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위기의 철근 시장③∙∙∙해법은 없나?

- 답은 분명한데 풀이 과정이 복잡하다 - 경쟁 구조의 변화와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2025-03-12     손정수 연구위원

철근 업계가 고전 중이다. 철근 제강사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쌓이는 재고에 공장 가동도 여의치 않은 상태이다. 유통업체들도 추락하는 철근 가격에 애태우면서 속수 무책이다. 철근 제강사의 수익성 악화 원인과 해법을 찾아보았다. [편집자 주]

1. 철근업계 현실은?

철근 제강사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적자 전환되었으며 올해는 더 나쁘다. 제강사들은 1~2월 모두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세다. 그러나 마땅한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시중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마감을 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면서 유통과 갈등을 키우고 있다. 제강사 사이에선 가격 하락의 원인을 전가하기 바쁘다. 시장은 좀처럼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몇 해 전만해도 사상 최고 수익을 거두던 철근 제강사가 이렇게 된 것은 1) 수요 급감 2) 경쟁 구도의 변화 탓이다.

제강사의 철근 내수 판매량은 2017년 1,137만 톤을 피크로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756만 톤을 기록해 피크대비 381만 톤, 33.5%나 줄었다. 1~2월 판매 결과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줄 것으로 제강업계는 보고 있다.

전기로 제강사들은 향후 철근 수요가 일시적으로 900만 톤 내외로 회복할 수도 있지만 700만 톤대라도 안정되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300~400만 톤의 잉여 생산능력을 이고 먼 거리를 가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도 1) 인구 변화 2) 한국경제의 방향 3) 아파트 시장의 추세 등을 생각할 때 철근 수요 증가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어 철근 제강사의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철근 제강사를 위협하는 것은 수요 감소만이 아니다. 철근 제강사 위기는 업계 내부에도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경쟁구도에 있다. 철근 업계는 외환 위기 이후 8개 제강사가 경쟁을 했지만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이 강원산업과 한보철강을 인수했고, 한국철강이 환영철강을, 그리고 2020년에 대한제강이 와이케이스틸을 인수하면서 사실상 5개사 체제로 재편되었다. 2022년 하반기에 한국특강이 철근 설비를 가동하면서 6개사 체제로 늘었다. 신규 진입자의 등장으로 경쟁 강도가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경쟁의 룰도 변했다.

철근 제강사들은 그동안 자기 시장을 지키면서 탄력적으로 판매하는 점유율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한국특강의 진입 후 판매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무게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까지 한국특강 칠서공장의 전기로 가동률은 92%, 철근은 55% 수준이다. 동국제강은 77%(봉형강 평균), 한국철강 63%(창원공장 평균), 대한제강 75%(제강), 와이케이스틸 65%(제강)에 머물렀다. 한국특강은 사실상 완전가동 상태이고, 다른 제강사들은 매우 낮은 가동률을 보이고 철근 제강사의 경쟁의 룰이 바뀐 것이다.

 

변화의 또 다른 증거는 2024년 조달청 입찰에서도 나타났다. 대한제강의 약진과 한국철강그룹의 수주 실패가 단적인 예이다.

수요 급감과 함께 철근 제강사의 경쟁의 룰이 수요에 맞는 생산과 점유율 경쟁에서 무한 경쟁으로 방향을 튼 것 같은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2024년 철근 업체들의 실적은 크게 악화했다. 매출액대비 영업이익은 0.3% ~ 1.4% 수준으로 급락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는 것이 관련업체들의 우려여서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태이다.

문제는 제강사들이 해법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 정답은 아는데 풀이 과정이 어렵다.

철근 관련 시장 참여자들은 모두 위기 탈출을 위한 답은 알고 있다. 문제는 풀이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철근 제강업의 위기는 수요 감소와 공급과잉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1) 단기적으로는 감산을 통해 공급과잉을 억제하고 2) 장기적으로는 수요에 맞게 생산능력을 조절하는 군살 빼기를 해야 한다. 3)더 팔기 위한 판매 경쟁보다 자기 고객을 지키고 점유율을 유지하는 쪽으로 영업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수익은 악화하게 된다. 이것은 철근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고, 각자의 사정이 다르다 보니 문제 풀이가 어려운 것이다.

