환경도 탄소 비용 상승을 가속화할 것이다. 2026년부터 시행되는 배출권거래제(K-ETS) 4차 계획(2026~2030)은 무상할당 비중을 축소하고 유상할당을 확대하여 기업이 직접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탄소 비용을 늘릴 것이다. 또한 전력 부문에서도 탄소 가격이 전기요금에 반영되면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전기로 업체는 간접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도 탄소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을 비롯한 한국 철강기업들은 여전히 고로(용광로) 중심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공정 과정에서 막대한 직접 배출이 발생한다. 대기업은 일정 부분 투자와 해외 협력을 통해 대응이 가능하나, 중소 철강업체는 자금·기술 한계로 인해 비용 상승이 곧바로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2) 한국의 철강산업 구조조정 정책 방향
그동안 정부는 부분적으로 무역규제 강화, 설비 전환 및 탄소중립 전환 지원 정책 및 구조조정에 따른 지역산업 및 고용안정 정책을 추진해 온 바 있으나 종합적 체계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이하에서는 일본과 유럽의 철강산업에서의 구조조정 정책, 한국 철강산업이 처한 현황을 고려하여 향후 한국 철강산업의 구조조정 정책 방향을 간략히 제시해보고자 한다.
이상의 상황을 고려하여, 향후 정책은 1국내시장에서의 가격 방어(단기), 2설비 현대화와 제품 포트폴리오 개편 및 유통구조 개선(중기), 3탈탄소 중립 대응을 위한 수소환원/전기로로의 전환(장기)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유럽의 경우 세이프 가드 등을 통한 무역조치를 통해 역내 철강 시장의 안정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나가듯이 우리나라 철강산업에서도 국내 시장의 가격 안정을 위한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과 같은 조치에서 원산지 우회 차단이나 품질미달 규제 등의 정밀한 적용이 요구된다. 또한 수입 제품에 대해 품질 혹은 탄소기준과 연계된 체계적인 관리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중기적으로는 일본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의 경우처럼 철강산업의 고부가가치화, M&A, 설비조정 등을 적극 유도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이 비효율적인 공장을 폐쇄하고,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 라인을 축소 또는 전환하며, 기업의 M&A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공장 자동화·설비 현대화에 의해 생산성 향상 및 원가 절감을 도모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처럼 해당되는 기업들이 이러한 방향의 타당성 있는 구조조정 대책을 제시할 경우 정부는 이에 대한 금융, 세제 상의 충분한 지원하는 방식의 적용을 고려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탄소비용 상승, 탄소국경조정 적용, 탄소중립 달성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철강산업의 녹색전환(GX)이 빠르게 진행되도록 정부의 적극적 지원 정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유럽은 탄소국경조정을 통해, 그리고 일본은 GX 전환 국채 발행과 그린이노베이션 펀드를 통해 이미 이러한 움직임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CBAM에 정합한 표준을 설정하고, 수출용 저탄소 인증체계를 구축하거나 한국형 탄소차액 계약을 도입하며, GX 전환채를 포함한 규모있는 금융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수소환원 및 전기로로의 전환이라는 기술, 공정 전환에 따른 R&D자금이나 비용 부담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유럽 철강산업의 저탄소 공정 전환에 따른 운영비 격차를 정보가 보전해주는 정책이나 일본의 실증사업을 통해 수소활용 제철 기술 개발을 추진하는 일본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한편 이러한 단-중-장기 철강산업 구조조정의 진행과정에서 큰 영향을 받는 지역에 대한 고용 및 인력 대책과 대기업보다 상황이 더욱 열악하여 구조조정 전환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철강기업에 대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중소철강기업에 대해서는 전기로 기반의 전력요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산업용 전력 요금에 대한 요금 보조나, 배출권 거래제 비용의 일부 보전 혹은 사업 전환과정에 필요한 운전자금 지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3) 철강 산업정책의 부활 필요
최근 2~3년간 철강산업의 수요가 크게 줄고,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구조조정의 이슈가 부각되는 가운데 이것을 일시적이고 순환적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난 국내외 철강산업의 발전과정을 검토해 보면, 선진국들은 국내시장의 안정화를 위한 무역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후발 철강산업 생산국들의 생산이 늘어왔고, 그것이 수출을 전제로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적인 철강 공급 과잉 상황을 유발하고 있다.
내수와 수출 수요에 기반을 둔 한국 철강산업도 철강수요의 감소 추세와 그에 따른 기업들의 경영실적 악화로 표현되듯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시장 축소 양상이 분명하게 진행하고 있고, 특히 최근에 그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기간에서 이미 선진 각국은 철강산업 구조조정을 위한 자체적인 정책을 다각적으로 펼치고 있고, 이러한 가운데 철강기업들의 통상 환경은 더욱 불안정하게 되는 상황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산업정책이 사라졌다고 하나 현재의 세계 산업질서에서는 자국 산업의 이익을 위해 여러가지 방식을 동원하여 자국산업을 지켜나가려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적으로 산업의 근간인 철강산업에 대해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새로운 산업정책의 부활이라고 표현하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철강산업의 경우 최근의 상황은 보다 체계적이고, 정교하고, 전략적인 산업정책의 수립과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부분적으로 다양한 관련 정책을 실시했지만, 구조조정 상황이라는 철강산업 전반을 고려한 종합적 정책이 마련되어 진행되지는 못했다. 이전에 발의된 K-스틸법과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 제시는 그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대한 종합적, 단계적 정책이 포함된 로드맵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