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강 화재가 제강사에 던진 두 가지 화두

- 철 스크랩 조달 시스템과 철근 유통의 위기를 중심으로

2019-04-25     손정수 기자
한국철강의 화재로 봉형강 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철강 변전실 사고 이후 봉형강 업계에 드러난 구조적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편집자 주]

- 한국철강 화재와 대책은?

한국철강 창원공장 변전실에 화재가 난 것은 지난 4월11일 저녁이다. 고정비를 줄이고 최대한 피해 손실을 막기 위해선 제품 생산 차질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한국철강은 대책으로 1) 철 스크랩 구매 중단 및 수입 계약 파기 2) 빌릿 긴급 계약을 통한 반제품 확보 등을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영업측면에서는 유통 판매를 최소화하고 관수와 가공턴키 계약을 중심으로 출하에 만전을 기했다.

한국철강 변전실 화재는 한국철강 당사자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겠지만 실질적인 영향은 철 스크랩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오히려 철근 시장에 준 영향은 미미하다.

철 스크랩 시장이 최대 피해자가 된 것은 이번 변전실 화재가 전기로 재 가동을 단 시간내에 확정할 수 없는 특성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가장 취약한 철 스크랩이 직접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또한 한국철강의 신중한 대응은 불확실성을 증폭 시킨 효과도 있다. 한국철강은 화재 이후 상황은 물론 복구와 관련된 어떤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철 스크랩 시장, 설비 시장, 철근 제품 시장, 제강업계 내부 등에 각각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말이 더해져 더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철 스크랩 시장에선 가동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2~3개월 정도 가동 중단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돈다. 철근 시장에선 전기로 가동까지 5~6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변전설비를 확보하면 예상보다 빠른 2개월 내 가동도 전망하고 있다. 설비 엔지니어들 속에서는 최장 8개월 짧게는 2개월이라는 말이 오간다. 한국철강 화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표시한 말이기도 하지만 일부는 한국철강 내부에서 말이 흘러나와 시장 참여자들의 말이 보태져 부풀려 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철강이 화재에 공식적인 말을 아끼는 사이에 풍문은 제각각의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고, 시장의 불안감은 부풀고 있다. 한국철강측에서 진행상황에 대해 진솔하게 대응하는 것이 부풀려진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책임 있는 태도일 것이다.

- 철 스크랩 시장, 상생은 없고 정글만 있었다.

한국철강의 화재는 11일 있었다. 묘하게 남부 제강사의 첫 가격 인하는 12일에 시작됐다. 5일 가격 인상 후 12일경 가격 인하가 미리 예정됐지만 화재가 가격을 끌어 내린 것 처럼 묘하게 오버랩 됐다. 한국철강의 화재는 가격 인하를 촉발한 것이 아니라 인하의 골을 깊게 파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한국철강의 화재만 없었다면 약 2~3회에 걸쳐 2~3만원 정도 하락 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고, 5월에는 성수기 진입과 함께 시황 반전을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철강이 시장에서 퇴장한 4월12일 이후 25일까지 부산권 제강사들은 총 5회 5만5,000원을 인하했다. 4월 29일이나 30일 경 또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4월 한 달간 최대 6회 6만원 이상 떨어질 수도 있다.

남부 시장 가격이 폭락 한 것은 한일 양국의 하락 기조에 한국철강 화재가 겹친 탓이다.

지나치게 떨어졌으면 오르고 너무 올랐으면 떨어지는 것이 철 스크랩 시장의 이치다. 폭락으로 많은 업체들이 고전을 하고 있지만 폭락은 일시적인 고통이다. 정작 이번 화재가 영향을 준 것은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가장 기본적인 거래에 대한 상호 신뢰가 가격 폭락의 골 만큼이나 깊이 패였다는 점일 것이다.

