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해 스틸데일리 기자
▲ 최양해 스틸데일리 기자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에서 유래한 말이다. 왕관을 쓴 자는 명예와 권력을 가지지만 그에 걸맞은 막중한 책임감이 따른다는 의미다. 기업도 그렇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그에 따른 책임감도 가중된다. 책임감 없는 언사는 허울에 불과하다.

안전, 안전, 그리고 또 안전. 올초부터 포스코 최정우 회장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다. 작년부터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은 데 따른 결과다. 작년 12월에는 3대 특별대책까지 내놨다.

향후 12개월 동안을 비상 안전방재 예방기간으로 정하고, 전사적으로 안전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투자비용도 대폭 늘렸다. 향후 3년 간 1조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나름의 ‘고강도 안전관리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낙제점에 가깝다.

특별대책을 내놓은 12월 한 달에만 5명이 사고로 숨졌다. 새해에도 사고가 잇달았다. 최 회장이 올해 경영활동의 최우선을 ‘안전’이라고 밝힌 지 2주 만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국민 여론과 정치권에서도 비판 수위를 높였다.

15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에서 “세계적 철강기업 포스코에서 산재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안전조치를 취하기는커녕 무책임한 태도가 계속 보이고 있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특히 지난 5년간 노동자 42명이 숨지는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수없이 적발됐음에도 포스코가 지난 10년 동안 관련 이사회를 단 한 번도 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위법 행위에 대한 이사회의 감시 의무 위반이라고도 꼬집었다.

결국 다음날인 16일 최정우 회장은 유족과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지난해 11월 광양제철소 폭발사고 당시 사과문을 낸 지 석 달 만이다. 22일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했다. 허리 지병을 이유로 청문회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식의 책임 회피가 또 한 번 질타를 받았다.

최 회장은 이 자리에서도 안전을 약속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무재해 사업장을 만들겠다”고 했다. 공식석상에서 안전을 언급한 것이 한손에 꼽기 어려울 지경이다.

실수가 계속되면 실력이다. 1조원이라는 추가 투자비용이 안전사고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비용 확대와 같은 가시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결여된 책임감부터 채워야 할 것이다. 반복된 사고와 반복된 사과. 한 끗 차이인 이 간극을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메꿔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포스코는 지난 18일 이사회 전문위원회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 안전‧보건, 지배구조 등 ESG 관련 주요 정책을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하겠다는 뜻에서다. 이사회 책임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공개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말뿐인 안전은 불감증만 키울 뿐이다. 새롭게 출범한 이 조직이 언사에 가려 옅어진 기업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다시금 색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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