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기 철근 기준가 협상의 주요 장면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빗나간 사인 -객관적인 새 책정공식 필요성 대두

2018-10-31     성지훈 기자
4분기 철근 기준가가 진통 끝에 타결됐다. 건자회와 제강사 양측이 상생의 기조 아래 대승적 합의를 이뤄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더구나 협상만 한 달을 넘게 끌면서 내년 1분기 기준가 협상을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마저 촉박해졌다.

이번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크고 작은 문제들은 제강사와 건자회 양쪽 모두에게 평가와 고민의 지점을 시사한다. 이번 협상을 난맥이었던 부자재 가격 문제를 비롯해 향후 협상에서 풀어야 할 과제들도 아직 남아있다.

결정적 장면들을 중심으로 이번 4분기 협상과정을 되짚어 봄으로 향후 협상을 대비하고 남은 과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Prologue. 전극봉 가격의 폭등

2014년 분기별 기준가 협상이 안착된 이후 이번 2018년 4분기 협상의 진통이 가장 길었다. 문제는 전극봉을 비롯한 부자재 가격이 폭등한 데 있다. 2017년 1월에 비교했을 때 현재 전극봉 가격은 5배 가량 올랐다.


지난 2018년 2분기까지 부재료 가격 상승분은 제강사 측에서 모두 감당했다. 하지만 원가 상승에 따른 제강사들의 수익 부진이 심화되면서 제강사들이 “이제 더는 안되겠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환영철강은 2018년 상반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에 비해 11% 가량 상승했지만 정작 영업 이익은 48.6%나 감소했다. 더 많이 팔고 더 적게 번 셈이다. 다른 제강사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원가 상승에 따른 수익 저하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처럼 전극봉 가격이 오르는 동안 부자재 가격을 철근 기준가에 반영하기 위한 어떤 논의와 준비도 갖추지 않은 실패에서 발생했다. 전극봉 가격이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17년 5월 께. 그때부터 수차례 기준가 협상이 있었지만 제강사 측에서는 이를 반영하자는 논의 주제를 테이블 위에 꺼내지도 않았다.

건자회 입장에서 전극봉 가격 인상과 부자재 반영 요구가 ‘급작스럽다’고 반응할 충분한 요인이다. 협상의 난맥을 만든 배경에는 협상에 나선 제강사의 ‘무신경’ 혹은 ‘무능’이 자리한다.

Scene1. 9월 19일, 동국제강의 ‘3만 원’ 인상제안

협상은 동국제강과 현대제철이 나섰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조사 여파로 두 회사는 같은 테이블에 함께 나서지 않았다. 덕분에 건자회와 동국제강, 건자회와 현대제철이 따로 협상을 진행하는 기이한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첫 번째 분기점은 동국제강이 기준가 3만 원 인상을 요구한 9월 19일에 만들어졌다. 이때까지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각각 건자회를 두차례씩 만나 협상을 진행했다. 현대제철은 기존 인상요인인 스크랩 가격 반영 2만 원에 부자재 가격 반영 2만 5,000 원을 더한 4만 5,000 원 인상 입장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동국제강이 3만 원 인상을 제안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협상 국면이 빠르게 전환됐다. 건자회로서는 동격의 협상 주체가 상이한 제안 (3만 원 VS 4만 5,000 원)을 내놓은 상황에서 굳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현대제철 안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졌다. 스크랩 가격을 반영한 인상분인 2만 원을 주장한 건자회와 3만 원 인상을 제안한 동국제강의 협상으로 테이블의 규모가 좁혀지는 듯 보였다.

동국제강의 3만 원 인상 제안 소식이 전해지자 제강 업계 전반이 불만의 목소리를 토로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3만 원 인상도 부족하다는 주장이었다. 더구나 3만 원 인상을 제안한 것이라면 실제 협상을 통한 타결 금액은 그 이하일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협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제강업계의 반발이 가시화되면서 실제 3만 원 인상 제안은 사실상 무력해졌다.