전기로 제강사들은 그 동안 기회가 될 때마다 철 스크랩 유통업체들의 행태, 특히 상승기에 판매기피를 비난해 왔다. 또 구좌업체들을 동원해 입고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독려해 왔다. 제강사는 인센티브라는 당근과 구매량 축소라는 채찍을 효과적으로 휘둘러가며 납품업체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다. 이 때문에 상당수 납품업체들이 가격 변화를 떠나 최소한 구좌 야드 물량만이라도 일정하게 납품을 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

그러나 이번 폭락기 최대 피해자는 구좌업체들이 됐다. 제강사의 빠른 가격 인하로 야드 재고의 적기 납품이 어려웠던 것. 구좌업체 관계자는 “제강사가 급하게 큰 폭으로 내려 도저히 야드 구매가격을 따라 갈 수 없었다. 적자가 크다”고 말했다.

중상들은 오히려 납품업체들의 적극적인 거래 관계 유지 전략으로 재고 조정에 어느 정도 성공한 모습이어서 구좌업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남부 시장의 구좌업체 관계자는 “주 2회 2만원은 인하는 너무 빨랐고 너무 아팠다. 제강사의 입고 통제가 이어져 재고 조정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요 철 스크랩 구좌업체들의 영업 이익률은 1%를 다소 상회한다. 1천억원 매출에 10억원 남짓 남았다. 수익성 저하로 고전 중인 납품업체에게 이번 폭락에 따른 재고 평가 손실은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다.

철 스크랩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재고가 많아 내려야 하고 받을 수 없는 제강사의 상황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제강사들이 납품업체와 최소한의 고통을 분담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고 아쉬워 했다.

이번 화재로 철 스크랩 시장이 상생의 시장이 아니라 정글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 된 셈이다.

문제는 철 스크랩 유통업체들의 체력이다. 이번 폭락으로 상당수 납품업체들의 체력이 방전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철강 납품업체들은 조달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상당한 후 폭풍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철강 납품업체들은 한국철강의 구매 중단으로 구매 재개 시점까지 매출처를 새로 확보해야 할 상황이 된 것. 납품상의 중상화로 야드 수익성 저하와 매출액 감소가 예상된다. 대납할 수 있는 여건이 악화돼 중소상 관리에 난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톤당 고정비 상승에 따른 수익성 저하도 예상된다.

한국철강 납품업체 관계자들은 “한국철강은 화재보험 등에서 물질적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납품업체들은 매입처 관리의 위기, 자금 회전의 위기를 동시에 겪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부실이 더욱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철강은 남부 철 스크랩 시장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 한국철강의 철 스크랩 조달 경쟁력의 약화는 중심의 약화로 이어지고, 구좌업체들의 체력 저하는 향후 남부 시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 철근 시장 이정도 일 줄이야

한국철강 변전실 화재는 철근 시장에도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철강은 16일~24일까지 9일간 압연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약 2만7,000톤 정도 철근의 생산 기회 손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제강사의 한달 평균 생산량의 약 3% 정도 생산 기회 손실이 있었던 것이다.

4월 제강사의 철근 재고는 약 20만톤 남짓이다. 다양한 강종과 가공 턴키 수주 등을 고려 할 경우 실질 가용재고는 13만톤 전후로 추정된다. 사이즈와 강종 등을 생각하면 사실상 구색이 맞는 제강사는 없다. 한국철강의 화재가 연중 최대 성수기에 발생해 생산 기회 손실만큼 제강사의 재고가 줄고 있는 실정이다.

통상 철강재 수급은 5% 싸움이라는 말을 한다. 5% 과잉은 폭락, 반대는 폭등을 낳는다는 격언이다. 지금처럼 빠듯한 철근 수급 상황하에서 3% 생산 시설의 가동 중단은 파동에 이은 폭등으로 연결되는 것이 과거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시장 가격은 국산 고장력 10mm 기준 69만5,000원에서 요지부동이다. 월초보다 다소 낮은가격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철근은 사기가 어려운데 시장 가격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고, 유통업체의 적자 누적은 계속되는 얄궂은 시장이 이어지고 있다. 유통시장에 한국철강 화재는 이웃나라 제강사 화재쯤의 반응이다.

과거의 수급과 가격 패러다임의 해체를 넘어 철근 유통 시세가 철근 수급과 무관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다.

이렇게 된 이유는 1) 기존 거래 관행 2) 불안감 3) 철근 시장 세력간 힘과 지위 4) 부실 5) 수요 부진 5) 심리적 영향 등을 꼽을 수 있다.

