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기의 세계 철강업계⑪ DRI+전기로 올인 ‘이란’

- 세계 10위 조강 생산...서아시아 철강 패권 장악 - 천연가스·철광석 풍부, DRI 기반 전기로 체제 구축 - 국영기업 중심 산업구조...업화·제재 대응의 산물 - 내수 2천만 톤, 수출 1천만 톤...반제품 수출 70% - 지정학 리스크 상존...SOC, 방위산업이 내수 견인

2025-08-18     박현욱 선임기자

글로벌 철강산업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탄소중립 실현,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 강화 등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 각국은 생산체제를 신속히 재정비하며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에 본지는 미국,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튀르키예, 대만,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에 이어 이번 11부에서는 ‘이란’ 철강산업을 조명한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2024년 이란의 조강 생산량은 약 3,100만 톤으로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이는 서아시아 전체 생산량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란이 이 지역의 철강 패권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란은 천연가스 등 풍부한 자원과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철강 강국으로 자리 잡았지만, 지정학적 갈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시리아 내전, 시아파 맹주(이란)와 수니파 맹주(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중동 패권 경쟁, 예멘 내전 등 지역 분쟁과 함께 최근에는 미국·이스라엘과의 군사적 충돌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정치·외교적 불안정은 수출 확대와 해외 투자 유치에 구조적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은 역설적으로 철강 수요를 자극하기도 한다. 분쟁 이후의 사회간접자본(SOC) 복구·재건, 제조업 및 에너지 시설 확충, 방위산업 무기 생산 등에 필요한 철강재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 철강업계는 이러한 내수 기반과 주변국 수요를 바탕으로 성장 동력을 유지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란 철강산업의 구조다. 이란 내 주요 제강사 대부분이 국영기업이다. 이는 1960~70년대 팔라비 왕정 시절, 군수산업과 인프라 건설 자립을 목표로 정부가 직접 제철소를 설립한 데서 비롯됐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도 주요 산업의 국유화 정책이 강화되면서 철강 역시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전략산업으로 남았다. 특히, 철강은 석유·가스와 함께 이란의 외화 획득 수단이자, 대외 제재 국면에서 국가가 통제해야 하는 핵심 자원으로 인식돼 왔다.

조강 생산능력 4.500만 톤
/ 막대한 천연가스에 힘입어 DRI 생산에 박차
현재 이란의 조강 생산능력은 약 4,400만~4,500만 톤으로 추정되며, 이 가운데 고로 기반 생산은 500만 톤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전기로(EAF)에 집중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구조는 이란의 자원 환경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이란은 철광석과 천연가스가 풍부해 직접환원철(DRI, Direct Reduced Iron) 생산에 최적화돼 있다. 이란의 철광석 매장량은 세계 9위,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2위다.

DRI 공정은 철광석을 천연가스를 환원제로 이용해 직접 환원하는 방식으로, 이란은 필요한 두 자원을 모두 확보하고 있어 전기로 중심의 철강 구조를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고로(BF) 방식은 대량의 코킹용 석탄(coking coal)을 필요로 하지만, 이란은 석탄 자원이 부족한 데다 제재로 해외 수입도 쉽지 않아 고로 확대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내수 소비량은 약 1,800만~2,100만 톤으로 추정되며, 지난해에는 약 1,000만 톤, 60억 달러 이상의 철강 제품을 수출했다. 다만. 완제품보다는 반제품 중심의 수출 비중이 크다. 전체 수출 물량 가운데 약 65~70%가 반제품(빌릿, 슬래브 등)으로, 봉형강이 15~20%, 판재류가 10~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란 철강 수출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전략적 요충지와 맞닿아 있는데,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20% 이상이 지나는 이 해협은 이란산 철강이 중동과 아시아로 향하는 주요 항로다. 주요 수출국은 동아시아와 중동 지역에 집중돼 있으며, 태국과 아랍에미리트(UAE)가 전통적으로 최대 수출처이고, 이라크, 오만, 대만, 튀르키예 등도 주요국으로 꼽힌다.

이란 전역 20여 개 제철소 가동
/ 천연가스 활용 DRI 기반 압도적 비중
이란에는 현재 총 20여 곳의 제철소가 가동 중이다. 이 가운데 고로 기반 제철소는 단 1곳, 고로/전기로 복합 설비는 1곳, 전기로는 1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26곳은 모두 천연가스를 활용한 DRI-전기로를 연계했다.

