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는 K-조선, 주요 소재 및 부품은 중국산…이대로 괜찮은가?

2025-07-22     김홍식 대표
스틸앤스틸 김홍식 대표

한국이 첫 조선 수주를 한 것은 1972년이다.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이렇게 만들겠다고 하면서 수주를 했다는 정주영 회장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렇게 시작한 한국의 조선업은 1999년 상반기, 마침내 일본을 제치고 수주기준으로 세계 1위에 올라 2000년 중반까지 전세계 No 1자리를 지킨다. 올 1~7월 누계 수주도 중국을 제치고 1위 탈환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한국의 조선업은 명실공히 상업용 선박에서 군함, 잠수함에 이르기까지, 또 설계에서 건조에 이르는 전공정과 원료, 부품, 운영에 필요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히 K-조선의 전성시대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국 조선사에 가장 먼저 전화를 했다는 얘기는 한국 조선업의 위상을 반증하는 사례다. 중국과 군비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에게 내밀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카드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즈음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국내 조선사, 특히 대형 조선사들이 중국산 원자재와 기자재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중국산 후판에 대한 반덤핑(AD) 조치가 시행 중이지만, 국내 조선사는 보세구역으로 분류되어 실질적인 영향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2025년 6월 기준, 중국산 후판 총 수입량은 7만6,000톤으로 전월 대비 1만9,000톤 증가하였는데, 이 중 대부분인 7만5,000 톤이 조선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AD 조치의 실효성이 낮음을 보여준다.

기자재 부문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선박용 부품 수입액은 전년 대비 8% 감소한 3억9500만 달러였으나, 같은 기간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67% 증가한 85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중국산 기자재의 수입 비중이 20%를 넘어섰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기자재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함께, 조선업의 공급망 리스크를 심화 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인건비와 소재가격 상승에 따른 건조 원가를 낮춰보겠다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단순히 원가만으로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첫번째 이유는 우리 스스로 중국에 기술을 가르쳐주고 시장까지 내주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블록 제조를 구두로 지시해서 가능할까? 설계도부터 작업 감독까지 필요할 것이다.

두번째는 미국과의 협력 확대 과정에서 잠재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중국 조선업 견제에 따라 글로벌 해운사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국내 조선사들의 수혜가 기대되고, 한국 정부 역시 국내 조선사의 역량을 한·미 관세 협상 등 통상 전략의 카드로 활용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내 조선사가 보세구역을 활용해 중국산 후판을 계속 사용할 경우, 장기적으로 미국 시장 진출에도 제약이 따를 수 있다.

세번째는 조선산업의 납품구조, 더 나아가 철강 생태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현지에서 블록을 제조하고, 기자재를 구매하면 그동안 국내에서 납품을 해오던 기자재 업체는 물량이 줄어들게 되고, 철강사들의 주문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 보세구역을 활용한 중국산 후판의 관세 회피 관행이 지속될 경우 다른 철강 제품 또는 다른 산업에도 벤치 마킹이 될 우려가 있다. 우회 수입 확대, 관세 회피 관행이 타 산업에 전파된다면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전체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

지금은 남의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의류산업을 살펴보자. 코로나 이전 중국 보따리상들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백화점 화장품과,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를 싹쓸이해갔다. 5년이 지난 지금 동대문 의류타운은 절반 이상이 공실이다. 값싼 중국산에 밀려 온라인 마켓조차 중국산 의류가 판을 치고 있다.

조선사가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는 조선을 비롯해서 자동차, 가전, 기계, 건설, 반도체 등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많다. 이러한 경쟁력은 소재에서 부품, 최종 조립 공정에 이르기까지 견고한 서플라이 체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이 사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우선돼야 하는 것은 양보와 타협이다. 후판 업체는 원가경쟁력을 갖추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고, 조선업계도 중국산 원자재 및 기자재 사용을 줄이고, 국내 철강 및 기자재 산업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공급망 안정성과 산업 생태계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는 납품 관행과 결제, 인력채용, 금융 등 산업 전략 차원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스마트·친환경 미래 선박 시장 선점, 해상풍력 선박 내수 시장 확대, 선박 제조 시스템 고도화, 중소 조선사 경쟁력 강화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적 뒷받침이 뒷받침될 때, 국내 조선업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미국과의 협력 확대에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는 구축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