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최근 동향] EU CBAM 본격 적용에 대한 각국 대응 동향 ②
- 국내 탄소가격 부과를 통한 EU CBAM과 연동 추진 - CBAM과 유사한 제도의 국내 도입 검토 - 자국내 철강산업의 탄소감축책 적극 추진
EU CBAM은 일종의 관세와 유사한 효과를 갖는 무역정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철강산업에서의 국제적 무역정책의 공조 및 협상이 강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관련 정책 방향 수립이나 기업의 대응 방향 설정을 위해 주요국들의 철강산업의 CBAM에 대한 대응 양상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EU 역내 산업이 탄소배출권 거래제도(EU ETS)를 통해 부담하고 있는 탄소비용을 수입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탄소누출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26년에 정식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 제도는 유럽 이외의 국가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켜 왔고, 세계 각국은 자국 산업의 부담 증가, 수출 감소, 무역 불균형 등을 우려하며 나름의 대응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EU 이와 국가들의 대응 양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일본처럼 제도를 받아들이고, 국내적으로 능동적인 대응을 모색하는 국가들. 둘째, 인도나 중국, 러시아처럼 제도 자체에 비판적이며 강하게 법적·외교적 대응을 추진하는 국가들. 셋째, 영국이나 캐나다처럼 자국 내 유사한 제도를 추진하는 국가들이다. 물론 실제 이러한 구분이 엄밀한 것은 아니고 어느 정도 각각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캐나다의 탄소가격 체계
(1) CBAM에 대한 협력적 모색
일본, 튀르키예 등은 CBAM에 대한 제도적 수용과 기업의 대응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자국 내 탄소배출 규제 체계와 CBAM을 연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국내 탄소가격 부과 → EU CBAM 공제 연결’이라는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2026 회계연도부터 전면 가동될 GX-ETS(GreenTransformation-ETS, 일본 배출권거래제)와 2028년부터 시행 예정인 화석연료 수입 및 생산자에 대해 부과하는 GX-Surcharge(화석연료 부담금) 등을 통해서 국내 탄소가격 체계를 단계적으로 확립하고 있다. 또한 일본철강연맹(JISF)은 2023년 10월에 그린스틸 가이드라인의 제정을 통해 철강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탄소배출 감축을 도모하고 있다(JFE 스틸의 JGreeX 등), 정부는 이를 이어 받아 그린스틸을 사용한 자동차 제품에 대해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U CBAM의 규정상 원산국에서 실제 납부한 탄소가격은 CBAM 부담에서 공제되므로, 일본의 대응은 이와 같이 향후 GX-ETS와 GX-Surcharge를 통해 납부한 비용이 철강 수출 시 EU에서 감액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튀르키예는 2025년 7월의 기후법 제정으로 국가 ETS의 법적 기반을 확립했고, 2026년부터 자국내에서 ETS를 시험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터키는 2023년 기준으로, 대EU 철강 수출이 450만 톤(튀르키예 전체 수출의 약 31%)에 달하고, 철강 생산의 약 70~75%가 전기로(EAF) 기반이라 직접배출은 낮은 편이지만, 전력계통의 배출계수가 높아 간접배출이 주요 비용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후법은 국내의 ETS 납부 비용을 EU CBAM에서 공제받을 수 있는 근거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미 2014년부터 MRV(모니터링·보고·검증) 제도를 운영하여, 데이터 인프라는 상당 부분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철강산업에서 일본은 고로 중심 생산구조를 저탄소화하는 기술·수요 창출에, 튀르키예는 ETS 조기 정착과 전력계통 탄소집약도 개선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러한 조치들은 철강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고 CBAM 순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2) 강력한 반대와 자국내 탄소 감축 대응
반면, 인도, 중국, 러시아 등은 CBAM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CBAM이 WTO 규범을 위반할 소지가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발전 가능성을 침해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인도는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CBAM을 핵심 쟁점으로 다루며 제도 유예 또는 적용 면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WTO 제소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인도는 이와 같이 CBAM을 무역장벽이라고 간주하고 시사해 왔다. 정부와 업계는 EU와 CBAM 기술협의를 지속하면서 대EU 수출 노출을 관리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5개년간의 대EU 철강 수출액을 토대로 하여 CBAM의 영향평가에 착수했고, 업계단체(FICCI 등)는 추가 비용(20–35%)의 가능성과 중소업체의 데이터·보고 역량의 부족을 경고하기도 했다. 한편, 동시에 인도는 국내용 탄소가격 설정 기반 확보의 차원에서 2023년에 탄소크레딧거래제(CCTS)를 고시한 뒤 의무 시장 설계와 절차를 잇달아 확정·공개했다. 그것의 핵심은 온실가스 배출집약도 목표를 설정하여 목표에 비해 더욱 줄인 사업장은 탄소크레딧(CCC)을 발행받고, 못 미치는 업체에게는 부족분을 구매·반납하도록 한 것이다. 인도 정부는 2023–24년 데이터를 기준연도로 삼아 2025–26, 2026–27년 목표치를 부여하는 내용을 발표하였고, 2030년까지의 감축 계획을 추진중이다.
