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 사진: 유범종 스틸데일리 기자
국내 조선사와 후판사들의 가격협상은 항상 뜨거운 감자다.

최근 몇 년간 조선사와 후판사들의 가격협상은 단 한번도 수월하게 넘어간 적이 없다. 협상 타결이 1~2개월 지연되는 것은 예삿일이며, 때로는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반기를 훌쩍 넘겨 간신히 가격이 결정된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올 상반기 역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당초 예상보다 3개월 가량 협상이 지연되고 있다. 이처럼 양 업계의 가격협상이 치열한 공방전으로 치닫는 가장 큰 원인은 서로에 대한 높은 의존도 때문일 듯 싶다.

조선에서 후판이 차지하는 원가비중은 총 매출의 2~9% 선으로 추정된다. 평균적으로 후판가격이 1% 인상될 경우 조선사 영업이익 1~3%가 하락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비중이다. 그 동안 조선사들은 저가 수주에 따른 원가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줄기차게 후판가격 인하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국내 후판사들도 녹록하지 않은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주력 수요산업인 조선향 공급물량 축소에 따른 공장가동률 하락과 원자재가격 변동분을 제품가격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면서 후판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울러 후판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확대는 후판업체들을 더욱 궁지로 몰았다. 현재 국내 후판 총 생산능력은 1,470만톤 수준이다. 지난해 국내 후판 명목소비량이 800만톤 남짓에 그쳤던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600만톤 이상 과잉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동국제강이 2015년 포항 2후판을 폐쇄하며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후판 수요 급감으로 실질적인 공급과잉은 더욱 확대됐다. 결국 이러한 후판 공급과잉은 조선사와의 가격협상에서 후판업체들이 주도권을 내주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최근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가시화되고 있는 부분은 후판업계에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글로벌 조선 1~2위를 다투던 양사가 통합되면 유례를 찾기 어려운 매머드급 조선사가 탄생할 전망이다. 특히 대우조선을 흡수한 현대중공업은 막강한 바잉 파워(buying Power)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은 약 270만톤, 대우조선해양은 약 100만톤 수준의 후판 매입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양사의 후판 매입량을 합치면 370만톤에 달한다. 동기간 국내 전체 조선사들의 매입량이 490만톤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80% 비중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향후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품고 막강한 구매 물량을 쥐고 흔들기 시작하면 국내 후판 생산업체들의 협상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의 구매 전략에 따라 후판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사와 후판업체는 최대 소재공급사와 최대 수요처라는 특수한 관계에 놓여 있다. 어느 한 쪽이 이익을 많이 보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이익이 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동안 든든한 소재 조달의 역할을 해왔던 후판산업 경쟁력 약화는 조선사 입장에서도 결코 득이 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 상생과 공존 활로 찾기 집중해야

이제 양 업계는 상생과 공존의 활로를 찾는데 집중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후판업체들의 질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조선사들이 국산에서만 조달할 수 있는 혹은 비싸게 사갈 수 밖에 없는 강종들에 대한 선제적인 개발이 절실해 보인다.

아직까지 국내 후판 제품은 유럽과 일본에 비해 개발해야 할 강종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별업체들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 속에서 특수강종들을 개발하고 고부가 제품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앞으로 LNG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에 대한 수요 증가가 기대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특정산업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철강재 개발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조선사와는 협력체제를 구축해 위기를 타계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할 때다. 난립하고 있는 중국산 등에 대한 무역규제와 함께 조선사들이 국산 구매에 대해 일정 비중을 지켜가야만 하는 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현 후판시장이 공급과잉을 벗어나는 길은 경쟁력이 가장 취약한 업체의 구조조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안정화된 공급구조를 와해시키고 자칫하면 한국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국산과 일본산을 고가에 안방에 불러들일 수도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더 이상 각자도생을 위한 전략은 시장에 그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없어 보인다. 후판업체들과 조선사들이 장기적인 파트너쉽을 구축할 수 있다면 현 시장 부진을 탈출하는데 보다 수월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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