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스크랩 예상외의 급등 배경은?

- 제강사 국내 의존도 증가 불구 수입 대응 미온 - 철근 롤마진 확대와 국제가격 상승에 유통업계 심리적 우위 확보 - 국내 가격 상승은 국제가격 수렴 과정

2020-05-20     손정수 기자
철 스크랩 가격 흐름이 지난 1월이나 3월과 비교할 때 딴판이다. 지난 1월과 3월에는 조기에 상승세가 꺾였다면 5월 상승기에는 당초 유통의 기대보다 상승 폭이 커 제강사의 당혹감도 그만큼 크다. 지난 두 번의 상승기와 5월 상승기를 비교해 보았다. [편집자 주]

올해 4월 말 직전 상승기는 짧게 두 번 있었다. 지난 1월 둘째 주와 3월 첫째주이다. 1월 둘째 주남부제강사의 중량A 구매가격은 톤당 29만 5,000원에서 31만 원으로 1만 5,000원 올랐다. 지속 기간은 1회 2주였고 1월 넷째 주부터 인하가 시작돼 한 달간 3만 원이 떨어져 28만 원이 됐던 것.

당시 유통업체들은 3만 원 이상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무색하게 짧게 끝났다. 3월 첫째 주 상승은 더 짧았다. 28만 원에서 29만 5,000원으로 역시 1만 5,000원 오르고 3월 둘째 주에 1만 5,000원이 떨어졌다. 지속기간은 고작 일주일도 안됐다.

이번 상승기는 4월 넷째 주 역시 1만 5,000원 오른 27만 5,000원을 시작으로 5월 셋째 주 30만 5,000원까지 4만 5,000원 올랐다. 그리고 아직 진행형이다.

- 제강사 재고 관리 실패


지난 1월과 3월 시장과 가장 큰 차이는 제강사의 재고 흐름의 변화이다. 남부 3사(대한제강 한국철강 YK스틸)의 1월 둘째 주 재고는 9만 4,000톤이었다. 2주 연속 재고가 크게 줄면서 10만 톤대가 무너진 것. 가격을 내린 1월 넷째 주에는 재고가 다시 10만 4,000톤을 회복하면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 달간 남부 3사의 재고는 계속 늘어나 2월 중순에는 12만 2,000톤까지 증가했다. 가격을 짧게 올렸던 3월 첫째 주 재고는 10만 9,000톤으로 줄었다. 가격이 짧게 오른 만큼 재고 수준도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4월의 상승기에는 재고가 9만 9,000톤에서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가격은 올랐지만 재고는 계속 줄어 이번 주 초에는 6만 8,000톤까지 떨어졌다.

제강사가 철 스크랩 재고 관리에 실패한 것은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발생량 감소가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것도 제강사의 패착이다.

올해 국내 철 스크랩 자급도는 82% 이상으로 상승했다. 올해 1분기 한국의 철 스크랩 소비는 7.7%줄었다. 국내 철 스크랩 구매량은 지난해 1분기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수입은 33% 줄었다. 즉 국내 철 스크랩에 대한 의존도가 늘었지만 국내 유통량이 줄면서 재고 압박에 시달린 것이다.

특히 주력 수입선이 일본의 골든 위크에 대한 준비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의심된다. 실제로 4월 철 스크랩 수입은 41만 톤으로 전년대비 23.5% 감소했다. 4월 수입은 3월보다 4만 8,000톤 가량 줄었다.

이러한 준비 부족은 재고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골든 위크를 앞둔 제강사의 4월 말 남부 3사의 철 스크랩 재고는 8만 6,000톤에 불과했다. 감산 기조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버티기 어려운 재고였던 것이다.

국내 철 스크랩 소비가 줄어 제강사의 국내 철 스크랩 의존도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국내 철 스크랩 시장은 부침이 크다. 국내 철 스크랩 의존도를 늘리고 철 스크랩 수급에 안정을 찾기 위해선 안전 재고 눈높이를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

올해 7대 제강사의 평균 재고는 90만 9,000톤이다. 철 스크랩을 가장 많이 썼던 2018년 99만 2,000톤 대비 약 10%가량 줄었고, 지난해보다도 5만 톤 가량 적은 재고이다. 지금 재고로는 제강사가 가장 우려하는 “돈 주고도 못하는 상황”이 다시 올 수 있다.


- 근시안적 정책은 없었나?


재고가 바닥을 드러낸 것은 제강사의 근시안적 정책도 한몫 한 것으로 의심된다.

