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세계 철강업계⑫ 건설재 중심 전기로 체제 ‘이집트’...고로는 ‘제로’
- 아프리카 최대 철강 생산국...중동 포함 2위 - 천연가스 자급 기반 DRI–전기로 체제 완성 - 조강 생산능력 1,600만 톤...실생산 1,070만 톤 - 건설·인프라 의존…봉형강 70% 이상, 판재는 수입 - 인구 1억 돌파에도 조강 소비량 세계 평균 절반 수준 - 가스·전력 불안·EU 통상 압박 등 구조적 리스크도
글로벌 철강산업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탄소중립 실현,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 강화 등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 각국은 생산체제를 신속히 재정비하며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에 본지는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튀르키예, 대만.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이란에 이어 이번 12부에서는 아프리카 최대 철강 생산국이자 중동 지역 2위 ‘이집트’ 철강산업을 조명한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지난해 이집트의 조강 생산량은 1,070만 톤으로 세계 19위를 기록했다. 이는 세계 20위인 사우디아라비아(960만 톤)보다 많고, 세계 18위인 프랑스(1,080만 톤)보다는 적은 수준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470만 톤)과 비교하면 두 배를 훌쩍 웃도는 규모다.
이집트 주요 철강 기업은 Ezz Steel을 비롯해 Egyptian Steel, Beshay Steel, Suez Steel 등이 꼽힌다. 특히 2018년 천연가스 자급 체제가 가시화된 이후 이집트 철강사들은 모두 DRI–EAF(직접환원철–전기로) 체제를 기반으로 조업하고 있다
아울러 이집트 철강산업은 내수 건설·인프라 수요에 기반한다. 정부의 신행정수도 건설,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주택 공급 확대가 주요 수요처다. 2024년 기준 인구는 약 1억 730만 명으로, 1인당 조강 소비량은 세계 평균(221kg/인)의 절반에도 못 미쳐 향후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가스·전력 공급이 리스크로 꼽힌다. 최근 몇 년간 가스 공급 축소와 정전이 잦아 전기로 가동률이 제한됐고, 원가 부담이 커졌다. 또한 홍해 위기 여파로 수에즈 운하 물동량이 급감, 원료 수입과 제품 수출에 물류 비용이 가중됐다.
국제 통상 환경도 녹록지 않다. 지난 6월 미국은 이집트산 철근에 대해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착수했다. 유럽연합(EU) 역시 덤핑 방지를 이유로 이집트산 철강재에 대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정리하면 이집트 철강산업의 강점으로는 ▲DRI–EAF 기반의 내수형 경쟁력 ▲아프리카·아랍권 내에서 비교적 원활한 서방과의 외교 관계 ▲권역 내 압도적인 생산 규모가 꼽힌다. 반면 ▲가스·전력 공급 불안정 ▲수에즈 운하 물류 차질 ▲환율 변동성 및 EU 등 주요 수출국의 덤핑 규제는 핵심 위험 요인으로 지적된다.
조강 생산능력 1,600만 톤...전기로 100%
/ 건설·인프라 수요에 의존…봉형강 생산 집중, 판재는 수입
이집트 철강산업은 천연가스를 바탕으로 한 DRI–EAF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조강 생산능력은 1,600만~1,700만 톤 수준으로 추정되며, 대부분이 전기로 기반이다. 2021년 고로가 휴지 상태에 들어간 이후, 자국 내에서 생산한 DRI를 바탕으로 전기로에서 조강을 생산하는 구조가 완전히 정착됐다.
앞서 언급했듯 이집트 산업구조는 건설·인프라 수요에 크게 의존한다. 전기로 중심 체제인 만큼 생산 품목도 봉형강에 집중돼 있으며, 전체 생산의 70% 이상이 철근·선재 등 봉형강 제품이다. 반대로 판재는 자급 능력이 부족해 전체 철강재 수입에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 밖에 수입은 봉형강 15~20%, 강관류 5~10% 수준이다.
