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로는 못내 아쉬운 '추경'
지난 7월 4일 신정부의 추경예산이 국회에서 의결 확정되었다. 추경규모는 31.8조원으로 당초 정부가 신청했던 30.5조에서 1.3조가 증액되었다. 그리고 정부는 “경기 진작, 민생 안정을 위한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경제 선순환 구조를 회복하기 위해 확정된 예산을 최대한 신속하게 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정부가 들어서고 국내 철강업계는 추경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던 것이 사실이다. 국내 철강 내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작년에 5천만 톤 아래로 떨어졌고, 올해 들어서도 끝을 모를 정도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수출길도 거의 완전히 막혀 있다. 철강업계는 설비폐쇄, 공장 가동 중단 등 극약 처방을 단행하고 있다.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곳은 내수 회복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경이 조기에 확정되었고, 증액마저 이루어지자 철강업계는 일말의 희망의 끈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철강업계 입장에서는 무엇인가 모르게 다소 아쉬움이 남는 추경이다. 철강업계가 이번 추경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는 철강수요와 직접 관계가 있는 건설경기 활성화 예산이었다. 건설경기 침체가 국내 철강경기 침체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설경기 활성화에 직접 배정된 예산은 전체 추경예산의 31.8조 중 8.4%인 2.7조원에 불과하다. 국내 철강업계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재정을 통한 정부 투자지출 증대는 승수효과를 통해서 실제 투자지출보다 몇 배의 소득 증대 효과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경기 진작을 원한다면 다른 예산을 줄이더라도 건설경기 활성화에 예산을 더 배정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부실 PF(Project Financing) 사업의 회생을 위한 예산이 처음으로 건설활성화 예산에 배정되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PF 선진화 마중물 개발 앵커리츠 출자사업에 3,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하였고, 최종적으로는 LH를 통하여 3,000억원을 출자한 후 민간자금 7,000억원을 유치하여 총 1조원 규모의 앵커리츠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계획(브릿지론 단계)-착공-분양이라는 PF 사업의 생애주기에 맞추어 단계별로 맞춤형 총 5.2조원의 유동성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PF 시장의 위축으로 초기 사업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우수 사업장에 공공이 먼저 투자하여 민간 대출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을 해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PF 대출 부실이 현재 건설경기 회복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예산이다. 조속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시행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철강산업과 함께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철강도시 포항관련 지역의 건설예산이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포항은 국내 대표적인 철강도시이다. 현 포항 경제는 철강회사들의 설비 폐쇄, 가동 중단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극한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설비 투자 축소로 현지 중소 철강업체들은 일감 부족에 신음 중이다. 포항 지역내 공장 가동률은 60~70%대로 떨어졌고, 현지 기업의 53.5%가 채용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것은 포항시내 중앙상가 공실률이 최대 40%에 달하고, 한국부동산통계원 통계에 따르면 포항 지역 소규모·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전국 평균의 두세 배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포항지역경제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번 추경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예산이 일부라도 배정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2025년 본예산에 배정되어 있던 2,043억원의 포항-영덕 고속도로 예산마저 거의 90%에 이르는 1,821억원이 삭감되었다. 철강산업의 침체로 일할 곳이 없어진 노동자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었던 사업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로 인해 포항 지역경제는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많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또한 이번 추경에는 철강산업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관련 추경예산은 7,868억이다. 분야별로는 내수경제 활성화 및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용 환급에 3,261억원,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기업에 대한 신규대출이자 보전 37억원, 산업 AI 솔루션 실증 사업 등 150억원이 배정되었다. 나머지 예산은 신재생에너지보금지원,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 등 모두 에너지 관련 사업에 배정되었다. 철강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예산 지원은 전혀 없는 것이다. 국내 철강산업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당장 어느 업체가 도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기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연매출이 1,000억에 이르는 한 중견 유통업체가 심각한 유동성 부족으로 부도를 내고 기업회생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금년 들어 자주 보도되고 있으나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이들 회사에 철강재를 판매한 업체들의 피해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판매가 얼어붙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피해는 유동성을 더욱 악화시켜 부도를 도미노처럼 번지게 하는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이번 추경 예산에 유동성 위기에 처해 있는 철강사들에 대한 조금의 배려라도 있었다면 하는 생각은 과도한 기대인가? 철강산업을 연구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