- 제강사 구조조정 계획은?

제강사의 가장 큰 고민은 낮은 설비 가동률과 잉여 생산능력이다. 향후 철근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적어 적은 수요에 맞춰 군살을 빼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전 제강사가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행이 더딘 것은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이다. 현재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인력이다. 설비야 폐쇄하면 되고 가동률은 낮추면 되지만 잉여 인력의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것이 제강사들의 고민이다. 제강사들은 정년 퇴직에 맞춰 인력을 조정하겠다는 생각이어서 구조조정 속도는 정년퇴직 속도에 맞춰져 있다.

제강사 근로자의 평균 재직 연수는 한국철강이 23년으로 가장 길고, 가장 최근에 공장을 신설한 한국특강이 8년으로 가장 짧다. 제강사들은 정년 퇴직의 속도에 맞춰 교대조를 줄이고 있다. 4조 체제에서 3조 체제로 전환한 제강사가 많다. 대부분 2조 체제까지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문제는 속도이다.

가동률 60% 전후에 맞춰 인력을 조정한다고 할 때 재직 연수가 가장 긴 한국철강이 짧게는 2~3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제강은 철근 공장 인력을 줄이고 형강이나 후판으로 인력을 전환 배치해 철근 구조 조정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동국제강은 이미 포항공장의 철근라인을 비슷한 방식으로 바인코일 전용공장으로 전환하면서 인력도 조정한 바 있다.

현대제철은 다양한 제품군을 생산 중이고 3개 공장 체제여서 전환배치를 통한 인력조정에 가장 유리하지만 포항 2공장 폐쇄 과정에서 드러났듯, 노조의 강력한 반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제철은 노조와의 협상에 따라 속도가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제강과 한국특강은 재직 연수도 짧은데다 철근 단일 공장 성격이 커 인력 구조조정 속도가 다른 제강사에 비해 느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년 퇴직을 중심으로 인력 구조 조정할 경우 길면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제강사의 느린 인력 구조조정 속도와 속도의 차이는 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뇌관이다.

구조조정을 앞당기는 방법 중 하나는 치킨게임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치킨게임은 경쟁을 통해 경쟁자를 밀어내고 시장을 차지하는 경쟁 방식이다. 그러나 철근 제강사의 재무구조는 매우 우량한편이다. 적자가 누적되더라도 상당한 기간 버틸 체력이 비축돼 있다. 치킨게임을 통한 구조조정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경쟁자들도 상당한 출혈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또한 부도가 나더라도 자산이 많아 법정관리 등으로 회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도 치킨게임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 정답은 수요에 맞는 생산인데…

설비와 인력 구조조정이 늦어지게 되면 제강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수요에 맞게 철근을 생산해 공급과잉을 억제하는 것이다. 

철근 제강사들은 1) 제품 특성상 가격을 내린다고 시장이 늘어나거나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니고 2) 상품 개발을 통해 시장이 새로 조성되는 것도 아니며 3) 상품 차별화에 기반한 촉진도 성과가 나지 않고 4) 원가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스크랩 구매 가격도 대체로 비슷해 원가에 기반한 경쟁에서도 우위에 서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가격 경쟁이 시장 가격 하락만 낳고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제강사 관계자는 “가격 경쟁을 통해 이번 달 판매량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다음달에는 경쟁사의 공세로 점유율이 언제든 하락할 수 있다. 가격 경쟁이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기보다 수익성 악화만 낳는다. 현재로선 판매 경쟁보다 적극적인 감산이 답”이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모든 제강사가 동의하는 것 같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의 현실성 여부이다. 최근 2년간 철근 제강사의 롤 마진(철근 유통가격 – 철 스크랩 가격)은 2023년 5월 47만 원을 정점으로 급락하기 시작해 2024년 6월에는 28만 4,000원까지 하락했다. 2024년들어 제강사들은 한계 원가를 얘기하면서 감산과 가격 방어가 절박했지만 가격 하락과 롤 마진 축소가 이어졌다.

