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데일리 성지훈 기자
▲ 스틸데일리 성지훈 기자
제강사의 의지가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제강사들은 지난 연말부터 시장의 거래 관행과 가격 방침을 ‘개선’하겠다며 다양한 방책들을 내놨다. 가공철근의 저가 수주를 제한하고 유통업체들에 행해지던 할인 ‘관행’을 폐기했다. 건설사들과 합의하던 ‘기준가 제도’도 폐지됐다. 모두 제강사의 ‘수익’을 제고하기 위한 방침들이다.

현재까지는 제강사의 바람대로 시장이 변모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할인이 없는 마감 계산서를 받아들었고, 건설업계는 기준가가 폐지된 새로운 거래 방식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제강사들은 팔고 싶은 가격으로 철근을 팔고 있다. 철근 유통가격은 제강사가 따라오라는만큼 따라가고 있다. 이 와중에 철 스크랩 가격이 하락하고 페로바나듐 등 부자재 가격은 다시 하락하고 있다. 제강사들의 롤마진 스프레드는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변모를 그저 ‘개선’이라고만 부르기 어렵다. 개선이란 “잘못된 점을 고쳐 더 낫거나 좋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철근의 거래방식이 개선됐다고 하려면 제강사뿐 아니라 유통업체와 건설사들도 더 낫거나 좋아져야 한다. 거래란 애초에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거래의 다른 주체들인 유통업체들이나 건설업계에겐 나아진 지점이 없다. 그들 입장에선 ‘개선’이 아니다. 어쩌면 ‘개악’일 수도.

유통업체의 경우

“제강사 앞에 데모라도 하러 갈까봐요”

1월 마감 계산서는 어떻게 됐느냐 묻는 질문에 어느 유통업체 대표가 이렇게 답했다.

1월의 철근 가경은 평균 68만 원 정도다. 제강사가 보내온 마감 계산서에는 톤당 73만 원이 적혀 있었으니 거칠게 계산해도 대략 톤당 5만 원 정도의 적자가 발생했다. 철근을 1천톤 팔았으면 5,000만 원을 손해봤고, 1만 톤 팔았으면 5억 원을 손해 본 셈이다. 팔수록 손해, 밑지고 장사한다는 장사꾼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들 하지만 1월의 철근 장사들은 정말로 다 밑지고 팔았다.

제강사는 3월엔 철근 판매 가격을 더 인상하겠다는 입장이다. 2월 판매 가격을 1월보다 4만 원가량 내리면서 판매가격의 현실화를 이뤘으니 3월에는 다시 가격을 올리겠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통업체들은 1월에 이어 2월에도 수익을 내지 못했다. 제강사가 제시한 2월의 철근 판매가격은 톤다 70만 원, 유통향의 경우 톤당 69만 원이다. 현재 시중의 철근 유통 가격은 톤당 69만 원으로 제강사 판매가격과 동일하다. 남는 것이 없다.

그동안 철근 유통시장의 방식은 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파는 ‘정상적인 시잔의 상식’에서 한발 빗겨서 있긴 했다. 철근 유통 시장의 방식은 일단 사서 더 싸게 판 다음 할인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 유통업체들은 할인을 더 받으려고 더 많이 사기도 했고 어떻게든 할인을 받으려고 현금을 쥐고 흔들기도 했다. 철근을 만들어 파는 제강사도, 철근을 떼다 파는 유통업체들에게도 무리가 오는 방식이었다.

오래된 ‘무리’는 결국 탈을 만들었다. 제강사의 수익은 떨어지고 유통 시장은 경쟁적인 저가판매, 예측 판매로 곪아갔다. 이 사단은 제강사와 유통업체의 합작품이다. 제강사의 말마따나 시장의 관행이나 거래방식에 ‘개선’이 필요할만큼 문제가 있다면 이 제강사와 유통업체들은 이 문제의 ‘공범’이다. 하지만 지금 제강사는 이 문제에서 ‘피해자’를 자처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따르는 고통을 유통업체가 고스란히 지고 있다. 제강사들은 “당분간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시장 가격이 현실화되고 안정된다”며 감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고통을 왜 유통업체들만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있다.

