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철강투자 전략, 사고의 대전환 필요

2017-10-13     박경서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자카르타사무소 대표
동남아(아세안 6) 철강시장은 세계 최대 철강수입 지역이자 한중일간의 치열한 각축장이다. 한국의 철강업계는 동남아 시장의 열세를 돌파하기 위해 한동안 수출확대와 직접투자를 저돌적으로 추진하면서 한때 이 지역 철강시장을 빠르게 침투하여 세계 철강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 투자의 성과부진에 대한 비판과 함께 동남아 시장의 철강투자도 동력을 상실하면서 이 지역 시장의 주도권 경쟁에서 중국과 일본에 밀리고 있는 형국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철강업계가 동남아 시장에서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원인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 동남아 철강시장 수입의존도 70%에 이르는 가운데 중국산 점유율 급등

글로벌 경제침체로 세계 철강시장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동남아 철강시장의 철강수요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였다. 지난 10년 동안(2006~2016) 동남아 지역 철강수요는 연평균 6.0% 성장하여 2016년에 77백만 톤을 기록하였다. 이는 최근 철강수요 정체를 보이고 있는 중국을 제외하면 국가와 지역을 통틀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그러나 이 지역 철강업계의 설비능력 부족과 경쟁력 부진으로 동기간 수입의존도(수입/소비)는 50.8%에서 70%로 확대되었다.

특히 동남아 철강수입시장에서 최근 일본과 한국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중국의 비중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것에 국내외 철강업계는 주목한다. 중국철강재의 동남아 수입시장 점유율은 2009년 18%에서 2016년 53%로 급등한 반면 한국은 한때 최고 16%(2011년)까지지 상승하였으나 지난해에는 8%로 급락하였다. 일본도 2013년 이후 중국에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준 뒤 하향세를 보여 지난해에는 19%에 머물렀다.

수입시장 점유율만을 비교하여 보았을 때 한중일 무역대전에서 중국이 일단 우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직접투자 측면을 보면 중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이 최근 포스코를 중심으로 더 많은 다양한 투자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야 정확한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동남아 시장에서 처한 상황은 매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동남아 진출 전략은 매우 소극적 입장인 반면 중국과 일본은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시장점유율은 앞으로 현재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 한국, 동남아 시장 위상 좌초 위기

한국이 2000년대 후반 이후 동남아 시장에 직접투자를 급속히 확대한 것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해 선점효과를 노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동남아 지역은 화교세력이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철강업계는 이들과 연계한 사업기반 구축이 용이하다.

또한 일본은 80년대 이후 오랜 사업경험을 통해 구축한 인적 N/W과 풍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사업 확대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동남아 시장에서 사업역사도 짧고 인적 N/W도 취약하기 때문에 이 지역을 공략하기가 위해 수출과 함께 직접진출 전략을 과감하게 추진하였던 것이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 동남아 최초 고로 일관밀을 건설하는가 하면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에 신규 건설 또는 M&A를 통해 냉연, 도금, 봉형강류 등 생산기지를 건설하였다. 그 결과 한 때 동남아 시장에서 포스코의 시장 지배력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경쟁국을 긴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가 본격적 생산으로 이어지는 시점에 불어닥친 글로벌 경제침체로 가동과 동시 대부분의 투자가 적자를 면치 못하였다.

최근 일부 법인이 흑자로 돌아서는 등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성장형 흑자가 아닌 축소형 흑자라는 점에서 동남아 지역에서 포스코의 위상이 확대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의 동남아 시장 위상은 좌초위기에 처해있다.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

◆ 경쟁상대를 상정한 게임 이론적 최적 솔루션을 찾아라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동남아 철강시장은 한중일간의 치열한 경쟁시장이다. 동남아 각국은 이러한 3국간 경쟁을 최대로 이용하고 있다. 자국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거나 자국의 국익에 유리하면 쌍방간의 기존계약도 쉽게 무너뜨리고 다른 파트너에게 손짓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카르타-반둥 고속철 계약에서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해왔던 일본을 버리고 유리한 조건을 내세운 중국에게 사업권을 넘겼다. 일본은 정부차원의 외교문제로 이슈화하여 이를 강력하게 항의하였으나 인도네시아 정부의 결정을 바꾸지 못했다. 또한 포스코가 인도네시아에 일관밀 진출시 계약서에 경쟁제품 생산 금지 조항이 있었음에도 인도네시아 측은 일본 신일철주금(NSSMC)과의 도금강판 합작을 성사시켰다.

