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와 보세제도의 이중주

2025-07-29     박현욱 선임기자
스틸데일리 박현욱 기자

지난 4월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 예비판정과 28~38% 잠정 덤핑방지관세 부과 이후 시장의 판도는 확실히 바뀌었다. 건설 등 실수요 및 유통향 중국산 물량은 사실상 중단됐다.

흥미로운 점은 선급 후판은 여전히 보세창고를 통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역업체들이 중국산을 대체할 일본, 인도네시아 등 새로운 공급국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수요가 여전히 존재하며, 원가 절감을 위한 경제적 판단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선례는 열연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가 중국과 일본산 열연에 대해 각각 28.16~33.57%, 31.58~33.57% 잠정 덤핑방지관세를 기획재정부에 건의한 가운데, 일부 대형 수요처들이 조심스럽게 보세창고 활용을 검토하고 있는 분위기다.

보세창고는 원래 수출 확대와 가공무역 활성화를 위한 제도로, 수입 원재료가 내수 전환 없이 수출로 이어질 경우 관세를 면제받는다. 수출이 주력인 기업들 입장에서는, 반덤핑 관세로 인해 소재 단가가 높아지더라도 보세구역을 통해 관세 부담을 피할 수 있다면 이는 전략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하지만 이 제도가 반덤핑 조치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후판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율의 관세가 부과됐지만, 조선소들이 보세구역을 통해 선급용 후판을 수입하면서 사실상 관세 효과는 크게 희석됐다.

열연 역시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AD 조치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단순한 관세 고시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세창고 제도의 운용 취지, 활용 방식을 함께 점검하고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

또한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대기업들은 보세구역과 수출 명분을 통해 관세 회피가 가능하지만, 영세 중소기업은 관련 인프라가 없어 그대로 관세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한 수요산업 내에서도 기업 규모에 따라 수입 여건이 극명하게 갈리는 셈이다.

결국 반덤핑 조치라는 ‘수입 제한 정책’과 보세창고라는 ‘수출 촉진 정책’이 충돌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드러난다. 두 제도 모두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수단이지만, 수입재를 놓고는 ‘차단’과 ‘활용’이라는 상반된 접근이 공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 전략 자체가 엇박자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이 문제는 후판, 열연을 넘어 앞으로 제소가 예상되는 중국산 컬러강판과 도금강판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이들 역시 소재로 일정 역할을 하는 만큼, 유사한 방식의 우회 수입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철강 관련 AD 조치가 ‘반쪽짜리’가 되지 않으려면, 정부는 단순한 고시를 넘어 보세창고 제도의 운영 실태를 정밀 진단하고, 수출 장려와 산업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제도적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

AD는 ‘막는 전략’이고, 보세창고는 ‘들여오는 전략’이다. 이 둘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서는 제도 사이를 조율하는 정교한 관리·감독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