반면 수출 시장에서는 고부가 판재보다는 슬라브, 철근, 봉형강 등 1차 제품이 주력으로, 후공정 가공 산업 기반이 아직 미흡하다. 주요 수출국으로는 스페인, 튀르키예, 이탈리아 등이 있으며, 최근 강재 수출입을 품목별로 보면, 수출은 봉형강류가 약 60%, 열연 중심의 판재류가 40%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경제권역별 제철소 10여 곳 분포
/ 델타·수에즈 운하권 집중…남부는 소규모 전기로
이집트 전역에는 현재 10여 곳의 주요 제철소가 가동 중이며, 대부분이 전기로 또는 DRI–전기로 체제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고로 기반 설비는 카이로에 1기만 남아 있으나, 사실상 가동을 멈춘 상태다.
전체 설비의 80% 이상이 델타(Delta)와 수에즈 운하권(Suez Canal)에 집중돼 있다. 이는 수도권과 항만에 인접한 입지, 원료 수입과 내수 소비지를 동시에 고려한 산업 전략의 결과로 풀이된다. 이집트 철강산업이 전기로 중심 체제로 고착화된 배경에는 ▲자국 천연가스를 활용한 DRI 공급망 ▲수에즈 운하를 통한 글로벌 수출망 ▲도시 인프라 확충에 따른 건설재 수요 확대가 자리잡고 있다.
■ 수에즈 운하권 – 수출 거점화, 대규모 투자 본격화
수에즈 운하 경제구역(SCZone)은 이집트 철강산업의 대표적 수출 거점이다. 아인소크나(Ain Sokhna)와 아타카(Attaka) 일대에는 전기로 2기와 전기로/DRI 설비 2기가 집중돼 있으며, 슬라브와 철근 등 반제품 및 건설재를 중심으로 스페인, 튀르키예, 이탈리아 등 유럽·지중해 시장으로 수출된다.
최근에는 중국 Xinfeng Steel이 약 15억 달러 규모의 복합 산업단지 건설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연산 200만 톤 규모 열연 설비를 포함해 냉연, 알루미늄 합금, 건축자재 라인까지 포함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향후 5년 내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추진하는 ‘수출 지향형 산업 허브’ 전략과 맞물려 수에즈권의 역할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 델타권 – 전통적 내수 기반 중심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메노피아(Menofia), 칼리우비아(Qalyubia) 등 델타 지역은 이집트 산업의 전통적 중심지로, 내수형 철강 공급망의 핵심을 이룬다. 이곳에는 전기로 3기와 전기로/DRI 2기가 가동 중이며, 전체 생산의 70% 이상이 철근·형강 등 봉형강에 집중돼 있다.
특히 메노피아 내 사닷시티(Sadat City) 플랜트들은 건설재 대응형 철근·형강 생산에 특화돼 있으며, 알렉산드리아는 평판재 생산 능력을 일부 보유해 향후 확장 가능성도 크다는 평가다. 이 지역은 수도권 건설 수요를 흡수하는 동시에, 내수 공급의 안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 대카이로권 – 고로의 마지막 흔적
카이로 지역에는 이집트에서 유일한 고로 설비 1기가 존재한다. 그러나 2021년 이후 사실상 가동을 멈추면서, 현재는 상징적 의미만 남아 있다.
대카이로권은 인구 2,000만에 달하는 거대 소비지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철강 공급은 대부분 델타와 수에즈권 설비에 의존하고 있다.
■ 북상이집트 – 소규모 전기로 거점
베니수에프(Beni Suef)를 중심으로 한 북상이집트 지역에는 전기로 1기만 가동 중이다. 이 지역 설비는 주로 지역 내 건설 프로젝트 수요를 충족하는 소규모 거점 성격을 띠며, 전국적인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다만 정부가 상이집트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 향후 인프라 수요 확대와 함께 소규모 제철소의 역할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프리카 최대 철강사, ‘에즈스틸’
/ 700만 톤 생산 능력...이중 봉형강이 470만 톤
에즈스틸(Ezz Steel Company)은 이집트를 대표하는 민영 철강사이자 아프리카 최대 규모르르 자랑한다.
현재 연간 약 700만~800만 톤의 조강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집트 철강 수급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이 가운데 봉형강이 약 470만 톤, 판재류가 약 230만 톤을 차지하며, 지난해 조강 생산량은 630만 톤으로 세계 철강사 순위 62위에 올랐다.
