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산업, 이제 ‘희망이 보인다’
국내 철강산업이 유례없는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 해 12월 이후부터는 국내 정치와 정책까지 실종되면서 그 혹독함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철강업계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설비 폐쇄, 공장 가동 중단 등 극단적인 처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 그 암울하기만 하던 긴 터널의 끝이 보이고 있다. 이제는 우리 철강업계 모두 희망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철강산업에 우호적인 여러 가지 정책들이 시행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 신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20조원+α의 추경 집행이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이는 침체만 거듭하고 있는 철강 내수를 회복세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그렇게도 바라던 일이다. 사실 국내 철강 내수는 작년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5천만 톤 아래로 떨어졌다. 거의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국내 철강업체들의 경영실적도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내수 회복만이 이를 역전시킬 수 있다. 이에 희망을 걸어본다.
둘째, 미국과의 무역협상이 본격적으로 진전되어 대미 수출이 안정화될 것이란 희망이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모든 철강 수입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이전에 한국에 적용하였던 260만 톤에 이르는 무관세 쿼터량을 취소했다. 최근에는 관세율을 50%로 인상했다. 거의 수입금지 수준이다. 한국 철강업체들은 기본적인 대미 수출전략조차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신정부는 대미 무역협상과 관련하여 국익중심의 실용외교를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하고, 조선업과 같이 미국이 한국에 협력을 요청하고 있는 산업과 연계하여 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협상 전략은 미국에서 건조되는 선박용 철강제품에 대해 예외적 관세 인하를 한국이 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강의 대미 수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셋째, 무역안보 단속체계가 확립되어 불공정 수입과 편법 수입으로 왜곡되어 온 국내 시장이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최근 국내 철강사들은 덤핑을 통한 수입 철강재가 국내 시장을 교란하자 주요 제품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취한 바 있다.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국내 철강업체들은 과연 수입이 줄어들 수 있을 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철강재에 도색을 하거나 혹은 구멍을 뚫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덤핑을 회피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예 제3국으로 수출한 뒤에 다시 한국으로 재수출하는 방법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은 반덤핑 조치를 무력화하는 편법 행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는 우회덤핑에 대한 규정이 미비하고, 특히 제3국 우회덤핑을 막을 수 있는 규정 자체가 없다. 무역 안보차원에서 편법 수입 단속을 강화하거나 관련 입법 조치가 조기에 취해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또 다른 바램이다.
넷째, 철강을 위시한 미래차, 반도체, 방산, 수소 등 전략산업의 국내 생산 촉진으로 앞으로 철강 내수는 안정화되고, 철강과 수요산업과의 생태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현재 한국은 자동차, 조선, 기계, 조립금속 등 전통제조업의 해외진출과 내부 경쟁력 약화로 제조업 생산이 감소하거나 정체 상태에 있다. 반면, 많은 국가들은 제조업 부흥을 위해 관세 인상이나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해외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삼성, SK, 현대기아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조차 미국 진출에 적극적이다. 자칫 한국은 미래 먹거리 산업이 싹도 틔우기도 전에 경제 근간인 제조업이 흔들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략산업의 국내 생산 촉진은 철강산업을 위시한 국내 제조업에 새로운 희망의 길을 닦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호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신속히 개발하여 적용하는 것이다. 여기에 희망을 걸어본다.
다섯째, AI 산업의 전략적 육성은 국내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높일 것이라는 희망이다. 신정부는 첨단기술 확보와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AI 투자 1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국내에서 AI를 공장에 적용하여 소위 ‘스마트 공장’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이 포스코이다. 포스코는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빅데이터(Big Data),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활용해 스마트 제철소를 꾸준히 추진한 결과 2019년에 이미 세계경제포럼에서 국내 최초로 ‘등대공장’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철강업계의 AI 투자는 더 이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만약 AI투자가 지금까지 계속되었다면 포스코는 이미 세계 최초의 철강 스마트공장을 완성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일부에서는 중국 철강회사들이 스마트화 측면에서 포스코보다 앞섰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인건비, 운영비 등 직접 비용만이 아니라 생산성 측면에서도 중국이 한국을 추월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한국 철강산업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0조라고 하는 막대한 자금을 AI 산업에 투자한다는 계획은 한국 철강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여섯째, 수소환원제철은 국내 철강업계의 장기적인 희망이다. 2050년까지 한국은 탄소 중립을 선언하였고, 국내 철강회사들 또한 여기에 최종 목표를 맞추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석탄 대신에 수소를 원료로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관련하여 현재 수소환원제철 공정 개발을 위한 국책연구과제가 진행 중에 있다. 그러나 유럽, 일본, 중국 등 경쟁국가들에 비해 속도가 느리다. 이 상태로 간다면 주도권을 이들 국가에 뺏길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추진 중인 파이넥스기반의 수소환원제철 공법은 다른 국가들의 공법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공법이다. 성공 가능성도 높다. 만약 성공한다면 전세계 제철설비 시장을 독식할 수 있다. 투자 리스크보다 예상되는 기대 수익이 훨씬 큰 남는 장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기술개발에 특정 기업이 부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자금이 든다는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수소환원제철은 단순히 철강을 제조하는 기술을 넘어 향후 도래할 수소시대의 가장 기반이 되는 기술이다. 수소의 생산-수송-저장-사용 등 수소산업의 전 밸류 체인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철설비 시장만이 아니라 관련 플랜트와 운송 및 저장 설비까지도 국내 업체들이 장악할 수 있다. 동시에 한국이 세계 수소의 중요한 공급원이 될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만큼 큰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신정부의 구체적인 정책이 다소 아쉽다. 계획이 구체화되어 조기에 발표 및 실행된다면 국내 철강업계는 또 다른 큰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