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글로벌 통상 규제 확대, 그 선봉에 미국 있다

2018-11-22     유범종 기자
최근 세계 각국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철강산업도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집권 하에서의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는 글로벌 보호무역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도 글로벌 통상분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본지에서는 현대제철 피동희 통상1팀 차장 기고문을 실어 글로벌 통상분쟁이 한국 철강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 사진: 현대제철 피동희 통상1팀 차장
최근 전 세계적으로 미국 중국의 경제 주도권 다툼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후 “철저한 미국 이익 우선”을 위해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전통적 제조업 분야에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수입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적으로 부강했던 미국은 계속 그 지위를 지키려고 몸부림치고 있고, 21세기 경제 강국인 중국은 그 자리를 빼앗으려고 무서운 기세로 대들고 있다.

나름 서로 파국은 피해보고자 물밑협상도 진행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실상 한국의 수출입 지표는 호조를 보인다니 무역 전쟁에 대한 체감 온도는 별나라 얘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글로벌 통상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수한 인적자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 나라의 무역장벽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산업의 쌀인 철강은 모든 나라가 사활을 걸고 지키려는 국가 생존 아이템으로 다른 어떤 무역 상품보다 수입 규제가 극심한 품목이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이 통상 규제는 수요 대비 공급과잉에서 비롯된다. 철강산업의 역사로 볼 때 중국이 본격적인 시장 경제 체제로 전환한 199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급증하는 중국내 수요로 철강 시장은 장기간의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중국내 철강사가 폭증하면서 중국 자체의 소비보다 공급량이 초과하게 됐고, 2005년 이후로 이 잉여분이 세계 각국으로 수출됨에 따라 전세계 철강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인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다.

2012년 경부터 전세계 조강 설비 능력은 20억톤을 초과한 것으로 보이며 2018년의 전세계 조강 생산량은 16억톤 이상으로 그 중에 절반이 넘는 9억톤이 중국에서 생산한다고 하니 중국산 철강 제품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악영향에 대해 전세계가 우려할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내수 수요 부진에 따라 전세계 철강 수출 물량이 증가하게 되면서 미국, EU 등 선진국의 수입 규제가 강화되고 있으며 나아가 신흥국까지 규제 조치에 동참하는 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 무역 규제 조치는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서라고 내세우지만 가격 대비 상품의 가치가 좋은 신흥국 제품이 자국 시장에 풀리면 내수 업체가 피해를 볼 것이 자명하니 그 피해를 줄이고자 수입 규제조치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특히 미국은 일찌감치 1930년에 불공정 무역 관행에 제재를 가하고자 관세법에 제재 규정을 만들었고 이후로도 많은 규제법을 사용했다.

올해 한국산 대미 철강 수출을 과거 3년 대비 70%로 제한하도록 조치한 근거인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 안보를 위협할 경우에 취할 수 있는 수단이다. 그러나 글로벌 넘버원인 미국이 불공정 거래에서 나아가 국가 안보 상의 이유까지 들먹이며 수입 제재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는 것은 글로벌 넘버원 대국다운 모양새와 맞지 않는다.

현재 많은 나라와 세계무역기구 WTO에서는 AD(반덤핑), CVD(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3가지 유형의 무역 규제 조치를 공정 무역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AD(ANTIDUMPING DUTY)는 수출 국가의 내수 판매 가격보다 수출 가격이 낮은 만큼을 퍼센트 비율로 계산해 수출 제품에 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이고, CVD(COUNTERVAILING DYTY)는 수출 국가의 정부로부터 받은 각종 보조금을 조사해 지원받은 보조금 만큼을 수입 국가의 관세로 납부하는 제도인데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이 제도들을 해마다 사용하고 있다.

세이프가드(SAFE GUARD)는 특정 품목 수입 급증에 따라 수입 국가의 업체가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경우, 특별 관세 부과 또는 수입량을 제한하는 제재 수단으로 그 특성상 상대적 보복 조치를 받을 수 있어 AD, CVD와 달리 활용도가 낮다.