제강사들의 본격적인 감산은 위기 의식이 팽배했던 7월부터였다. 철근 제강사들은 연중 최대 성수기 중 하나인 7월에 생산을 60만 톤 이하로 줄였다. 전년동월 대비 23% 줄인 것이다. 생산을 줄이자 제강사 재고가 줄고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롤마진이 개선되면서 철근 생산은 10월에 67만 톤(전년대비 -4%)으로 회복되었고 철근 가격은 다시 하락하기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제강사들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선 적극적인 감산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감산을 통해 이익이 개선되면 잉여 생산능력으로 인해 생산량 증대 욕구를 누르지 못하고 있다. 제강사별 사정이 다르다 보니 수익성 개선에 대한 각 사의 대응 방안도 다르다. 수익성 악화의 원인은 하나이지만 처방전은 업체마다 다르다 보니 수익이 회복되면 다시 공급 과잉과 하락 압력이 가중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사실상 제강사들은 타임루프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 가격 주도권의 상실

가격 주도권 상실도 제강사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 건설사 할인 폭은 커지고 있고, 유통업체들은 제강사의 가이드라인을 무시하기 일쑤다. 철근 시중 가격은 자유 낙하 중이고, 현 가격대는 한계원가 이하까지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강사 입장에선 2024년 이후 시중 가격(즉시현금 유통가격)은 비정상적이다. 제강사의 판매 원가 이하에서 시세가 형성되고 있다. 2025년 2월만 하더라도 제강사들은 72만 원에 마감을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시세는 67만 원 선까지 밀렸다. 제강사의 가이드 라인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상황이다. 시세를 추종해 가격을 결정하면 제강사가 대규모 적자가 나고, 72만 원 마감을 강행하면 유통이 크게 손실을 보는 구조다. 제강사와 유통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2월 제강사의 철근 분기 고시가격(건설향)은 89만 4,000원이지만 유통업체들의 즉시현금 거래가격은 67만 4,000원이다. 양 가격 차이는 22만 원이다. 분기 가격은 철 스크랩 가격에 연동해서 결정되며, 즉시현금 가격은 유통업체간 판매 경쟁으로 결정된다. 후자는 제강사가 가이드라인을 주지만 철근 수급이나 심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건설사들은 분기 고시가격에서 할인을 한 금액으로 구매한다. 할인폭은 시황에 영향을 받는다. 즉시현금 가격의 하락은 건설사 판매가격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문제는 제강사가 건설과 유통 모두에서 가격 협상력이 매우 약하다는 점이다. 특히 유통업체들은 현금 회전이나 매출 회전 등 다양한 이유로 판매가격을 내리곤 한다. 제강사의 유통향 판매가격은 다음달 초에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면서 결정되며, 일부 제강사는 2~3개월 후에 다시 마감을 하기도 한다.

즉시 현금 유통가격이 먼저 결정되고 제강사의 유통 판매가격이 나중에 결정되면서 양측의 불화가 커지게 된 것이다.

유통업체들은 제강사를 신뢰하지 않지만 먼저 출하된 가격에 맞춰 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보내고, 제강사들은 시세 하락에 대한 책임을 유통에 전가하면서 맞춰주지 못하겠다는 것이 공급과잉기에 매번 보이는 갈등이다.

3. 답은 정해져 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답은 공급과잉을 개선하고 가격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던, 치킨게임으로 일부가 퇴출되던, 업체들이 유기적인 감산을 통해 수요에 맞는 생산을 하던 제강사가 어떤 선택을 하던 답은 하나다. 공급과잉 구조를 해소하는 것이다.

- 수요에 맞는 생산의 고삐를 죈다

인위적 구조조정도 어렵고, 재무적 체력이 튼튼해 치킨게임에 따른 출혈이 커 주저된다면 유일한 선택지는 수요에 맞춰 생산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다. 그래도 가장 출혈이 적고 실현 가능한 것은 체계적인 감산일 것이다. 문제는 경쟁보다 감산으로 어떻게 무게 중심을 이동할 것인가이다.

