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제4차 배출권거래제 앞두고 “위기감 고조”
- 고로는 배출권 부담, 전기로는 전기요금 부담 - 사전할당 축소에 유상할당 15% 상향 ‘이중고’ - 예측 가능한 제도 필요...탄소중립·경쟁력 균형 과제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할 제4차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2026~2030년) 할당계획 수립을 앞두고 철강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배출허용총량 축소와 전기요금 인상 전망이 겹치면서 추가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거래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배출권을 할당하고, 남거나 부족한 배출권은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정부는 업계 부담을 고려해 1·2차 계획에서는 유상할당 비율을 3%, 3차 계획에서는 10%로 적용해왔다.
4차 계획에는 700여 개 기업이 참여하며, 할당 대상은 발전 부문과 비(非)발전 부문으로 나뉜다. 정부는 기업에 돌아가는 사전할당량을 줄이는 대신 예비분을 확대하고,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을 대폭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 발전 부문은 2025년 10%에서 2030년 50%까지, 비발전 부문은 10%에서 15%까지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배출허용총량 축소...철강업계, 감당 어렵다
정부는 4차 계획에서 총량을 약 6억 4천만 톤으로 제시하고, 이 중 1억 톤 이상을 예비분으로 배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따라 기업에 돌아가는 실제 할당량은 크게 줄어든다.
철강업계는 최근 경기 둔화로 인한 일시적 배출량 감소를 근거로 총량이 과도하게 축소됐다고 지적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수요 둔화로 생산이 줄면서 배출량이 감소했을 뿐인데 이를 구조적 감축으로 오인해 총량을 줄였다”며 “경기가 회복되면 현 할당량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산업계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맞춰 2030년까지 약 11% 감축을 전제로 투자 계획을 세워왔다. 그러나 정부안은 약 30% 감축을 요구하는 구조여서 기존 계획 대비 3배 이상의 부담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감축 노력을 이어가려면 제도의 예측 가능성과 합리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 유지가 균형 있게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가 비용 수천억 원 예상...수익성 직격탄
철강업계는 배출권 구매 비용이 매년 수천억 원에 달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배출권 가격은 톤당 9천 원대지만, 2015년 도입 초기에는 4만 원까지 치솟은 전례가 있다. 가격이 다시 과거 수준으로 오르면 연간 수천억 원 규모의 부담이 발생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주요 철강사의 영업이익 규모를 고려하면, 탄소배출권 비용만으로도 손익분기점이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배출권 가격이 톤당 4만~6만 원일 경우, 관련 수입금은 지난해 2천억 원에서 2조 8천억~4조 2천억 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한편, 정부는 유상할당 확대가 시장 정상화를 이끌 것이라는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90% 이상을 무상으로 배분해 공급 과잉과 감축 노력 저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늘어난 수입금은 산업 탈탄소 설비 및 기술 도입, 저탄소 R&D, 연료 전환 및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 등에 투입된다.
친환경 전환 위해 전기로 확대하는데...전기요금 인상
배출권거래제의 직접 당사자는 발전사지만, 그 부담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 4차 계획에 따르면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은 현행 10%에서 2030년까지 50%로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발전사 원가부담 증가는 곧 전기요금의 인상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현재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가 28조원, 부채가 2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면서 전기로 공장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철강업계 입장에서는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오히려 비용 부담이 커져 친환경 투자가 기업 생존을 압박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소감축 기술개발은 진행 중...상용화는 ‘아직’
정부는 감축 설비 투자와 신기술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수소환원제철, CCUS(탄소 포집·활용·저장) 등 핵심 기술에 대한 세제·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내 철강사들이 연구개발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으나, 대규모 상용화에는 수조 원대 투자와 수십 년의 시간이 요구된다.
또한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기존 설비 개선 투자는 탄소감축 효과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탄소감축을 위한 투자 비용을 고객이 부담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탄소감축을 위한 대규모 설비전환은 시기상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해외 지원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독일은 ‘탄소차액계약제도(CCfD)’를 도입해 철강·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신기술을 적용할 경우, 설비투자비와 증가한 생산단가를 정부가 일부 보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완충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목표만 제시할 게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감당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지원과 규제가 병행되어야 탄소중립 목표와 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환경부는 12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제4차 할당계획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할당위원회,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하반기 내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