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리포트] 일본 사례로 본 한국 강관 산업 위기와 대응전략
한국과 일본은 산업 구조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산업 구조 변천 과정을 보면 한국의 미래가 보인다고 말한다. 철강 산업도 비슷하다. 일본과 한국의 강관 산업 생산과 수요 구조, 특징, 무엇보다 두 차례의 구조조정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다. 참고로 이 리포트는 지난 2024년 7월 열렸던 스틸앤스틸 강관 세미나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편집자 주]
1. 한일 강관 시장 수급 관련 특징
지난 30년간 양국의 강관 생산량을 비교해 보면, 한국의 강관 생산은 2014년 641만 톤이 피크였고, 일본은 1992년 860만 톤이 피크였다. 80년대 중후반에는 1,100만 톤에 달했다. 2023년 생산량은 한국이 468만 톤으로 일본의 319만 톤보다 150만 톤이 많다.
지난 30년간 ERW는 270만 톤이 줄었지만, 여전히 전체 생산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고, 무계목 강관(SMLS)은 절반 미만으로 줄었지만 비중은 더 늘었다. 또 단접관(CW)은 JFES만 남아있고, 닛데츠강관은 가동을 중단했다.
내수는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은 300만 톤이고, 일본은 310만 톤으로 양국이 비슷하다. 최근 20년간 내수 시장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피크였던 2016년 350만 톤 대비 40만 톤이 감소한데 반해, 일본은 2013년 417만 톤 보다 약 110만 톤이 줄었다. 수요와 공급에서 나타난 특징은 일본이 한국보다 감소폭이 컸다는 점이다.
1)한일 강관 산업 특징 비교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우선 업체 수가 한국이 훨씬 많다. 한국에는 구조관 업체만 200여 개가 넘는 반면, 일본은(일본강관협회 기준) 무계목 4개사, ERW 14개사(회원사 기준)가 있다.
물론 우리와 같은 중소 구조관 메이커가 있는데, 대부분 가족 기업 형태이고, 그 지역에서 소재를 사거나 수입을 해서 생산을 하고, 지역에 판매하는 형태다. 이들은 전체 100개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철근도 비슷하다. 우리와 차이점은 한국은 강관사 대부분이 소재 메이커 부근에 있는데 반해, 일본은 수요가 근처가 많다는 점이다.
30년간 생산량이 얼마나 줄었는가를 보면 한국은 약 37%가 줄어든 반면, 일본은 133%가 줄었다. 피크 대비로는 1/3 수준으로 줄었다. 내수 역시 한국은 20%가 줄었지만, 일본은 37%가 줄었다. 생산 대비 수출 비중은 한국 35%인데 반해 일본은 5%에 불과하다.
그러면 왜 일본은 생산과 내수가 우리보다 빨리 줄었고, 수출 비중이 5%밖에 안될까? 이유는 오랜 경기 침체로 시장 규모가 줄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기 침체는 91년부터이고, 철강 수요가 본격적으로 감소한 것은 95년부터다. 그래서 90년대 중반 구조조정을 겪고 난 후 2000년대 들어서 ERW는 해외 투자로 방향을 틀었다. 그 결과 생산과 수출은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바뀌었다. 앞쪽 그래프에서 보듯이 특수강 생산 비중은 한국 4%인데 반해, 일본은 34%나 된다.
2)수출에서 보이는 특징 비교
한국도 최근 몇 년 사이 해외 투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주로 북미 지역이고, 설비도 OCTG용이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현지 생산 거점 체제를 구축했는데 북중미, 동남아, 중국, 중동 등 다양하다. 차이점은 한국은 대부분 강관 생산만 하는데 반해 일본은 현지에서 절단, 냉간 인발 가공 등 하공정까지 실시하는 곳이 많다는 점이다.
수출 지역은 일본이 한국보다 다변화돼 있다. 한국은 지난 몇 년간 북미 편중이 더 심해졌다. 반면 일본은 북미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중동, 동남아 등 유럽(주로 탄소중립 관련), 일부 아프리카까지 퍼져 있다. 품목으로 보면 한국 ERW 중심이고, 일본은 무계목 강관 중심이다. 수출의 70%가 무계목이다. 평균 단가도 훨씬 높다. 바꿔 말하면 한국은 양 중심이고 일본은 부가가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3)한일 강관 수요 구조 비교
양국이 비슷하다. 건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은 건설이 54.8%로 가장 많고 자동차(18.4%), 조립금속(11%), 조선(9%), 기타(6.7%) 순(順)이다. 일본 역시 건설이 51%로 가장 많고 뒤를 이어 자동차(19%), 기계(7%), 조립금속(6%), 조선(5%), 농원용(4%), 해상풍력(3%), 기타(5%) 순(順)이다. 양국 건설 시장의 차이점은 한국은 신축과 인프라 투자가 주도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주도를 하고 있다.
