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후판 수입 급감 속 조선은 ‘우회 경로’로 확산 우려
- 잠정 관세 부과했지만, 조선용 선급 물량은 건재 - 주국산 후판 외에도 블록 및 기자재 수입 확대 - 중국 의존 커질수록 조선업·철강업 기반 흔들릴 수도
중국산 후판에 대한 잠정 반덤핑관세 부과 이후 국내 후판 시장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관세 부과로 인해 유통향 물량은 사실상 ‘전멸’ 수준으로 감소했지만, 선급용 후판과 선박용 블록, 기자재 등 우회 경로를 통한 수입은 오히려 증가하면서 국내 후판 산업의 공급망과 산업 생태계 전반에 구조적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잠정 관세 이후 중국산 건설·유통향 후판 사라져
앞서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24일부터 중국산 열연 후판에 대해 28~38%의 잠정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잠정 관세 부과 이후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빠르게 감소했다. 본지와 업계 조사에 따르면 6월 중국산 후판 수입은 약 7만 6,000톤으로 전년 동월 대비 18.3% 줄었다.
특히, 유통향 후판 수입은 수천 톤 수준에 불과해 지난해 월평균 2만 5,000~3만 톤에 달하던 물량과 비교하면 사실상 수입이 중단된 상태다.
반면, 선급용 후판은 여전히 수입이 이어지고 있다. 전체 수입 물량 중 약 97%인 7만4,000톤이 선급용 후판으로, 관세 영향권 밖에 놓여 있다.
선급용 후판은 ‘예외’...보세구역이 방패막
선급용 후판이 관세 영향에서 자유로운 이유는 국내 주요 조선소들이 보세구역으로 분류돼 있기 때문이다.
보세구역에서 소비되는 후판은 선박 작업 후 수출되기 때문에 관세 부과 대상이 아니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높은 제품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들이 보세 혜택을 활용해 중국산 후판을 계속 들여오고 있어 반덤핑 조치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선업의 원가 구조상 후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LNG선 약 7%, 컨테이너선 16%, 벌크선·유조선은 20~25%에 달할 정도로, 후판은 원가 절감에 민감한 품목으로, 중국산 저가 후판은 여전히 조선업계에 매력적인 선택지로 남아 있다.
국내산 후판 ‘역풍’...자칫 공장 폐쇄 우려까지
이러한 흐름 속에 국산 후판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5월까지 선급용 내수 후판 판매는 131만 6,000톤으로, 2022년 이후 매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반대로 중국산 선급용 후판 영향은 점차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후판 수요가 줄면 국내 후판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일부 설비의 폐쇄 가능성도 있다”며 “공급망 다변화가 중요한 시점에서 특정국 의존이 커지면 조선업 전반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중국산 선급용 후판이 건재하면서, 올해 하반기 및 3분기 조선 후판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재 국내 철강업계와 조선사간 3분기 조선용 후판 가격을 두고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 철강업계는 후판 가격 인상을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산 가격 등을 이융로 협상 진행이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보세창고 외에도 블록 수입으로 ‘우회’
중국산 선박 블록 수입도 확대되고 있다.
선박 블록은 후판을 가공해 만든 대형 선체 부품으로, 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이 중국 현지 자회사나 협력사를 통해 제작해 국내로 반입하고 있다.
블록은 후판과 달리 완제품으로 수입되기 때문에 관세 부과 대상에서 자유롭다. 철강업계는 이를 사실상의 ‘후판 우회 수입’으로 보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후판 수요가 블록으로 대체되면 중장기적으로 내수 기반이 무너지고, 조선업과 철강업 간 공급망 협력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기자재도 중국 의존 심화...산업 전반 공급망 흔들릴 우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박 기자재 부문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러더, 크레인 볼트, 너트 등 선박에 구성되는 모든 부품을 총칭하는 조선기자재는 선박의 종류와 선형에 따라 대략 400~700여종의 기자재가 탑재되는데, 통상적으로 선박 원가의 약 5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선박용 부품 총수입은 3억 9,500만 달러로 전년보다 8% 줄었지만, 중국산 수입은 67% 증가해 8,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전체 수입 중 중국산 비중은 20%를 넘겼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의 핵심 원자재와 부품을 동시에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화되면 조선업의 경쟁력과 독립성이 훼손되고, 국내 제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철강 및 기자재 산업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