제강사들은 20~30% 정도의 감산을 통해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 수요에 맞는 생산이라는 구호가 매우 친근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작금의 감산은 과거 감산과 다르다. 미래 수요에 대한 확신도 없고 감산의 강도도 과거와 달리 매우 강해야 한다. 심한 경우 감내하기 힘든 50%선까지 감산해야 할 수도 있다. 장치산업인 철근 제강사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고강도 감산이 될 것이다. 감산의 방식도 선도기업이라고 더 많이 하고, 중견기업이라고 적게 하는 것이 용인되는 시대도 끝났다.

수요에 맞는 생산의 전제 조건은 경쟁의 틀을 점유율로 ‘전 제강사’가 이동해야 한다. 그 위에 수요를 정밀하게 예측하고, 생산 판매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수요 예측은 가급적 공신력 있는 제3의 기관에서 모델을 만들고 제강사가 참여해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점유율 경쟁을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통계이다. 생산 판매 재고와 같은 기초 데이터는 물론이고 실시간으로 시장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체계적인 감산의 중심에는 상사가 있다. 상사가 중간에서 가격과 수급을 조절하는 조절자 역할을 하면서 유기적인 감산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양질의 통계와 예측이 조절자 역할을 할 것이다.

- 쇠퇴기에 맞는 정부의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

체계적인 감산의 또 다른 주체는 정부이다. 정부의 철근 산업 정책은 쇠퇴를 전제로 수립되어야 한다. 정부는 1) 노동의 유연성 뿐만 아니라 2) 엄격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적용 3) 감산이나 설비 폐쇄에 따른 정부의 지원 등에 대해 해법을 내 놓아야 한다.

특히 제강사의 유기적 감산과 통계 수집의 걸림돌은 공정위다. 철근 제강사들은 이미 민수 철근, 관수 철근, 철 스크랩 구매 등에서 공정위 제재를 받았고, 대규모 과징금을 부담했다. 정부가 철근 제강사의 경쟁을 촉진해 소비자들의 피해를 막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철근 산업의 특성을 무시하고 들이댄 잣대가 제강사의 부실을 재촉할 것이다. 철근업의 특성, 사양화의 속도 조절을 위한 유연한 정부의 대응이 선행되어야 하고 제강사들은 정부에 적극 어필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 철강 및 전기로 산업 구조조정기에 노동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출향제도까지 시행한 바 있다. 지금처럼 노동이 경직적이라면 제강사의 구조조정 지연과 산업계에 주는 부담은 커질 것이다. 쇠퇴기에 진입한 제강사에 맞는 노동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함께 장기적인 설비능력 축소 계획을 가져가야 한다. 과거 일본의 경우 설비 능력조정 없이 감산에 기반한 구조조정을 진행한 결과 후유증이 상당했다. 한국 정부는 설비 능력 폐쇄를 촉진할 수 있는 유인책을 주어야 할 것이다.

- 깜깜이 시장 가격을 해결해야 한다

철근 제강사를 옥죄는 또 하나는 통제권 밖에 있는 유통가격이다. 시중 시세가 주요 잣대가 되면서 제강사의 가격 정책은 유통가격 하락을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에 모아지고 있다.

유통가격이 제강사의 가이드라인 이하에서 움직이는 가장 큰 이유는 결제제도 탓이다. 유통 가격은 즉시 현금으로 매일 결정된다. 반면 제강사의 유통향 판매가격은 다음달 초에 결정된다. 유통 가격에 대한 제강사의 통제력이 약해 다음달 초에 결정되는 가격은 제강사가 언급한 가격과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과적으로 유통업체들은 제강사의 마감 가격을 모르고 판매하고, 판매 경쟁에 몰린 제강사는 시세에 추종하면서 저항하게 된다. 특히 가격 하락기에는 유통과 제강사가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 빠지게 된다.