2. 한일 강관사 수익성 비교
이번에는 수익성을 비교해 보겠다. 이 통계는 한국철강협회와 일본강관협회 회원사 기준이다. 과거 10년간 평균 영업이익률(회원사 기준)은 일본이 7.3%, 한국은 4.5%다. 왜 그럴까? 첫째는 고부가가치 비중이 높기 때문이고, 둘째는 문화 차이로 해석된다. 일본은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자국산을 먼저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마루이치강관 3사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2~15%였다. 마루이치강관이 왜 이렇게 실적이 좋은지는 뒤에 설명하겠다.
3. 일본 강관 업계 이슈
지금부터는 일본 강관 업계는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소재 가격 변동분의 제품 가격 반영이나 인력난 등은 우리와 비슷하다. 일본은 2024년 5월 1일자로 운송법이 개정되었는데, 하루 8시간 이상 운전을 못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그래서 장거리 운전을 할 때는 2명의 운전기사가 차를 교대로 운전해야 한다. 운송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수요가의 반발이 있고, 이것을 어떻게 전가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또 하나는 인력난이다. 2016년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특정 기능 1, 2호 제도(단순기능인력)를 통해 사실상 이민제도를 도입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통계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 숫자는 2020년 17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매년 15%씩 늘어나고 있고, 2025년에는 전체 노동 인력의 25%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응 전략도 관심사인데, 고로 계열과 독립 계열의 대응 방법이 다르다. 고로계는 대부분 대형 설비를 가지고 있고, 소재의 대부분을 고로에 의존하고 있다. 판매 역시 그룹 내 상사를 통해서 하고 있다. 고로계 강관사의 생존 전략은 열연의 가공화를 통한 품질 우위 전략이다. 반면 독립계 강관사는 주로 ERW 업체인데, 소재의 20~50%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판매도 상사나 유통을 통해 하고 있다. 또 생존 전략도 소재 구매의 다변화를 통한 원가 우위 전략을 펴고 있다.
4. 마루이치는 어떻게 강소 기업이 되었나?
이번에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마루이치강관(丸一鋼管)은 어떻게 강소 기업이 되었는지, 그들의 전략은 우리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겠다.
마루이치강관은 1954년에 창립했고 현재 일본 내 6개 지역, 해외 7개국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북미에만 3개 공장이 있고 멕시코, 필리핀, 중국 등에도 있다. 그룹 매출은 지난해 기준으로 한화 약 2.5조 원이고, 일본 내 강관 3사 평균 영업이익률은 13%다. 그러나 수익성 면에서는 해외 법인들은 일본과 많은 차이가 있다. 작년 일본에서는 12~15% 이익률을 기록했지만 북미는 3% 전후였고, 22년에는 적자였다.
그렇다면 마루이치는 어떻게 독보적인 수익성을 낼 수 있었을까? 첫 번째는 수요처에 가까운 곳에 공장이 있다. 각 공장은 6인치를 베이스로 하고, 지역 특성에 맞게 품목을 특화하고 있다. 두 번째는 탄력적 소재 구매(해외 비중이 적게는 30%, 많게는 50%에 달한다)에 있다. 포스코의 일본 내 최대 고객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자기자본비율이 86%에 달하는 결실한 재무구조, 빠른 의사결정, 고부가가치화(건설 비중 50% 미만), 수직계열화(도금강판, 가공, 후처리 공장, 마루이치강판-판매 회사를 두고 있다), 독특한 인사 체제(외국인 유학생 일본 교육 후 해외 파견)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마루이치 모델이 한국에서는 통할까? 결론적으로 힘들다고 본다. 첫 번째 이유는 일본은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10% 이내다. 지방에서도 인력 채용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불가능하다. 임금 격차가 커서 결혼도 못한다.
두 번째는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일본 수요가들은 수입재가 다소 싸더라도 자국산을 우선 구매한다. 한마디로 일본은 전체가 하나의 주식회사다. 다만 유통 구조 현대화나 견실한 재무구조, 해외 인력을 활용한 해외시장 공략은 우리가 참고할만하다.
5. 일본 강관 산업은 두 번의 구조조정을 겪었다.