우리가 눈여겨볼 제재 수단은 AD, CVD 이다. 특히 미국의 AD, CVD 제재 행태는 독보적이다. 이 두 제재 수단은 일정 기간을 대상으로 수출 업체의 내부 자료를 제출 받아 면밀한 조사를 벌이고 해당업체를 직접 방문해 제출한 자료가 사실에 근거하는지 현장 실사까지 병행한다. 또한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자료가 매우 방대할 뿐만 아니라 제출 절차 또한 매우 까다롭다.

그리고 연례재심이라는 명칭으로 매년 조사를 받는다. 5년에 한번씩 종료를 평가하는 조사가 있긴 하나 유명무실하다. 일례로 한국산 일반 강관의 경우, 미국 반덤핑 연례재심 25차 조사가 진행 중이다. 거의 30년 전에 시작된 무역 규제가 지금까지도 적용 중이다. 가히 영구 적용에 가깝다. 전 세계적으로 유럽 등 타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미국은 그렇게 무역 규제 적용에 매우 적극적이다. 최근에는 관련 법률(무역특혜연장법)을 개정해 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 상무부 조사관들에게 판정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해 법률의 적용 범위를 확대 해석해 고율의 덤핑 관세를 판정 내릴 수 있도록 방조하고 있다.

PMS(Particular Market Situation)나 AFA(Adverse Fact Available) 같은 규정이 과도한 법률 해석의 대표격이다. PMS는 조사 받는 수출국가의 내수 시장을 특수 시장 상황으로 판정하고 수출가격과 비교되는 내수판매 가격을 높게 조정하거나 또는 아예 제출된 자료를 사용하지 않고 임의로 내수 가격을 산출하여 높은 덤핑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AFA는 제출된 자료가 정해진 기한 내에 제출되지 못했거나 자료의 정합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할 경우, 불리한 추론을 적용해 높은 덤핑 관세를 산출해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이 두 가지 규정을 연결해 적용할 때 그 횡포의 치밀함이 두드러진다. 일례로 포스코는 열연강판 CVD 원심 조사 최종 판정에서 관계 회사 정보를 일부 누락했다는 이유로 AFA를 적용했고 58.68% 보조금 관세를 부과돼 수출이 불가능하게 됐다.

나아가 열연을 소재로 사용하는 유정관 AD 1차 연례재심 조사에서는 포스코 열연을 소재로 사용할 경우 특수 시장으로 판단해 생산 원가에 보조금을 더해 원가를 계산, 내수 가격을 높게 산출하였다.

그 결과 예비판정 시 덤핑관세율이 8% 였으나 최종판정에서는 24.9%의 고율 관세를 부과 받게 됐다. 업계에서는 미국 에너지 시장에서 사용되는 강관에 대한 한국산 수입을 막고자 포스코 열연에 고율의 CVD 관세를 작정하고 적용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과거 산업을 장려하고자 정부에서 세금 면제, 토지 무상 대여 등 보조금 성격의 지원이 활발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현재는 특별히 지원 받는 것이 없다. 또한 포스코에 대한 판정은 실제 보조금이 아니고 벌칙성 보조금인 만큼 여타 사항에 연결하여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해당 CVD 조사 최종 판정에서 답변업체인 포스코, 현대제철 외에 추가로 수출을 할 수도 있는 업체가 받는 “기타마진”을 산정하는데 (보통 답변 2개업체의 평균을 사용하나) 포스코 마진을 사용하지 않고 현대제철에게 부과한 3.89%와 동일 적용했다. 해당케이스에서도 적용하지 않은 판정 수치를 다른 수출품목에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부당한 사례라고 볼 수 있으며 하나의 판정이 별개의 다른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법률을 적용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행위이다.

한국 철강업계는 이러한 부당성을 알리고자 정부와 협력하여 WTO에 AFA를 제소하였고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도 부당한 판정을 받은 여러 반덤핑 케이스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여 합리적인 재판정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고율의 덤핑 마진을 적용하고자 법까지 개정했고 실제로 많은 조사 케이스에서 광범위하게 판정을 부당 적용하는 현실에서 미국의 합리적 판정을 기대할 수 없다. 이럴 때 일수록 정부와 업계가 혼연일체가 되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