지난 4월 한국의 빌릿 수출은 6만 톤을 넘었다. 한 달에 철근과 형강을 생산하는 양과 비교하면 미미하다. 그러나 지난해 연간 빌릿 수출량이 8만 톤에 불과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얼마나 많은 빌릿이 수출됐는지 알 수 있다. 5월에도 빌릿 수출 소식은 계속 들리고 있다.

감산에 따른 제강공장 가동률 하락과 이에 따른 고정비 상승을 빌릿 수출로 완화해 보겠다는 정책적 판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철 스크랩 재고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빌릿 수출이 감행되면서 재고 압박은 더 커진 것으로 의심된다. 일부 제강사가 빌릿 수출로 전기로 가동 비용은 줄였겠지만 철 스크랩 가격 상승이라는 다른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도쿄스틸은 5월 제품 가격 동결을 발표하면서 코로나19 확산으로 판매는 어렵지만 감산을 통해원재료 가격 안정에 대해 역점을 두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 제강사들이 새로운 시대에도 과거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되돌아 볼 시점이다.

수입 시장에서도 근시안적 정책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은 일본 공급사들의 저항을 뚫고 계속 가격을 끌어내렸다. 지난 4월 둘째 주에는 1만 8,500엔(H2 FOB)까지 내렸다.

통상 일본 철 스크랩은 2만 엔 이하로 내리면 거래가 크게 줄어든다는 불문율이 있었지만 현대제철이 힘을 앞세워 가격을 내린 것. 물론 당시 도쿄스틸 등 일본 제강사들도 계속 가격을 내렸던 시점이어서 현대제철만 무리한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 어렵다.

제강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1만 8,500엔으로 내리고 계약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이다. 현대제철은 1만 8,500엔 이후 공개 입찰을 하지 않았고 수 주간 국내 다른 제강사들도 계약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1만 8,500엔 비드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 제강사와 트레이더들은 당분간 추가 계약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했고, 우려가 현실화 된 것이다.

한국 시장은 현대제철의 1만 8,500엔 비드 이후 수입 계약이 3주 이상 소강상태를 보였다. 이후 계약이 표면화 된 것은 2만 1,000엔을 넘어서면서부터였다. 4월 1만 8,500엔의 후유증은 6월 초까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철 스크랩 시장은 개별 제강사만 잘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흐름이 유지되지 않는다. 경쟁사의 상황까지 고려해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 지나친 가격 하락에 대한 반발

4월 가격 급등의 또 다른 요인은 국제 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아시아의 교역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일본의 수출 가격이나 동남아시아의 수입 가격이 상승세다. 일본의 H2 수출가격은 이달에 1,000엔 이상 올랐고, 대만의 수입가격도 등락을 하면서 상승세를 타 한 달 사이에 약 4만 원 정도 상승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 국내 시장의 지나친 가격 하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아시아 철 스크랩 가격 지표 중 하나인 대만의 HMS No.1&2 80:20 미국산 컨테이너 철 스크랩 수입 가격과 지난해 한국의 중량A 내수가격과의 격차는 3만 4,000원 중량류가 비쌌다. 4월 가격 상승 직전인 4월 셋째 주에는 대만의 수입가격과 차액이 없었다. 3만 원 이상 한국 시장이 저평가 됐던 것이다. 이번 주에는 추가로 1만 원 오른 것으로 고려하더라도 2만 3,000원 차액을 보이고 있다.

일본산 수입과도 격차가 벌어진 바 있다. 지난 4월 말에는 중량A와 일본 H2 수입가격이 역전되기도 했다.

최근 한 달간의 가격 상승은 국제가격과의 격차를 메워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감산보다 코로나19

지난 두 번의 가격 상승기를 지배했던 것은 제강사의 심리적 우위였다. 제강사의 감산이 강도 높게 진행된 데다 철근 가격도 낮게 형성돼 철 스크랩 유통업체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됐던 것.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철 스크랩 발생량 감소와 제강사의 빌릿 수출, 수입 감소가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유통업체들이 심리적 우위를 점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철근 감산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제강사의 롤마진이 크게 늘어난 것도 철 스크랩 가격 상승을 부추긴 요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주에 가격을 올렸지만 아직 국제가격이나 수입가격과 비교하면 아직 지난해 평균 가격차액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가격 상승이 여기서 멈출지 아니면 추가로 오를지 여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골든 위크 이후 제강사의 일본 철 스크랩 수입이 어느 정도 늘어나느냐이다. 또 유통의 재고가 어느 정도 쌓여있는가에 달렸다.

제강사의 4월 전략적 실패 여파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