본사는 카이로에 있으며,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사다트시티, 라마단시티 등 주요 산업지대에 생산 거점을 운영한다. 생산 공정은 직접환원철을 바탕으로 한 전기로 기반 체제로, 주요 제품은 철근, 와이어로드, 빌릿, 슬래브, 열연 및 냉연강판 등이다.
내수 의존도가 여전히 큰 편이지만, 최근에는 수출 다변화 전략도 가속화하고 있다. 태국, 이탈리아,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유럽과 중동 시장으로의 수출이 확대되고 있으며, 아프리카 인접국 수요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이집트 철강의 역사 ‘베셰이스틸’
/ DRI 비롯 부원료 통해 포트폴리오 다변화
베셰이스틸(Beshay Steel)은 1948년 설립된 이집트 및 중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민영 철강사다.
현재 연간 약 400만 톤 규모의 조강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DRI와 전기로 기반 제강 설비를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주요 생산품은 철근, 와이어로드, 빌릿, 단면강 등으로, 건설·인프라 산업에 필수적인 봉형강 제품에 특화돼 있다. 동시에 연질강과 부원료(액화가스, 석회, 슬래그, 밀스케일, 산화아연 등)도 함께 생산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본사는 카이로 나스르시티(Nasr City)에 있으며, 이집트 전역에 주요 제철소를 운영한다. 핵심 생산거점인 ESISCo(Egyptian Sponge Iron and Steel Company)를 비롯해, 그룹은 연간 300만 톤 규모의 제강공장(Melt Shop), 120만 톤 규모의 압연 설비, 70만 톤 규모의 압연 라인, 50만 톤 규모의 단면강(Section Mill) 설비 등을 갖추고 있어 안정적인 일관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국영·민영 자본 결합한 신흥 철강사 ‘이집트스틸’
/ 철근, 와이어로드 등 봉형강 제품 주력
이집트스틸(Egyptian Steel)은 2010년 설립된 이집트의 신흥 철강사로, 자국 내 철강 생산의 약 20%를 담당하는 등 설립 이후 빠른 속도로 내수 건설 시장에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집트스틸은 민영 기업으로 출발했으나, 2018년 이집트 군 관련 국영 투자기관인 NSPO(National Services Project Organization)가 지분 82%를 인수하며 최대 주주가 되었고, 나머지 18%는 에즈스틸(Ezz Steel)이 보유하고 있다. 이로써 국영 자본과 민간 자본이 결합된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
이집트스틸의 조강 생산능력은 약 200만~300만 톤 수준으로 추정되며, 지난해 생산량은 약 168만 톤을 기록했다. 주요 제품은 철근, 와이어로드, 빌릿 등 봉형강으로, 설립 이후 대규모 주택 개발, 교통 인프라 확충 등 국가 전략 프로젝트에 핵심 자재를 공급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이집트 스틸은 “New Generation of Steel”을 기치로 내세우고 전기로 기반의 친환경·효율적 생산 체제를 통해 고품질 제품과 지속 가능한 공급망을 지향하고 있다.
건설재 중심 철강사 ‘수에즈 스틸’
/ 철도 및 중장비 산업용 강재로 영역 확대
수에즈스틸(Suez Steel)은 스에즈주 아다비야에 본사를 둔 철강사로, DRI와 전기로 기반 생산체제를 통해 연간 약 210만 톤의 조강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주요 제품은 DRI, 빌릿, 철근, 코일, 컷앤벤드 제품, 돌로마이트 등으로, 건설·인프라 프로젝트용 봉형강 생산에 특화돼 있다.
회사는 2006년 레바논 LITAT 그룹 인수 이후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2012년까지 약 200만 톤 규모의 제강 체제를 완성했으며, 현재는 연 195만 톤 규모의 DRI 플랜트, 205만 톤 규모의 제강공장 2기, 세 개의 압연공장, 연 3만 톤 규모의 컷앤벤드(Cut & Bend)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철도 및 중장비 산업용 강재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해 연 500만 톤 규모의 고철 농축·펠릿화 공장과 연 80만 톤 규모의 레일 및 중부 구조재 생산 공장을 새로 가동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