이 상황을 가장 즐기는 것은 이른바 ‘나까마’라고 말하는 중간 유통상이다. 중간 유통상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받는 판매 압력을 활용해 적게는 톤당 2,000원, 많게는 톤당 5,000원의 차익만 보고 현금 거래를 통해 이익을 창출한다. 중간 유통업체들이 수요를 매개로 저가 저가만을 찾으면서 시장 시세 하락을 주도하는 것이 가격 하락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대형 유통업체들도 위험 관리를 위해 가격이 확정된 유통물량을 매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시장 가격 하락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유통의 시중 구매가 적게는 30% 많게는 50%에 달한다는 말도 들린다. 그만큼 제강사의 시장 가격 통제력은 약해져 있다.

유통업체들의 출혈 경쟁은 매출 회전이 주된 이유이다. 철근 유통 시장은 사실상 외상거래 일색이다. 건설사는 익월말 어음으로 결제하고, 유통은 철근을 판매해 익월말 현금으로 대금을 결제하는 구조이다. 담보는 대체로 지급보증으로 해결한다. 따라서 판매를 하지 않으면 유통업체가 굴러가지 않는다. 재무구조가 열악한 유통업체일수록 더 그렇다. 수요가 줄어들수록 유통업체들이 저가 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부분에 대한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유통 시장의 가격 하락을 방지하고 깜깜이 거래를 용인하는 제강사 판매 시스템을 수술해야 한다.

한 가지 방법은 결제 제도의 변경이다.

제강사들은 익월말 현금 결제를 입금 후 출고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확정된 가격에 출고를 함으로서 유통업체들의 저가 출혈 경쟁을 지양하게 해야 한다. 저가 출혈 경쟁에 대한 책임을 가격을 내린 유통업체가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결제 제도의 변경하면 재무구조가 열악한 유통의 구조조정이 촉진되면서 시장의 건전화가 진전될 것이다. 

철근은 과거 익월말 3개월 어음이었지만 수 년전 일부 제강사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결제제도를 변경하면서 익월말 현금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즉시 현금 입금 후 출고로 변경할 경우 깜깜이 시장이 소멸할 것이라고 예상되며, 제강사간의 경쟁도 그만큼 투명해 질 것이다.

물론 유통업체들의 자금 회전이 악화하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전 제강사가 결제 제도가 변경되면 시장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 “고르디온의 매듭”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답은 전기로 제강사가 공급과잉을 개선하고 가격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 방법은 이래서 안되고 저 방법은 저래서 안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맞는 말이다. 지금 시장 구조는 10년 이상 유지돼 왔고 가다듬어졌다. 그런 점에서 최적이다. 그러나 900만 톤~1,100만 톤을 오르내리던 수요가 800만 톤 전후로 급감하면서 최적의 수익을 내던 구조가 부실을 부르는 구조가 바뀌었다. 풀이 과정이 복잡한 것은 지금 쥐고 있는 떡(적자를 만드는 그 떡)을 이러저러한 이유로 버리지 않아서다.  

변화는 불편하고 힘들며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새로운 시장 구조로의 전환은 풀이 과정이 단순할수록 좋다. 복잡한 풀이 과정은 수요에 맞는 생산을 저해할 뿐이다. 그래서 풀이 과정은 알렉산더가 '고르디온의 매듭'을 풀었던 방식이어야 한다. 단순하고 명료하며 한번에 풀어 낼 수 있는 것. 

점유율 경쟁으로 전 제강사가 방향을 전환하고, 자기 점유율만 유지하는 것. 수요에 맞는 생산의 다른 표현이다. 그리고 수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고 통계를 정교하게 하는 것. 정부는 철근 쇠락을 인정하고 연착륙을 유도하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제강사는 수급 조절 능력을 향상해 가격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또한 장기 수요에 맞춰 설비 능력도 조절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금의 철근산업의 위기는 제강사도 유통도 모두 강하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해답도 알고 있다. 같은 봉형강 제품이지만 H형강은 철근보다 상황이 조금 낫다. 불완전하지만 수요에 맞는 생산을 하려고 노력하고, 가격 주도권을 제강사가 쥐면서 저가 출혈 경쟁이 조금이나마 통제되고 있다.  시장구조도 다르고 경쟁 조건도 다르기 때문에 철근과 1대 1 비교는 어렵지만 불안정하더라도 수급 조절 능력과 가격 통제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가른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