이후 동국제강은 “3만 원 인상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3만 원 이상에서 타결이 가능하다는 제안을 한 것이고 동국제강의 인상 요구는 4만 2,000 원이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Scene2. 10월 2일, ‘3만 5,000 원’의 등장

애초 9월 중 타결을 목표로 했던 협상은 양측의 입장 차이와 3만 원 인상제안에 대한 제강사의 반발로 10월로 넘어가게 됐다. 정해진 기준가 없이 4분기를 맞이하게 된 제강사들은 현대제철을 필두로 저마다 자체 기준가를 발표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기존 71만 원에서 3만 5,000 원 인상한 74만 5,000 원, 다른 제강사들은 3만 원을 인상한 74만 원을 자체 기준가로 제시했다.

4만 5,000 원 인상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던 현대제철은 동국제강이 협상 테이블에서 3만 원 인상을 제시하면서 4만 5,000 원 인상 요구를 고수하기 어려운 입장이 됐다. 결국 ‘현실성 있는 범위’에서 3만 5,000 원 인상을 제안했다.

협상주체인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3만 5,000 원 인상이라는 자체 기준가를 제시하면서 ‘3만 5,000 원’은 자연히 협상 테이블에서 제강사의 인상요구액이 됐다. 제강사는 스크랩 가격 인상분인 2만 원 + 부자재 가격 반영분 1만 5,000 원을 주장했다.

건자회는 당초 입장이었던 2만 원에서 제강업계의 수익성을 배려하는 상생 차원의 추가비용 5,000 원을 더한 2만 5,000 원 인상 입장으로 맞섰다. 건자회의 제안 액수가 오르긴 했지만 ‘기준가 책정 공식에 부자재 가격을 반영한다’는 변화는 아니었다.

Scene3. 10월, 줄다리기,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10월 11일 건자회는 총회를 열었다. 제강사와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음과 일련의 과정들을 건자회 회원사들에 알리고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건자회의 강경한 입장이 결정됐다. 일부 회원사들은 2만 5,000 원 인상마저도 인정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제강사 역시 “3만 5,000 원 인상도 많이 양보한 것”이라는 입장을 내보이며 강경한 태도를 고수했다. 수취거부와 출하중단 같은 극단적 상황에 대한 상상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3만 5,000 원 對 2만 5,000 원이라는 강경입장의 충돌은 10월 전체를 관통하며 지속했다. 양측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만남을 이어가며 협상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소득과 진전이 없이 입장차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끝났다. 일각에서 양측 입장의 중간 선인 ‘3만 원 인상’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어느 쪽도 먼저 3만 원 인상안을 제안하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10월 25일, 실수요 건설사의 마감 일정이 닥쳐오자 양측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준가 없이 마감 일정을 맞이하는 혼란이 가시화 되면서 양측에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결국 건자회는 10월 29일, 회원사를 상대로 기준가 인상액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3만 원 인상에서 총의를 모으는데 성공했다. 제강사도 건자회와 함께 서로 한발씩 양보해 타결에 이르는 데 합의했다. 강경과 초강경의 부딪힘으로 파국을 향해 달리던 평행선에 접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Epilogue. I’ll be back

진통 끝에 기준가가 결정됐지만 과제는 산적해있다. 당장 내년 1분기 기준가 협상에서 부자재 가격 반영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전극봉 가격 인상은 예상치 못한 천재지변과 같았다. 이번 협상의 난국은 이런 변수가 다시 발생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더욱이 양측이 자기 입장을 고수하면서 보낸 시간동안 가장 큰 피해는 실제 수요자와 공급자들이었다. 기준의 부재는 시장의 혼란을 부추겼다. 각자가 해석하고 주장하는 요구가 나름의 합리성을 갖추면서 평행선을 달리니 서로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측 모두를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공식’의 마련이 절실하다.

제강사로선 현재 통용되는 자체 기준가보다 책정된 기준가가 낮아지면서 발생할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다. 제강사들은 기준가 결정 전, 73만 5,000 원으로 인상고지했던 10월 마감가격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다. 기준가 하락으로 유통 가격이 동반 하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준가 협상 자체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 역시 꾸준히 제기된다. 이번 협상에선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각자 따로 협상 테이블을 차리는 기형적 협상이 이어졌다. 덕분에 서로의 의사소통 오류로 제각각 다른 제안을 던지는 헤프닝도 발생했다. 공정위의 담합 지적 등 제강사의 운신이 협소해진 상황에서 협상에 임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협상의 진통을 겪으며 발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드러난 문제들 뿐 아니라 아직 돌출되지 않은 문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다 책정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한 번 앓은 홍역을 굳이 다시 앓을 필요는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