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상압박 ‘점입가경’..韓 열연 수출 어디로?

- 미국 이어 유럽까지 무역장벽 높여 ‘설상가상’ - 열연 내수시장 ‘2차 타격’ 우려 확대

2018-08-02     유범종 기자
세계 각국이 철강에 대한 무역제재 수위를 한층 높이면서 국내 열연시장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국내 열연 생산업체들은 내수시장 포화로 수출에 대한 절박함이 커지고 있으나 수출여건이 악화되면서 생존을 위한 특단의 정책 수립이 시급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본지에서는 현 수출여건을 짚어보고 국내 열연업계의 대응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미국 이어 유럽까지..한국산 열연 수출 ‘설상가상’

최근 해외 각국의 철강 무역규제 가운데 가장 눈여겨봐야 할 국가는 미국과 유럽이다. 미국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자국 제조업 보호를 위해 맹렬한 기세로 철강 수입규제를 추진 중이다. 특히 한국을 상대로는 수출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중국산의 우회 수출 경로 제공 등을 근거로 제시하며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6년 9월 한국산 열연에 대해 12.38~57.04%의 높은 수입관세를 결정했다. 특히 국내 수출을 주도하는 포스코산 열연의 경우 58.68%의 어마어마한 상계관세 폭탄을 맞았다. 당초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높은 관세율이다.

지난 5월부터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한국산 열연에 70% 수준의 쿼터 제한도 걸었다. 그 동안 포스코는 US스틸과의 합작사인 UPI를 통해 매년 꾸준한 미국향 열연 수출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당분간 미국향 수출은 어렵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포스코는 올해 배정받은 약 37만톤 수준의 미국향 열연 쿼터량도 전량 반납한 상태다.

▲ 자료: 한국철강협회

이게 끝이 아니다. 미국만 해도 벅찬데 최근 유럽까지 무역장벽을 대폭 높이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7월 19일 발표문을 통해 “최근 3년간(2015~2017년) 유럽연합으로 수입된 철강 평균 물량의 100%까지는 무관세로 수입하고 이를 넘는 물량에는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유럽연합의 세이프가드는 최장 200일까지 즉시 발표되는 잠정조치로 글로벌 쿼터를 적용해 선착순 물량 배정이 이뤄진다. 국가별로 보장된 물량이 없다 보니 특정 국가의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면 타 국가는 수출량이 줄 수 있는 구조다.

열연코일의 경우 426만9,009톤이 글로벌 쿼터량으로 배정됐다. 한국의 지난해 유럽향 열연 수출량은 58만8,000톤으로 이번에 배정된 전체 쿼터의 10%를 상회하고 있다. 한국 열연 수출업체들이 향후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려면 글로벌 쿼터가 채워지기 전에 조기 선적 등을 통해 서둘러 최대한 수출을 진행해야 하는 조급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 자료: 한국철강협회

현재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유럽에 진출해있는 고객사 및 코일센터, 수출 트레이더 등과 조기 선적 확대에 대한 협의를 긴밀히 추진 중이나 현지 수요 여건과 국내 공장 생산 조율 등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외에 미국, 유럽연합 등 해외 각국의 수출 제한은 자칫 타 수출시장에서의 풍선효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미국, 유럽으로의 수출이 어려워질 경우 결국 기타지역으로의 수출 확대가 불가피하며 이는 해외 각국에서 수출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 열연 내수시장 ‘2차 타격’ 우려 확대

특히 최근 미국, 유럽연합의 무역제재는 비단 열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한국산 철강재 전 품목이 포함된다. 강관, 냉연 등이 열연을 소재로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열연 내수시장에서의 2차 피해까지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의 무역제재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품목은 강관이다. 지난해 한국산 강관의 미국향 수출은 약 203만톤으로 전체 수출의 65%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송유관과 유정용 강관의 경우 미국향 수출 비중이 80~100%로 사실상 유일한 수출지역이라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쿼터제 시행 이후 강관 수출은 반토막 수준까지 급감했다. 한국철강협회 통계에 따르면 6월 강관 수출은 전년동월대비 64.1% 급감한 11만2,285톤에 그쳤다. 특히 동기간 미국향 강관 수출은 1만9,271톤으로 91.2% 축소됐다. 미국향 수출비중도 17.2%에 그치며 53%p 대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냉연도 미국과 유럽의 무역제재로 당분간 수출 축소가 불가피한 여건이다. 냉연, 강관의 수출길이 막히게 될 경우 소재인 열연 소비가 급감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국내 열연시장 파이를 줄이고 판매경쟁을 격화시키는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국내 열연 내수시장은 포화상태다. 2013년 현대제철 당진 C열연공장 증설, 2014년 포스코 광양 4열연공장 증설, 2017년 포스코의 광양 3열연공장 합리화 등으로 국내 열연 생산능력은 5년 만에 600만톤 이상 늘어났다.

반면 올해 국내 열연 외판용 소비는 약 1,310만톤으로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히려 국내 주력 수요산업인 자동차와 건설 등의 부진으로 지난해보다 수요가 더 줄어들 가능성도 충분히 점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외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향후 국내 열연산업의 큰 위협이 될 것으로 예상하며 전반적인 판매전략도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대응방안은 없는가?

미국,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해외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열연 수출시장뿐 아니라 내수까지 험난한 가시밭길로 만들고 있다. 국산 열연은 대내외에서 저가 수출의 중국과 고급강종 중심의 일본 사이에 끼어 정체성과 경쟁력 측면에서 진퇴양난의 형국을 맞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은 올해 특정지역의 수출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수출지역을 다변화하는 노력과 함께 내수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한 수입대응 강화 등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대응방안 모색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이다.

또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멕시코, 인도 등 해외시장의 하공정 설비 확대를 통해 자가소비 비중을 늘리고 역내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아울러 WTO 제소 등을 통한 한국산 철강재에 대한 불공정한 규제 부분에 대해서도 적극 소명해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는 2%가 부족해 보인다. 통상은 단순히 산업뿐만 아니라 나라의 정치현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국내 철강업체들이 수출을 통한 기업 성장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의 공조는 반드시 필요한 사안으로 판단된다.

철강은 산업의 쌀이라 불린다. 철강산업이 무너지면 이와 연관된 수요산업까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를 인지하고 난무하는 해외 보호무역주의 속에서 국내 철강업체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정부가 힘을 실어줘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