중국은 CBAM의 파급을 강하게 비판하는 동시에 국내 제도의 정비를 병행하고 있다. 우선 중국 상무부는 CBAM을 WTO 기본원칙과 규범에 부합해야 하며 녹색 무역장벽으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해 왔고, WTO 틀안에서 다자 논의로 풀자는 입장을 반복해 밝혔다. 또한 WTO 위원회에서도 EU가 CBAM을 제안한 뒤, 중국을 포함한 여러 회원국이 특정무역우려(STC)를 공식 제기하며 비차별·투명성·개도국 부담 문제를 제기해왔다. 한편, 동시에 중국 환경부는 2025년에 국가 ETS의 업종을 확대하여 철강·알루미늄을 공식 편입하고, 해당 업종의 2024년 검증배출을 기준으로 적용하였다. 이 때 무상배분을 통해 부족분의 구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구조로 설계하였다. 그리고 2025-26년에는 산출량 연도 배출 기준을 설정하여 깨끗한 설비는 잉여를, 더 오염 집약적 설비는 부족분에 대한 유상 구매를 하도록 하는 구조를 설계하였으며, 이후에는 그 기준을 강화할 계획이다. 나아가 철강산업에서는 초저배출(ULE) 개조와 전기로(EAF) 확대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철강협회는 2025년 말까지 생산능력의 80%를 초저배출 기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신규 석탄기반 제철 억제 및 EAF 신·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무엇보다 강력한 법적 대응을 통해 2025년 5월에 WTO 분쟁을 공식 제기하며, CBAM과 EU ETS가 GATT·보조금협정 등과 양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가 문제 삼은 내용의 핵심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CBAM이 수입품에 대해 부과하는 보고의무 및 배출량 산정 기준이 자의적이며 제3국의 시스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수입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적용되는 내재배출량(Emissions embedded) 계산 방식이 투명성과 공정성을 결여하고 있다. 셋째, EU ETS 하의 무상할당 제도가 실질적으로 수출 보조금 역할을 하고 있다. 넷째, 국산과 수입 제품 간 차별, 국가별 차등대우가 명백히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내국민대우 원칙 및 최혜국 대우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그러나 CBAM 제도가 제시된 이후 대EU 철강 교역이 제재로 이미 급감하면서, CBAM의 논란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EU의 러시아산 철강·반제품 제재로 수입액·물량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는 아시아·중동 및 아프리카 시장으로 수출선을 돌리는 움직임이 진행 중이다. 러시아 국내 탄소정책과 관련하여, 지역 단위의 실험과 자발적 크레딧 시장 등의 특성으로 인해 중앙 차원의 ETS 도입은 요원한 상황이다.
(3) 자국 독자의 CBAM 체제 도입 모색
한편,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일부 선진국은 EU와 유사한 방식의 CBAM 제도를 구축하거나 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2027년 시행을 목표로 자국 CBAM 제도 도입을 확정지었고, EU와 제도간 연계도 추진 중이다. 미국은 의회에서 외국산 오염물질에 대한 과세를 부과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으며, 자국 내 탄소가격제 도입 여부를 검토중이며. 캐나다는 최근 CBAM 도입을 공론화하고 있는 양상이다.
