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동업은 안 된다’는 정설처럼 굳어진 속설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하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그로인해 다툼이 생기고, 결국에는 돈도 잃고 친구도 잃게 되는 것이 동업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속설을 깨고 보란 듯이 성공한 기업이 있다. 인천 서구 오류동에 있는 거승철강주식회사(대표 김성복, 전재황)가 그 주인공이다. 87년 설립된 이 회사는 올해로 창업 33년째를 맞는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다툼이나 갈등도 없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햇살이 봄날과 같았던 금요일, 인천 오류동 본사에서 김성복 사장을 만나 그의 경영철학과 성공스토리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거승철강(주) 김성복 사장
▲ 거승철강(주) 김성복 사장
창업부터 지켜온 신용제일주의, 남들과 다른 시각과 고민이 성공신화의 비결

거승철강(주)는 연매출 900억원대의 철강재 종합유통회사다. 2004년 지금의 위치로 공장을 옮길 당시보다 매출은 2배로, 순이익은 63%가 늘었다. 무엇이 오늘날의 거승을 만들었을까?

첫 번째는 그의 집념과 부지런함이다. 문래동에 있던 시절, 그의 철판 커팅 솜씨는 모두가 인정을 했다. 당시 제법 규모가 큰 보일러 회사에서 1개월 월급에 달하는 금액을 주고 그에게 커팅을 맡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일에 대한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가 또 있다.

하루는 특수강 봉강 하차작업 중 제품 다발이 무너지면서 엄지발가락이 봉강 다발에 끼이는 사고가 났다. 응급실에서는 발가락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통증에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지만 다음날 그는 출근을 했다. 그 때부터 ‘김성복은 집념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직도 그의 엄지발가락은 자라지 않고 있다.

거승의 가장 큰 장점은 무차입 경영과 금융권에서도 알아주는 신용이다. 결산서상 거승의 차입금 비율은 제로다. “순수 신용만으로 여신이 350억원 정도 한도가 있지만, 이 중에서 60~70%만을 사용하다가 연말이면 일단 다 상환을 합니다. 그러면 다음 달 결제해야 할 물품대금 정도만 부채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거승에는 연말이 되면 물품대금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한명도 없다.

김 사장은 창업 초기부터 이러한 원칙을 고수해왔다. 그러다 보니 회사의 전통이 됐고, 거승의 신용등급은 항상 최고등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반 제조업체의 신용보증기금 이자율이 평균 1~1.2% 수준인데 반해 거승은 0.5%다. 그만큼 금융권에서도 거승의 신용은 알아준다는 얘기다.

“은행은 기업 성장에 꼭 필요한 기관입니다. 자기 능력 범위 내에서 이용하면 절대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사용자의 욕심이 문제죠. 은행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단순히 자금의 융통문제를 넘어서, 기업의 신용, 나아가 기업가의 가치관과 직결됩니다.”

인터뷰중인 거승철강(주) 김성복 사장
▲ 인터뷰중인 거승철강(주) 김성복 사장

인터뷰 막판에 만난 IBK 부지점장은 거승의 신용등급을 묻는 질문에 말없이 ‘엄지 척’을 해 보였다. 김 사장 스스로도 오늘 날 거승이 있기까지 가장 큰 비결이 ‘신용’이라고 말한다.
성공신화의 또 다른 비결은 ‘남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경영철학 때문이다. 그는 늘 ‘저비용, 고효율’을 강조하고 스스로 앞장을 선다. 2004년 현 부지로 이전을 할 때 공장의 레이아웃부터 건설을 직접 설계하고 진두지휘했다. 당시 공장동을 99평 단위로 4동을 지었는데 모두가 이상한 구조라고 수근 댔다. 시간이 흘러 4개 공장동이 하나로 연결되고 제품 보관창고, 크레인까지 갖추게 되자 모두가 그의 안목을 인정했다. 현재 거승철강은 규모뿐만 아니라 효율성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공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위기도 있었다. IMF 당시 눈만 뜨면 부도가 나던 시설, 거승이 배서한 어음이 돌아왔다. “당시 월세를 살았습니다. 자금사정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집주인이 자금을 빌려줬습니다. 집사람이 얘기를 한 모양입니다.” 그의 진실함과 성실성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 덕분에 거승은 자신들이 배서한 모든 어음을 다 막을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김 사장은 신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고, 사업은 절대 무리하면 안 된다는 교훈도 얻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로 일궈낸 동업신화 “형님 먼저 쓰세요.”