철강 원료 자급과 함께 막대한 천연가스 자원을 활용한 DRI 중심 구조는 이란 철강의 뚜렷한 특징이다. 이는 철광석 및 가스 생산량을 모두 보유한 국가적 강점을 반영한 결과로, ‘세계 최대 DRI 생산국’이라는 타이틀을 뒷받침하고 있다.

■ 중부 – 이란 철강의 심장부
중부는 이란 철강의 심장부다. 총 9곳의 제철소가 자리하며, 고로/전기로 복합 설비 1곳과 전기로·DRI 8곳이 가동 중이다.

이란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교통 요충지 이스파한(Isfahan)은 이란 최초의 고로 일관제철소인 이스파한 스틸(Esfahan Steel)을 품고 있어 이란 철강산업의 상징적 기점이기도 하다. 현재도 전기로·DRI 설비와 결합해 내수와 수출을 아우르는 복합 철강 클러스터다.

실크로드 무역의 거점 야즈드(Yazd)는 ‘DRI 클러스터’로 불릴 만큼 전기로·DRI 설비가 밀집해 있다. 특히 중동 최대 DRI 생산 거점 중 하나로, 내수와 수출을 동시에 겨냥하는 이란형 DRI 전략의 핵심 축이다.

■ 남부 – 수출 전진기지, 항만 인프라 활용
남부에는 총 10곳의 제철소가 자리잡고 있다. 고로 1곳과 전기로·DRI 9곳으로 구성돼 있으며, 페르시아만 항만 인프라를 활용한 수출형 제철 벨트다.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케르만(Kerman)은 이란 최대 철광석 광산인 골고하르 광산(Gol Gohar Mine) 등이 있는 곳으로 고로 1곳, 전기로·DRI 4곳이 밀집해 있다. 원료-생산-내수까지 자급형 철강 밸류체인이 작동하는 지역이다.

호르무즈 해협과 접한 호르모즈간(Hormuzgan)은 항만을 기반으로 한 수출형 전기로·DRI 설비 3곳이 운영 중이다. 이란 철강의 해외 물량이 가장 먼저 출하되는 전진기지로 꼽힌다.

파르스(Fars)는 내수 지향형 전기로·DRI 2곳이 자리하며, 건설·소비재 산업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 서부 – 천연가스 자원과 내수 대응
서부는 천연가스 자원과 내수 수요를 기반으로 한 DRI 벨트로, 이란 철강의 또 다른 심장으로 꼽힌다.특히, 페르시아만과 이라크와 접한 쿠즈스탄(Khouzestan) 이란 최대 천연가스 생산기지로 총 4곳의 전기로·DRI 설비가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는 대규모 전기로·DRI 설비 2곳이 집중돼 있어, 자국 내 최대 봉형강 공급 거점으로 자리잡아 이란의 인프라·건설 산업을 뒷받침한다.

■ 북서부 – 국경 교역과 연계된 철강 거점
북서부에는 총 3곳의 제철소가 운영 중이다. 전기로 1곳, 전기로·DRI 2곳이 가동되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튀르키예와 코카서스로 이어지는 교역로에 인접해 있다.

동아제르바이잔(East Azerbaijan)은 서부 국경과 가까워, 이란 북서부 산업지대와 국경 교역을 연결하는 기능도 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철강은 내수뿐 아니라 인접국 건설·제조 수요를 담당한다.

■ 동부 – 동북 내수시장 대응과 지역 균형 공급망
동부에는 전기로·DRI 설비 3곳이 분포한다. 라자비 호라산(Razavi Khorasan)과 남호라산(South Khorasan)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은 규모는 제한적이지만, 동북부 내수시장과 산업 수요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중동 최대 일관 제철소 ‘MSC’
/ 조강 생산 세계 40위 권....세계 최대 DRI 생산
이란 국영 광업개발공사 IMIDRO 산하 기 모바라케 스틸(Mobarakeh Steel Company, MSC)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지역 최대 제철소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직접환원철(DRI) 생산 기업으로 꼽힌다.

이란 이스파한 주 모바라케 지역에 본사를 둔 모바라케 스틸은 꾸준히 생산능력을 키워온 모바라케 스틸의 조강 생산능력은 약 1,300만 톤 수준으로 꼽히며, 지난해 조강 생산량은 1,019만 톤으로 글로벌 순위 44위에 올랐다.

