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에 흔들리는 철강업… 산업경쟁력 유지 위한 정책 개입 절실
최근 수년간 전기요금 인상이 주로 산업용 전력에 집중되면서, 국내 철강산업은 통상 압력과 글로벌 공급 과잉이라는 이중의 구조적 위기에 더해 에너지 비용 부담까지 겹치며 생존 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다. 특히 고정비 비중이 높은 전기로 제강 구조의 특성상, 전기요금의 변동은 철강기업의 수익성과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요 국가와의 전기요금 수준 및 정책을 비교한 결과, 한국 철강업계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에너지 비용 구조 속에서 글로벌 경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용 전기요금, 3년간 81% 상승… 고정비 압박 심화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1년 kWh당 105.2원에서 2024년 상반기 기준 190.3원으로 약 81%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가정용 전기요금의 상승률(약 35%)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기로 기반의 제강 공정을 운영하는 철강업계의 경우, 전기는 전체 제조원가에서 20~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특히 1kWh당 1원이 인상될 경우, 중견 제강사의 연간 전력비 부담은 수십억 원 이상 증가할 수 있다.
최근 동국제강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일부 공장의 가동을 중단했으며, 포스코와 현대제철도 전기요금 부담 등의 이유로 탄력 조업에 돌입했다. 이는 단순한 비용 부담을 넘어 공급 안정성 위협과 설비 효율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경쟁국과 비교 시 전기료 역전… "국내 제조업 기반 흔들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글로벌 주요 철강국 대비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각국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주요국 산업용 전기요금은 다음과 같다.
(주요 국가별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요금 비교, ‘24년 기준)
한국은 명목 전기요금에서 프랑스와 유사한 수준이지만, 보조금·장기계약 등 실제 적용 가능한 감면 수단이 부족해 실질 부담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주요 국가들, 철강업 보호 위해 전기요금 정책 적극 개입
철강 생산 주요 국가들은 자국 철강산업의 에너지 비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 개입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는 ARENH 제도를 통해, 알루미늄·철강 등 대형 소비산업에 대해 규제가격으로 원전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실제 공급가는 시장가보다 30~40% 낮게 책정되어 있으며, 일정량 이상 사용 시에는 추가 할인도 적용 받는다.
(주요 국가별 산업용 전기료의 지원책)
자료: 국가별 산업용 전기료 지원책 관련 자료 종합 정리('24년)
중국은 2020년 산업구조 개편 이후 대형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우대 요금제 및 고정요금제를 병행 운영 중이다. 특히 친환경 전환형 기업에 대해선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도로 전기요금 단가를 정하고, 지방정부가 재정 보조를 연계해 실질 부담을 낮추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주별로 전력계약 체계가 상이한데, 앨라바마·텍사스·인디애나 등 제조업 중심의 주에서는 철강업체와 장기 고정요금 계약을 체결하도록 허용하고 있으며, 수요 예측 기반의 계약을 통해 단가를 낮추는 구조다.
일본은 2022~2023년 고물가 대응책의 일환으로 정부 예산을 통해 전기요금을 직접 보조해 주었으며, 탈탄소 전환을 조건으로 R&D 및 설비 투자 보조금과 전기요금 감면을 연계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기요금 정책, 이제는 산업정책의 일부로 전환해야
최근 국내 철강업계는 고망간강, 초고강도 자동차강판, 수소환원제철 기반 제품 등 고부가가치 및 친환경 제품으로의 구조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환은 막대한 에너지 소비를 수반하기 때문에, 전기요금 체계의 개선 없이는 탄소중립과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철강 조강 생산량의 93%가 집중된 포항·광양·당진 등 핵심 산업도시의 위기는 곧 국가 제조업 기반 전반의 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도 상기 주요국의 산업용 전기료 지원과 같이 에너지 정책과 산업정책의 연계를 통한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즉, ①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의 이원화로 일반 산업과 수출 중심 산업을 구분해 차등요금제 적용, 수출 산업에는 우대 단가를 적용, ② 고정 및 장기 계약형 요금제 도입으로 주요 전력 다소비업체(철강·반도체 등)에 대해 협상 가능한 고정요금제 및 장기 계약형 모델 검토, ③ 탈탄소 전환 투자와 연계한 인센티브 제도 운영으로 수소환원제철 등 친환경 설비투자 시 전기요금 감면, 세제 혜택, 보조금 패키지 연계 도입, ④ 전력요금 결정의 산업정책적 접근 전환으로 단순한 전력수급 논리를 넘어, 철강·반도체·배터리 등 국가 전략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한 정책 도구로 전기요금 체계 활용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국내 철강산업은 여전히 제조업 전반의 기반이자 전략적 주축 산업으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전기요금 정책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 조정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핵심 산업정책 수단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정부와 유관 기관들이 철강산업의 구조적 특성과 국제 경쟁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 개편에 나설 시점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