포스코뿐 아니라 신일철과의 파트트너십 유지가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냉정한 국제시장에서 계약위반이라는 항의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계약서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인도네시아와의 합작사업에서 계약서만으로 타국의 진출을 막을 수 있다는 사고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라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이제는 좀더 치밀하고 과학적인 진출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최고경영자의 통찰력과 의지에 의존하고 단독 플레이어를 가정했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시장특성과 경쟁상대의 행동방향을 철저히 분석하는 게임이론적 사고와 전략수립이 필요하다. 우리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상대방의 대응을 예상하여 다양한 시물레이션을 시도한 후 최적의 진출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향후 중국과 일본 철강업계의 동남아 시장진출이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의 진출에 따른 이해득실을 게임 이론과 빅데이터 등을 동원하여 철저히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

◆ 단압밀 또는 봉형강류 등 실리형 진출 바람직

철강산업은 국가기간산업 중의 핵심산업이다. 그러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자국의 철강산업이 외국기업에 종속 또는 지배를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비록 자본과 기술이 부족하여 외국기업에 의존하더라도 그것은 최소한의 것에 그치고 중요정책과 경영관련 의사결정은 자국정부의 지시와 규칙을 따르기를 원한다.

그러나 과거 한국은 일부 외국 진출시 현지국가의 철강산업을 지배하려는 의도가 앞섰다. 그리하여 현지정부 및 파트너사와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항상 긴장관계와 대결구도를 갖게 되었다. 포스코는 인도네시아에 30억불을 투자한 일관밀 건설과정 내내 인도네시아 정부와 파트너사와 계속적인 견제와 불협화음을 노출하였다.

인도네시아 정부와 파트너사는 포스코가 시장지배력을 내세워 인도네시아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오히려 인니정부와 파트너사에게 한수 가르치려 하는 인상을 받고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이러한 철강산업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현지정부의 반발을 고려하여 이제는 해외진출시 대형 고로보다는 단압밀 중심의 철저한 실리형 투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일본의 경우 단압밀 중심으로 수요업계와 동반진출하여 현지정부와 마찰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도 단압밀을 진출한 태국과 베트남에서는 현지정부와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형 일관밀 건설이 현지정부에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파트너사와의 공동발전과 현지국의 경제발전 기여라는 거창한 목적은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한국은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판재류 중심의 진출을 고집해왔다. 이제 동남아 국가는 제조업보다 먼저 필요한 것이 산업 인프라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인프라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남아 시장의 봉형강류가 상대적으로 수급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는 동남아 각국이 산업인프라 건설에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향후 인프라 건설이 증가하면서 봉형강류 소비가 급증할 것이다. 봉형강류 진출검토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정치경제적 접근 방식을 지양하고 사회문화적 융합의 길을 찾아라

동남아 국가 진출 시 이제는 과거와 같이 정경유착에 의존하던 관행을 탈피해야 한다. 동남아 각국 정부는 요즘 정치개혁을 통한 부정부패 척결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시민계층 저변에서는 민주화 의식과 반부패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뿌리 깊은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고리가 쉽게 끊어질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는 지금 이른바 정치경제 개혁의 과도기에 진입해 있다. 이러한 시기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떤 것이 최적의 선택인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철강산업 투자에는 대규모 자본이 동원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개입되기 때문에 양쪽 모두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제는 투명경영이 세계적 시대적 조류이다. 법과 시스템에 의한 정도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아울러 이제는 철강산업 진출도 정치경제적 방식을 넘어 사회문화적 융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철강산업이 소비재산업이 아니라고 해서 현지인들의 관습과 문화를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자국문화의 우수성을 내세워 직장문화 및 비즈니스 문화의 이식을 강요하면 현지진출은 물론 현지사업의 정착은 요원해진다.

양국문화의 장단점에 관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자연스런 변화를 유도하여야 한다. 다행히 한국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문화가 있다. 중국인들은 과거 화교들의 행태로부터 국가발전 보다는 자사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본은 오랜 투자역사에도 불구하고 기술이전에 소홀하여 현지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하지 못하였다는 부정적 인식이 높다. 한국도 일부기업의 과도한 노동력 착취로 문제가 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기업선호도가 높다. 여기에 한류문화를 접목한다면 동남아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회복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동남아 철강시장 진출은 사고의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한국은 과거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새로운 혁신적인 전략을 마련하여 이 지역을 공략하지 않으면 중국과 일본의 경쟁적 시장확대를 지켜보아야만 할 뿐 아니라 기존시장조차 수성하기 힘들 수 있다. 동남아 시장은 만성적인 공급부족 국가로 현재 연간 8천만 톤에 가까운 철강재를 수입하고 있다.

앞으로도 각국의 산업인프라 확대 및 경제성장에 따라 철강수요가 빠른 속도로 증가할 전망이다. 동남아 철강시장 공략에 한국 철강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