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록 부소장
유승록 부소장

최근 킹 달러라는 말이 언론에 부쩍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의 달러화가 세계 모든 통화()’ 중에 으뜸이고, 이는 다른 국가들의 돈에 비해서 달러 가치가 월등하게 높다는 것이다. 연초 달러 당 1200원 이하였던 원화 환율은 1400원 중반 대까지 올랐다가 최근 1350대로 소폭 하락한 상황이다.

원화 환율의 상승은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대체로 반가운 일이다. 수입 물가를 올려 전반적인 국내 물가 상승이라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수출 증가로 이어져 국내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환율 급등 효과였고, 2008년 금융위기를 커다란 위기 없이 넘길 수 있었던 것도 50% 이상 상승한 환율 덕택이다. 그러나 최근 환율 상승 효과는 과거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환율 상승이 무역수지 개선 효과로 나타나야 하는데 오히려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본격적으로 원화 환율이 상승하기 시작한 금년 4월 이후 10월까지 7개월 연속으로 통관기준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수출 증가율은 하락하는 반면 수입증가율이 오히려 크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환율 상승의 효과인 수출 증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수입을 증대시키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가?

첫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크게 높아진 에너지 및 원자재 가격이 고수준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 가격이 그렇고 천연가스 가격은 금년 1월에 비해 70% 이상, 유연탄 가격은 거의 50% 상승하였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에너지 소비는 거의 줄지 않고 있다. 반대로 수출은 환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출시장 환경이 매우 악화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으로 소비가 위축되고, 최대 수출 대상국인 중국도 침체 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가격경쟁력이 제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다팔 곳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예전과 달리 국제 안정 통화 중의 하나인 일본 엔화가 오히려 원화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대일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원화 환율이 금년 초부터 11월 초까지 10개월 동안 약 18% 오르는 동안 일본 엔화는 27% 이상 상승하였다. 국제시장에서 일본의 가격경쟁력이 한국보다 더욱 상승한 것이다. 이에 따라 원/엔 환율도 1월 초 100엔당 1033원에서 11월 초에는 965원으로 하락하였다. 국내 수입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경쟁력이 그만큼 상승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제품의 한국 수입 증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철강산업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포항제철소의 침수로 생산이 중단되면서 원화환율 상승의 호기를 놓치고 있고, 오히려 국내시장의 안정을 위해 수입을 확대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현대제철 또한 노조파업으로 생산차질을 빚고 있다. 수출은 고사하고 국내시장에도 정상적인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포항제철소 복구가 완료되고, 현대제철의 파업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수출을 확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계 경기 침체와 철강 수요 감소로 수출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 철강사들은 엔화 환율의 상승을 호기로 국내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국내 철강수요업체들은 포스코의 생산 감소와 일본산의 가격경쟁력을 이용하여 일본산 철강제품의 수입을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국 철강사들은 자국내 수요 침체를 배경으로 수출 가격을 계속 낮추고 있다. 중국의 열연코일 수출 오퍼가격은 금년 1월초 톤당 774달러에서 11월 초에는 톤당 515달러까지 급락하였다. 10개월 만에 33% 하락한 것이다. 따라서 중국산의 수입 증가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철강 수요업체들은 이를 기회로 일본과 중국으로 소재조달의 다변화를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소재의 경우 새로운 수요처를 찾기도 어렵지만 한 번 시장을 잃어버리면 되찾는 것이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본산 철강재의 경우 품질 면에서 국내 수요가들의 신뢰가 매우 높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가격경쟁력마저 가지게 되었다. 국내 수요업체들이 국내산에서 일본산으로 구매선을 전환할 이유가 충분히 있게 된 것이다. 중국산 철강재도 국내산에 뒤처지지 않는 품질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 국내 철강 전문가들이나 수요업체들의 평가다. 중국산 철강재에 대한 국내 인식이 최근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만약 현재와 같이 중국산과 국내산의 가격차가 계속 이어진다면 중국산의 국내시장 점유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같이 국내 철강산업은 원화 환율이 크게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 증대가 아니라 오히려 수입 증가라는 예상외 결과에 직면해 있다. 자칫 국내의 고정고객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따라서 기존 고객과 거래를 유지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판매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수출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내 철강사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책이 필요하다.

환율 인상 이외에도 한국 철강업계는 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전기료 인상으로 원가상승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 경기 침체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비용마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수익률이 하락할 경우 재무 리스크는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출 항목들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불요불급한 비용은 지출을 연기하거나 줄여나가야 한다.

비용을 줄인다고 모든 투자를 줄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특히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는 최대한 지속되어야 한다. 기존 설비나 공장을 스마트하게 갱신하는 것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중견, 중소 철강사들에 대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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