유통업체들은 바닥 수요 부진 때문에 저가 판매를 이어갈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철근 기층 수요인 다세대 빌라 건축이 위축됐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러나 유통의 이러한 설명이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강사와 유통간의 시황 이원화, 즉 건설사 중심의 제강사 시장이 넓어지고 유통 중심의시장은 줄어들면서 유통업체간 경쟁이 치열해 진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실제로 제강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중대형 건설사 직납의 경우 과거에는 유통업체들도 상당히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유통업체의 참여가 눈에 띄게 줄었다. 유통은 중소 건설과 재 유통으로 밀려난 상태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그만큼 시장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줄어든 시장에서 유통간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체감경기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수익성도 변수가 되고 있다. 제강사가 원칙마감을 강조하면 할수록 유통의 부실은 쌓이고 자금회전에 나선 업체들이 하나 둘 생길 때마다 시장은 충격을 받고 있다. 철근 유통시장 축소에 따른 유통의 구조조정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이유로 제강사의 고시가격 상승에 따른 시중 저가 재고의 방출도 가격 하락이 적정선을 넘지 못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아닌 듯 하다.

오히려 거래 관행이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다. 그 동안 철근 수급과 유통의 수익성은 사실 별개의 문제 였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제강사가 시세를 고려해 마감 가격을 책정해 왔던 탓이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제강사의 마감 대응이 보호막이 됐던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유통업체들은 제강사에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제강사는 뜻이 없어 보인다. 최소한 철근 가격 분쟁이 종료되기 전까지 제강사의 유통행 추가 할인은 생각하기 어려워 보인다.

제강사 관계자는 “철근 유통가격이 제강사 출고가격보다 낮아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제강사가 기존 관행처럼 해왔던 사후 할인의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기로 제강사와 건자회(건설사)간의 충돌은 비단 가격을 더 받아야 한다는 표면적인 것 외에 시장 시스템의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철근 유통이 처한 환경과 거래 관계다. 철근 유통은 제강사에도 건설사에도 약자의 지위에 있다. 제강사의 원칙마감을 감내해야 하고 건설사의 할인 압박도 견뎌내야 한다. 건설사의 할인 압력도 시세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 화재가 던진 두 가지 화두

한국철강 변전실 화재는 제강업계에 판매와 구매에 두 가지 숙제를 던졌다.

한국철강 화재에도 불구하고 철근 시장이 미동도 하지 않는 이유는 한국철강이 최대한 철근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대책과 믿음 때문이 아니다. 철근 시장의 적정 수익성 확보가 비단 가격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와의 단절 없이 적정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즉, 제강사간 출혈 경쟁에 따른 사후 가격 보전 시스템과의 결별이 필요하다. 또 지급보증서만 발행하면 철근 유통 대리점을 남발하는 제강사 유통 정책이 유통의 과잉을 불러 온 것이다.

제강사와 건설사간의 가격 분쟁은 가격 상승으로 마무리 되어선 다시 원점으로 회귀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이번 화재가 보여준 사실이다.

제강사의 유통 정책, 가격 정책 그리고 유통업계의 시장 내 지위상승, 제강사와의 역할 분담이 분명해 지지 않는다면 제강사의 가격 시스템 변경 노력은 자기 만족에 그치고, 제강사의 수익성은 가까운 미래에 다시 곤두박질 치게 될 것임을 이번 화재가 보여 준 것이다. 철근 시장은 유통 시장의 구조적 개선 없이 미래를 보장 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 졌다.

한국철강의 화재로 제강사의 구매와 판매의 난맥상이 노출됐다. 철 스크랩 시장은 상생 동반자라는 말보다 정글이라는 말이 현 시장을 잘 설명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공급자와 구매자가 동반자 관계로 구축되지 않는다면 제강사의 경쟁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조달 시스템을 상생 체제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제강사 구매의 외연인 납품업체들 만이라도 제강사의 우산 틀 내로 흡수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납품사를 보호하지 않고 안정된 구매를 하겠다는 용기를 버릴 때도 된 것이다. 특히 남부 시장은 한국철강과 한국철강 납품업체들의 구매 시스템 해체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남부 시장은 이번 화재로 더욱 정글이 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이것이 한국철강 변전실 화재가 제강업계에 던지는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