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스크랩 야드의 시한폭탄, '리튬 배터리'···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 미국·튀르키예·일본, 법제도와 기술·인식 교육 삼박자 대응 강화 - 리튬배터리 혼입에 따른 화재 급증···스크랩 현장 선제적 대응 절실 - 한국은 아직 제도 공백···‘이제는 실행할 때’ 목소리 높아져

2025-07-22     곽단야 기자

작은 전자제품부터 시작해, 전동 킥보드와 전기 자전거 등 이모빌리티 확산과 함께 리튬이온(Li-ion) 배터리 화재 위험이 철 스크랩 야드의 새로운 불씨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사용 후 배터리가 스크랩 더미에 섞여 들어올 경우, 무더위로 인한 고온과 빗물 유입이 겹치면서 열폭주로 인한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스크랩 야드 및 슈레더 설비 내 화재 사례가 늘고 있으나, 아직까지 이를 전담할 법제도나 기술 시스템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태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미국: 법제도부터 산업기술까지 전방위 대응

미국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위험 폐기물(hazardous waste)'로 분류하고, 연방 자원보존회복법(RCRA)에 따라 분리 수거 및 운송, 보관, 폐기까지 안전 지침을 의무화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각 주는 보다 강화된 조례를 제정해 일반 폐기물과의 혼합 투기를 금지하고, 별도 처리소를 통한 회수를 유도하고 있다.

화재 위험 역시 사회적으로 인식이 높다. 전국 재활용 단체(ISRI, NWRA)와 정부 기관(NFPA, FEMA)은 리튬배터리 혼입에 따른 스크랩 화재 사고를 줄이기 위한 기술 가이드, 교육 프로그램, 감지기기 설치 매뉴얼을 제공하고 있다. 

AI 및 센서 기반 조기감지 시스템과 자동 소화장치가 재활용 현장에 적극 도입되고 있는데다 안전 포장 및 분리기준 역시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한, 일부 주에서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를 적용해 제조사와 유통사의 회수 책임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배터리의 사전 수거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다.

튀르키예: 유럽 기준 수용 통한 제도 정비 본격화

튀르키예는 2023년 도입된 EU 배터리 규제(2023/1542호)를 수용하는 국가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규제에는 리튬, 코발트, 니켈 등 핵심 자원의 회수율 의무화, 제품 설계 단계에서의 분해 용이성, 소재 추적 의무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튀르키예는 국가 배터리 관리법 개정을 추진, 폐배터리 전용 수거소와 재활용 인프라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일부 스크랩 재활용 설비에서는 불활성 가스를 활용한 화재 방지 파쇄 설비와 함께, AI·적외선 감지기를 도입한 자동화 시스템을 실증 중이다. 

EU 기준에 맞춘 공공기관과 산업체 간 협약 및 실증사업도 병행되며, 전주기적 대응 체계 확립을 위한 기반이 다져지고 있다.

다만 현장 단속 체계와 시민 인식 부문은 아직 보완이 필요한 단계로 평가된다.

일본: 지방정부 주도 규제와 기술 선도

일본은 배터리 화재 대응에 있어 제도적·기술적으로 정교한 체계를 구축한 국가 중 하나다. 

특히 지방정부 주도로 조례를 강화하고 있고, 분리배출 의무화, 스크랩 적치 높이 제한, 감지 및 소화설비 의무화 기준이 다수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환경성(환경부)은 이를 전국적 지침으로 확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OSLiB Sorter와 같은 AI·적외선 기반 리튬배터리 감지 장비가 상용화돼 있으며, 숨겨진 배터리까지 자동 선별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현장 혼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최근에는 레이저·가스 복합 감지 기술도 실증되면서 차세대 안전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일본배터리재활용센터(JBRC)는 전국 약 8,000개소의 회수 거점을 운영 중이다. 소비자 대상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사전 분리수거율을 높이고 있다. 다만 일체형 제품 증가, 시민 인식 부족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 제도·기술 공백 여전…‘참고할 모델은 충분하다’

한국은 아직까지 리튬이온 배터리를 '위험물'이나 '특수 폐기물'로 분류하지 않으며, 전동킥보드·소형 전자기기 등은 EPR 제도에서도 제외돼 있다. 스크랩 야드 및 슈레더 시설에서의 화재 사례는 점차 늘고 있지만, 관련 기술이나 감지 시스템은 일부 민간기업에 국한된 수준이다.

폐배터리의 고철 유입을 막기 위한 선진국형 대응 모델은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이를 한국식으로 체계화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사례에서 확인된 ‘법제도 정비-기술 도입-시민 참여’라는 3단계 접근을 강조한다. 리튬배터리 화재가 스크랩 산업의 꾸준한 리스크로 작용하는 지금, 한국형 대응 전략 수립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 정비에 나서고, 산업계와 기술기업이 감지·소화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며, 시민사회가 올바른 배출 문화 확산에 동참할 때, 한국도 ‘리튬 배터리 화재 제로’를 향한 여정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