김 사장의 고향은 충남 공주다. “대학 졸업 후 형님이 하는 철강유통업체에 근무를 하게 됐는데, 6년 동안 현장과 영업을 오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형님 아들이 회사에 나오면서 이직을 결심하였고, 당시 동료였던 전재황 사장과 동업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87년, 당시 33세였다. 두 사람은 창업이전 직장 동료였다.

무엇이 30년이 넘게 두 사람을 한배에 타도록 했을까? 김 사장은 서슴없이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라고 말한다. “어려울 때 만나다 보니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가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아무래도 자금사정이 어려울 때인데, 전 사장은 항상 ‘가정도 있으니 형님 먼저 쓰세요’라고 저를 먼저 생각해줬습니다.”

두 번째는 확실한 역할분담이다. 현재 거승철강은 김성복 사장이, 명강스틸은 전재황 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명강은 국내 최초로 레이저 절단설비를 도입했으며, 절단 절곡부터 가공까지를 모두 갖춘 경인권의 대표적인 가공업체다.

세 번째는 투명한 회계처리와 이익 배분 시스템이다. 김 사장은 스스로를 ‘월급쟁이’라고 표현한다. 아직도 모든 지출은 서로가 공개한다. 또 연 10억원씩 배당을 하는데 이 역시 양사 실적과 관계없이 50:50으로 한다.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얘기다.

“동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배려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상의를 해서 결정을 합니다. 의견이 다를 때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고, 그 방식을 먼저 따릅니다.” 동업을 생각하는 사람이 귀감을 삼을만한 대목이다.


K-BIZ AMP 총동문회장 당선… “異 업종 간 협업 분위기 조성에 힘쓸 터”

김 사장은 지난해 연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운영하는 K-BIZ 최고경영자과정(AMP) 7대 총 동문회장으로 선출됐다. 쟁쟁한 기업가를 두고 그가 총동문회장으로 당선된 데에는 그의 인맥과 사람 관리 노하우가 한 몫을 했다. 김 사장의 강점 중 하나는 독특한 사람 사귀는 법이다. 사람들은 김성복 사장을 ‘속내를 잘 알아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김 형사’다. 그러나 실상은 섬세함과 SNS를 활용하는 그의 노력 덕분이다. “누군가와 약속이 잡히면 그 사람에 대해 사전 정보를 파악하고, 면담을 마치고 나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그 사람의 간단한 특징을 적어 일일이 문자를 보냅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문자를 받는 당사자들은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AMP 총동문회장으로써 각오는 남다르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자리는 돈을 써서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자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는 회원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모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가령 K-BIZ 최고경영자과정도 다양한 업종이 있는데, 서로 다른 업종 간 협업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미 전임 중앙회장에게도 건의를 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중소기업이 안고 있는 애로사항을 개선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K-BIZ AMP를 최고의 명품 AMP로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김 사장은 인천 세무서 산하 세정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다. 이처럼 사회활동을 많이 하는 배경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많이 배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상을 넓게 보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일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중요하고, 모든 문제는 소통과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거승철강(주) 전경
▲ 거승철강(주) 전경

철강 유통은 한계 봉착, 그래서 차별화가 필요하다

30년이 넘게 철강 외길만 걸어온 사람에게 철강은 어떤 의미일까? “제가 철강업에 발을 들였을 때에는 유통은 정말 괜찮은 업종이었습니다. 밤새 일을 해도 보람도 있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수요는 제자리인데 경쟁자는 많아지고, 마진도 거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강은 필수산업입니다.

다만 시대 변화에 맞게 유통업체 변해야 합니다. 시대에 맞게 무엇으로 부가가치를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단순 유통, 단순 가공 시대는 지났습니다.” 최근 김 사장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대형 이형절단 가공이다. 남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해야 하지만 철저한 준비 없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철강유통업계는 2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대부분 유통업체에서 2세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거승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10년 후 거승철강의 모습에 대한 질문에도 “10년 정도는 회사 경영을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유능한 직원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말한다.

기업의 외형을 키우는 것과 내실을 기하는 것은 어쩌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30년이 넘게 동업을 하면서, 한 번의 다툼도 없이, 모두가 인정해주는 재무구조를 갖추고 외형을 키우고, 메이커에 큰 소리를 치면서 유통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얘기는 아니다. 김성복 사장과 전재황 사장의 동업성공 스토리는 단순한 기업 성장 얘기가 아니라 동업이 무엇인지, 철강유통업체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는지를 보여주는 성공적인 모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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