이란 이스파한 주 모바라케 지역에 본사를 둔 MSC는 꾸준한 증설을 통해 현재 약 1,300만 톤 규모의 조강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2024년 조강 생산량은 1,019만 톤으로, 세계 철강사 순위 44위에 올랐다.

MSC의 강점은 고로는 물론, 전기로 기반의 DRI 일관 체제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자국 내 주요 철광석 자원지인 골고하르(Golgohar), 차드말루(Chadormalu) 광산에서 원료를 조달해 자사 펠릿 공정과 환원로에서 DRI를 생산하고, 이를 전기로·연속주조·압연·도금 공정을 거쳐 최종 제품으로 공급한다.

주요 생산품은 슬래브, 열연, 냉연, 아연도금강판, 컬러강판, 주석도금강판 등이며, 자동차·가전·포장재·건설·식품 산업에 폭넓게 활용된다. MSC는 이란 내수 시장을 사실상 주도하는 동시에 중동 주변국과 아시아, 유럽 일부 지역으로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이란 최초 DRI·EAF 공정 도입 ‘KSC’
/ 반제품 주력 생산...중동 철강 무역의 핵심
이란 국영 대표 철강사인 쿠제스탄 스틸(Khouzestan Steel Company, KSC) 후제스탄 주 아바즈(Ahvaz)에 본사를 둔 기업으로, 모바라케 스틸(MSC에 이어 이란 제2의 철강기업으로 꼽힌다.

KSC는 이란 최초로 DRI와 전기로 복합 제강 체제를 도입한 기업으로, 업계에 따르면 연간 약 700만 톤 규모의 조강 생산능력과 600만 톤 수준의 DRI 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체제를 기반으로 중동 지역을 대표하는 주요 전기로 제강사로 꼽힌다.

주요 제품은 빌릿(billet), 블룸(bloom), 슬래브(slab) 등 반제품으로, 완제품보다는 국제 수요가 꾸준한 반제품 생산에 강점을 두고 있다. KSC의 생산품은 이란 내수뿐 아니라 중동 및 아시아 시장으로 활발히 수출되며, 이란 철강의 주요 외화 획득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KSC는 이란을 넘어 중동 철강 무역의 핵심 공급자로 자리하고 있다.

다만, 이란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물류 제약으로 직접 수출이 제한되면서, KSC는 중국·동남아·중동 등 제재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시장을 중심으로 판로를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란 철강산업의 산실 ‘ESCO’
/ 고로 기반에 약 600만 톤 생산능력 갖춰
이스파한 스틸(Esfahan Steel Company, ESCO)은 모바라케 스틸(MSC), 쿠제스탄 스틸(KSC)과 함께 이란 3대 철강사로 꼽힌다.

이란 정부가 설립한 최초의 국영 일관제철소인 ESCO는 1970년대 본격 가동을 시작하며 이란 철강산업의 출발점을 연 기업이다. 현재 약 600만 톤 규모의 조강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고로와 전기로를 모두 운용한다.

ESCO는 1960년대 말 소련의 기술 협력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당시에는 군수산업과 건설용 강재를 공급하기 위한 국가 전략 프로젝트로 추진됐으며, 지금까지도 내수 철강 수급을 뒷받침하며 국가 산업 발전과 인프라 건설의 핵심 공급원 역할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들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수출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주요 제품은 철근, 형강, 빌릿, 블룸 등 건설·산업용 강재로, 특히 건축자재와 구조용 강재에 강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제품군을 바탕으로 ESCO는 이란 내수 건설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시켜왔다.

KSCx, 동북부 제강 거점
/ 전기로-DRI 기반 내수 중심 공급 담당
호라산 스틸(Khorasan Steel Complex, KSCx)은 내수 수급 안정과 지역 경제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영 계열 기업으로, 동북부 산업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이 회사는 직접환원철과 전기로 기반 제강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연간 약 200만 톤의 조강 생산능력과 160만 톤 수준의 DRI 생산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주요 제품은 빌릿(billet)과 블룸(bloom) 등 반제품으로, 건설과 인프라용 원재료 공급에 강점을 가진다. 이러한 제품군을 바탕으로 호라산 스틸은 이란 내수 건설 시장에 공급한다.

설립 초기부터 내수 중심의 전략을 구사해온 호라산 스틸은 수도권과 남부에 집중된 철강산업을 동북부로 분산시키는 국가 균형 발전의 상징적 기업으로 평가된다. 안정적인 고용 창출과 지역 산업단지 성장에도 크게 이바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