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價 인상 둘러싼 ‘절박함의 충돌’

- 제강사, “납득할 수 없는 적자위기...상식 벗어난 시장” - 건설사, “거래 신뢰 깬 이기적 가격인상..납득불가” - 물러설 수 없는 대치..‘향배 가를 다양한 변수 주목’

2017-08-21     정호근 기자
비수기의 끝자락에 선 철근 시장이 긴장감에 휩싸였다. 예상치 못한 원부자재 가격폭등과 풀리지 않은 수급상황. 고심 끝에 특단의 가격인상에 나선 제강사. 크게 반발하는 건설사. 관망하는 유통업계 등 누구도 편치 않은 시황을 마주하게 됐다. [편집자 주]

■ 선택 아닌 필수가 된 가격인상, ‘벼랑 끝 승부’

현대제철을 제외한 모든 제강사가 제각각의 가격인상을 발표했다. 폭등한 원부자재 가격 등 제반여건이 얼마나 더 악화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벼랑 끝 승부에 나선 셈이다.

흑자와 적자의 희비는 기업의 숙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근 제강사는 ‘현재의 적자위기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역대 최대 수요와 최악의 공급난, 원부자재 가격폭등, 주변국 최저 판매가격 등이 극단적으로 맞물린 시장에서 적자판매가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상식적인 시장의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가격의 틀’을 깨는 문제는 제강사가 마지막까지 가격인상을 고민한 이유다. ‘당장의 부담을 줄이는 대신, 차후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철근 제강사 역시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승부수로써의 의미가 크다.

대세의 확산으로, 제강사의 가격인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다만, 시장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특히, 복잡한 장기계약으로 얽혀있는 건설사(실수요) 거래에서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숙제가 만만치 않다.

■ 유통, 거부할 수 없는 가격인상..‘기대와 우려’

유통업계 입장에서 제강사의 가격인상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유통가격이 3개월째 기준가격을 웃도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거부할 명분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제강사마다 제각각인 기준가격과 불확실한 마감에 대한 부담이 커졌다. 제강사와 건설사 사이에서 입장을 정하기 힘든 프로젝트 실수요에 대한 갈등은 더욱 걱정스러운 일이다.

유통시장은 비수기의 반전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매출과 수익 감소에 시달려온 유통시장에서 부담과 기대가 공존하게 됐기 때문이다. 남은 8월은 물론, 성수기 거래가 본격화되는 9월 이후 거래전략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수입업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됐다. 들썩이는 시세와 향후 거래여건의 변화에 따라 수입산 철근 시장의 판세도 크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가계약으로 인한 적자판매 걱정과 제한적인 재고로 성수기 시장의 승부를 걸어야하는 갈등 또한 커졌다.

■ 건설사, 신뢰 깬 가격인상 ‘납득불가’..강경론 가열

건설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뜻밖의 승부수를 던진 철근 제강사의 가격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 고민이 깊어졌다.

‘제강사가 거래의 신뢰를 깼다’는 지적으로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의치 않은 시장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일방적인 가격인상 통보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건설사들은 상대적인 관점을 반박 논리로 삼고 있다. 원부자재 가격의 폭등이 아닌, 폭락이 연출됐다면 틀을 깨는 가격인하에 나섰겠냐는 것. 또한 사활을 걸었다는 제강사의 가격인상으로, 건설사들도 사활을 걸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언제까지 적용 하겠다는 방침도 명확하지 않은 가격인상을 무작정 따라 가는 게 맞느냐”는 반문도 던져졌다.

철근 제강사의 가격인상은 최소한의 거래신뢰를 저버린 이기적인 처사라는 비난이다. 건설사 또한 계산서 수취거부 등 특단의 조치로 일방적인 가격인상을 막겠다는 강경론이 뜨겁다.

제강사를 향한 감정의 골도 깊어졌다. 공정위의 명확하지 않은 방침을 이유로, 개별 기준가격 체제로 돌아선 제강사의 태도와 신뢰를 깬 가격인상을 순수한 시각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 사선의 대치, ‘향배 가를 변수 다양’

철근 가격인상을 둘러싼 충돌은 쉽게 진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특단의 가격인상에 나선 제강사나, 저항하고 있는 건설사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사선의 대치’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은 기로에 선 현대제철이 큰 변수다. 유일하게 가격인상 발표에 나서지 않은 상태지만, 현대제철 역시 적자위기를 피하기 위한 가격인상이 절실하다. 동종 제강사와 건설사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현대제철의 선택에 따라 철근 시장이 급변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대제철의 침묵은 길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가격인상을 발표한 제강사들의 선택도 끝나지 않았다. 8월에 오른 국내산 철스크랩 가격만 톤당 5만원 이상인 상황에서, 1만5,000원~2만원의 가격인상으로 수익악화를 만회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며칠 남지 않은 8월분 마감 계산서 발행과 추가적인 가격인상에 대한 고민이 깊다.

시장여건의 변화도 주목할 변수다. 큰 자극을 받게 된 철근 시장의 거래심리와 빨라진 가을 성수기 거래 등 수급상황의 체감도 예민해졌다. 재반등에 나선 중국의 철근 가격, 철스크랩을 비롯한 원부자재 가격의 추가 상승여부 등 전반의 변수 모두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