영국은 자국형 CBAM을 2027년 1월 1일 도입하겠다고 확정했고,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수소 등 탄소집약 수입품에 국경조정 가격을 매기는 방식의 내용을 2025년 4월에 발표하였다. 영국은 CBAM 도입을 전후로 하여 국내 철강의 비용 급변을 막으려는 조치로서 UK-ETS의 무상할당 개편 시점도 2027년으로 미루어 자체적인 CBAM과 보완적으로 작동하게 했다. 철강산업에서는 고로 → 전기로(EAF) 전환을 본격화하는 상황이다. 타타스틸 UK는 웨일즈 지역 제철소인 포트탤벗 EAF 신설 공사를 영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받아 2025년 7월에 착공했고, 브리티시스틸도 총 12.5억 파운드의 비용을 들여 스컨소프·티사이드 공장의 EAF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EU CBAM이 무역장벽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고, 2025년 4월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SNS 계정(X)에 “EU CBAM은 비용이 많이 드는 검증 조치를 부과하고 있고, 이러한 EU 규제는 공정한 경쟁을 훼손하며 미국 기업에 불이익을 초래하는 한편, EU를 거점으로 하는 경쟁사에게 이익을 가져온다”(2025. 6.10,)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면서 국내적으로 미국은 연방 차원의 CBAM을 아직 도입하지 않았지만, 국회·싱크탱크에서 BCA(Border Carbon Adjustment)/CBAM 법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중에 있다. 한편, 미국은 2022년 9월부터 철강 산업에서 연방 정부 조달시에 저탄소 자재(Buy Clean)를 구매하는 제도로서, 환경표지인증(EPD, 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 기준에 의한 저탄소 철강제품을 우선 구매하는 기준을 고시·운영 중이다. 둘째, 탈탄소 설비 투자를 대규모로 지원하였다. 에너지부(DoE)의 산업 실증 프로그램(IDP)은 클리블랜드-클리프스의 수소 기반 환원철(DRI) 실증 등 철강 탈탄소 프로젝트를 2023년 5월부터 시작했다. 또한 2024년 3월에 에너지부는 철강산업 등의 탈탄소화를 위한 60억 달러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고, 이중에는 유럽계 철강 기업인 SSAB에 5억 달러 규모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도 포함되어 있다.
캐나다는 탄소세와 산출 기반 가격 산정체계(OBPS, Output-Based Pricing System)를 통합한 연방 탄소 가격 체계를 2018년 6월에 발효하는 등 이미 연방 차원의 탄소가격 체계를 갖고 있다. 그에 따라 철강사업장은 기준강도 대비 초과분 비용 납부와 크레딧 거래가 가능하고, 감축 시에는 잉여 크레딧을 얻는다. 즉, 캐나다에는 원산지에서 실지급한 탄소비용이 존재함으로써 EU CBAM 공제로 연결될 제도적 토대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캐나다 정부는 2025년 새롭게 총리로 임명된 자유당 마크 카니가 대선 공약에서 "CBAM 구축으로 무역 파트너와 공정한 경쟁을 촉진한다"고 하면서 캐나다의 CBAM 도입을 긍정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또한 최근에는 BCA/CBAM의 실무적인 적용에 대해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등 도입을 공론화하는 상황이다. 한편, 철강산업에서는 대표 제철소의 EAF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알고마 스틸은 2021년 11월에 시작된 고로→EAF 전환 프로젝트의 결과로서 2025년 7월에 첫 강재 생산을 공시했다(연간 약 300만 톤 CO₂ 감축 기대). 또한 아르셀로미탈의 도파스코 공장(해밀턴 소재)도 2026년 완성 예정인 DRI-EAF 전환 프로젝트를 연방(2021년) 및 온타리오주(2022년)의 지원을 받아 연간 3백만 톤의 CO₂ 감축을 목표로 추진해 왔다. 캐나다 정부는 이전부터 BCA/CBAM 검토를 공식 논의해왔고, 2025년 들어 CBAM 도입 가능성이 크게 공론화되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EU CBAM은 단순한 탄소 규제를 넘어, 세계 무역과 기후 정책의 접점을 통해 글로벌 철강산업을 둘러싼 무역환경 및 생산방식의 재편을 가속화하고 있다. 각국의 대응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이며, 앞으로도 국제 협상과 기후정책 연계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