일본 강관 업계는 그래프에서 보듯이 두 번의 구조조정이 있었다. 첫 번째는 90년대 중반이고, 두 번째는 2010년대 중반이다. 근본 원인은 수요 감소다. 수요가 90년대 초 800만 톤대에서 92년부터 600만 톤대로 급감했고, 2010년대에는 400만 톤대로 급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일본의 강관 수요가 살아날까? 아무도 ‘예스(Yes)’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근본적 원인은 그래프에서 보듯이 인구 감소와 고령화다.
6. 일본 강관 산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90년대 중반 구조조정은 버블 붕괴로 인한 수요 감소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당시 많은 기업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공장을 이전했다. 2010년대 구조조정 역시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한 수요 감소가 원인이다. 생산과 수요 모두 300만 톤대로 줄었다. 이렇게 되자 고로계 강관사는 공장을 통합하고, 소재 및 기술 협력을 통한 수요 개발에 주력했다. 세계 3대 무계목 강관 중 하나인 테나리스는 아예 일본에서 철수했다. 독립계 강관사는 가족 기업화가 되었고, 수요가 밀착 서비스를 강화하고, 소재 구매 다변화로 대응했다.
7. 한국은 구조조정에서 자유로울까?
우리는 일본과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제조업과 수출 중심, 강관 수요의 절반이 넘는 건설 의존도와 고령화. 그렇다면 우리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가능성이 100%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잠깐 경제 공부를 하자. 일본은 20년 넘게 금리를 제로화하고 있지만, 기업도 개인도 돈을 빌려 가지 않는다. 불안 심리 때문이다. 투자를 해도 과거와 같은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고도성장기에는 돈을 빌려 투자를 하면 땅값도 오르고, 소비가 늘어나니 제품 가격도 오르고 수익성도 좋았다. 그래서 임금이 오르고, 다시 소비가 늘고, 투자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였다. 그런데 버블 이후에는 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지금 일본 젊은 층은 돈을 빌려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여행을 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혐소비(嫌消費)’층이 생겨났다.
이제 한국으로 시각을 돌려보자. 최근 한국 강관 업계는 설비 투자가 많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불황기에 투자를 하라는 얘기도 있다. 자, 그럼 한국은 지금 투자를 하면 땅값이 오르고, 소비가 늘고, 수익이 늘어날까? 최근에는 해상풍력 시장을 겨냥한 투자가 늘고 있다. 정말로 해상풍력은 효자 상품이 될 수 있을까?
문제는 가동률이다. 강관은 고로와는 달리 가동이 유연하지만 인건비, 감가상각비, 전력 요금 등 고정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것들은 수익성에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품 수입은 중국산 각관을 중심으로 증가세이다. 그러면 강관도 AD로 막아야 할까? AD가 최선일까? STS 사례에서 보았듯이 소재(코일)를 막으면 제품(강관)이 더 싸게 들어온다. 개인적으로 우리도 진짜 구조조정 시점이 왔다. 대비해야 한다. 돈을 푼다고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연초 일본철강연맹 하시모토 회장이 “수요 6,000만 톤이라도 살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철강 산업을 살릴 정책이 있을까?
8. 대응 방안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IMF와 금융위기는 고환율에 따른 수출 호조라는 호재도 있었다. 지금의 위기는 과거와 다르다.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의 문제가 동시에 오는 초유의 사태이고 언제 끝날지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근본적인 얘기지만 외형보다 내실을 우선시해야 한다.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하고, 원가 경쟁력과 제품 차별화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두 번째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생산과 판매 공조 시스템 구축 얘기다. 원가를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소재 구매?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주도권은 소재 메이커에 있다. 생산에서 방법은 없을까? 강관은 롤 체인지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몇몇 업체가 규격별로 나눠서 생산을 하고, 스와핑을 하면 좀 더 원가를 낮출 수 있지 않을까? 또 메이커와 유통이 참여하는 공동 판매 회사나 물류 회사를 만들면 재고 부담과 운송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러한 논의가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과거 수년 전부터 얘기가 되어 왔지만 항상 용두사미에 그쳤다. 뱀의 머리가 될지언정 용 꼬리는 되기 싫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세 번째는 메이커-유통-수요가를 연결하는 강력한 SCM을 구축하는 것이다. 소재 메이커와의 관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신뢰라고 생각한다. 미래학자 최윤식 소장이 이런 말을 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개념은 ‘가장 싼 곳’이 아니라 ‘가장 믿을만한 곳’이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객 만족의 핵심은 ‘가장 싼 곳’이 아니라 ‘가장 믿을만한 곳’이다.
수요 개발이나 해외 시장 공략도 혼자는 못한다. 소재 메이커, 금융, 상사, 유통이 포함하는 공조 체제를 통해서 해야 한다. 일본의 현재는 머지않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