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기준가 타결’ 끝이 아니다

-제강사 수익성 개선 위한 과정중 하나일 뿐 -공급과잉, 판매경쟁 계속되면 ‘말짱 도루묵’

2019-01-31     성지훈 기자
건자회와 제강사가 73만 3,000 원에 철근 기준가를 타결하면서 1월 마감을 둔 다툼은 일단 정리됐다. 그러나 기준가 타결이 가져올 평화는 일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당장 2월 판매 가격 발표와 신규 물량 계약 가격에 대한 논의에는 진전이 없다. 더구나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기 계약분 납품이 끝나는 시점도 곧 다가온다.

지난 28일 타결된 기준가는 ‘기 계약분에 한해서만 적용된다’는 임시 방침의 성격이 강하다. 양측은 기 계약분의 납품이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기존의 기준가 협상방식을 유지하기로 했다. 부자재 가격 반영이나 시황반영 등 양측이 기준가 협상에서 대립해 왔던 요소들 역시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제강사의 급작스런 가격방침 변경으로 수요 업체인 건설사들이 받을 부담을 최소화하고 완충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제강사는 일물일가 정책을 관철하겠다는 의지에선 물러서지 않고 있다. 건설사도 마찬가지로 기준가를 통한 현재의 가격 방침을 고수하라고 요구 중이다. 기존 계약 물량을 두고 다툰 ‘국지전’은 끝났지만 ‘철근 가격’을 어떻게 결정할 것이냐는 전면전은 아직 남은 셈이다.

대증요법

제강사와 건자회의 갈등은 비단 기준가나 판매가격을 올리고 내리기 위한 다툼이라고 볼 수 없다. 그보다는 수익이 극도로 악화된 상황에서 시장의 구조와 관행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은 생존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제강사들의 위기의식이 임계점에 도착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제강사들은 지난 연말부터 기준가 협상 이탈을 비롯해 가공철근 저가수주 중단과 할인 폐지, 일물일가 가격방침 확정 등 현재까지 유지된 철근 시장의 구조 자체를 개편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이는 일견 각기 다른 이슈로 보일 수 있지만 그 바탕에는 제강사의 수익구조 개선이라는 같은 맥락이 존재한다.

특히 기준가 제도는 수요와 공급의 추이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에 반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제강사와 건설사는 기준가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다시 개별업체의 입찰을 통해 다시 가격을 결정하는 이중의 가격 결정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할인이나 저가 판매 등이 발생한다. 제강사는 이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수익성을 제고하는 가격 방침의 조정이라고 보고 있다.

더구나 직접 판매와 구매를 담당하는 업체들간의 협상이 아니라 일부 제강사와 건자회라는 단체간의 협상으로 나머지 제강사와 건설사들의 가격도 결정된다는 불합리 요소도 있다. 직접 협상에 나서지 않은 제강사들의 경우 ‘경쟁사가 결정해준 가격’으로 판매를 할 수밖에 없다.

제강사들은 이같은 가격 방침이 십수년 째 관행으로 굳어지면서 제강사의 수익성이 극도로 악화됐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2017년과 2018년 철근 판매는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호조를 띄었지만 정작 수익은 나지 않았다. 제강사들은 기준가 협상에서 이탈하고 건설사와의 거래 방식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만으로 얼마간의 수익성 제고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근본적 대책인가

문제는 수익성을 제고하기 위해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제강사의 이같은 노력이 과연 근본적 대책일 수 있냐는 점이다.

시장의 가격은 수요/공급 곡선에 의해 결정된다. 기분가 협상과 과도한 할인 관행 등이 자연스러운 수요/공급 곡선이 그려지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가격의 하락은 결국 공급이 많고 수요가 적은 상황이라는 의미다.

더구나 건설경기 전망지표는 날을 거듭할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2019년 철근 수요는 전년 대비 10% 이상 감소할 것이라 전망한다. 그러나 정작 제강사들에선 ‘철근을 덜 생산한다’는 근본적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제강사의 수익성이 저하되고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결국 공급 과잉 시장이 불러일으킨 과열경쟁에 기인한다. 이 상황에서 공급 조절이라는 근본적인 노력없이 거래 방식의 변화로 수익성의 회복을 꾀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법은 놔둔 채 ‘증’에만 천착하는 셈이다.

현재까지 건설업계와 맺어오던 거래 방식으로 수익성 저하가 발생했음을 인정하더라도 현재같은 미봉책으로는 제강사의 악화된 수익성이 근본적으로 회복될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판매가격을 올리고 저가 수주를 하지 않는다면 얼마간 수익성 회복을 도모할 수 있지만 ‘공급과잉’과 그로 인한 판매경쟁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수익성은 다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관계자들은 현재의 공급수준에서 기준가 협상이 사라지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개별 건설업체들이 최저가 입찰방식으로 철근 구매를 진행할 때 ‘기준가’도 없는 상황에서 저가 판매는 예전보다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턴키 계약 방식이 자리를 잡고 대량의 발주가 이뤄지면 저가경쟁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2018년 하반기 이미 롯데건설이 10만 톤 이상의 대량 발주를 내고 10만 원 이상의 할인을 적용받은 실례가 존재한다. 이같은 할인폭을 본 다른 대형 건설사들이 대형 계약의 이점을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국 제강사들이 근본적으로 시장상황에 걸맞는 공급 조절 역량을 보이지 못하면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근본적인 병을 치료하긴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