판매를 촉진하겠다며 “싸게라도 팔면 수익은 할인을 통해 차후 보전하겠다”는 방식을 고수해 온 건 제강사다. 제강사들의 판매 과열 경쟁의 ‘낙수효과’가 유통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친 셈이다. 하지만 제강사가 흘린 물들이 만든 사고를 수습하는 것은 왜 유통업체 혼자여야 하는가.

건설사의 경우

“너무 일방적입니다”

지난 연말, 현대제철이 기준가 협상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고 자체로 판매가격을 책정한다고 했을 때 건설사들은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사전에 일언반구도 없이 몇 년을 지속해온 방식을 일방적으로 무산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제강사 입장에선 절실한 일이었다. 건설업계는 제강사가 강력하게 주장해 온 부자재 가격 반영이나 가격 현실화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덕분에 제강사의 수익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업체에선 가공 철근을 판매하면서 기준가에서 10만 원 이상의 할인을 해주기도 했다. 당시 업계에선 ‘남는 것이 없는 장사’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지만, 같은 입찰에서 대부분의 제강사들이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을 써냈을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했다. 과열된 경쟁에서 할인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저가 수주를 하지 않겠다, 기준가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제강사들에겐 생존의 문제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도 제강사는 일방적 피해자가 아니다. 이번에도 ‘공범’이다.

제강사는 건설사와의 신규 계약에서도 일체의 할인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책정된 판매가는 해 줄 수 있는 할인을 다 포함한 것”이라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건설사들이 5만 원 ~ 6만 원 가량의 할인을 받았고, 많으면 10만 원까지도 할인을 받았던 과거와 비교하면 건설사들의 철근 구매비용이 급격히 상승할 수밖에 없다. 1년 철근 소비량을 1천만 톤으로 상정하고 구매비용 상승을 톤당 5만 원으로 어림잡으면 제강사의 거래 방식 변화로 건설사들이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은 5천억 원에 달한다.

더구나 이같은 거래방식의 변화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졌다면 건설사들은 시스템의 준비는 물론, 심지어 마음의 준비도 없이 5천억 원이라는 비용을 한 번에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강사들은 부자재 가격 반영을 비롯해 과도한 할인 유도 등으로 그동안 건설업계가 이득을 취해왔고, 제강사들은 그 이득만큼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제강사의 역할은 ‘공범’이었다. 심지어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확신범.

부자재 가격을 협상을 통해 반영하지 못한 건 (혹은 않은 건) 제강사였다. 2017년부터 폭등하기 시작한 부자재 가격에 대한 논의는 2018년 하반기에서야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자기 밥그릇을 못찾은 무능이든 찾지 않은 책임 방기든 건설업계에 화살을 돌릴 일은 아니다.

할인 경쟁도 건설사가 시킨 일이 아니다. 경기 침체로 철근 소비가 줄어들 것이고 현재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공급 과잉이 빚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우리 회사만은 철근을 더 많이 팔 것’이라며 할인 경쟁과 저가 판매를 시도하는 욕심은 삼척동자도 내지 않을 것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이득을 취하고 제강사들이 손해를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임을 건설사에만 돌릴 순 없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건설사들의 폭리로 제강사들이 막대한 손해를 본 것 같은 일방적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그리고 있다. 제강사의 무능, 혹은 과도한 욕심이 부른 손해를 왜 오직 건설사가 책임져야 하는가.

제강사의 입장은 이해가는 지점이 많다. 실제로 수익성은 악화됐고 현재의 철근 거래 방식에는 변화와 개선이 필요하다. 유통업체들은 이제 제강사들에게 손해를 보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낼 것이 아니라 제 값받고 팔아 수익을 내는 상식적인 방식으로 장사를 해야 한다. 건설사들은 턴키 계약 같은 떡밥으로 할인 경쟁을 부추기기 보다 제값에 안정적으로 철근을 살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제강사는 지금 시장에 필요한 ‘개선’에 자기들의 책임과 몫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유통업체들에게 감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분담해 나눠지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무작정 가격을 올리고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힐난 할 것이 아니라 유통업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하고 유통업체들이 견딜 수 있도록 체력을 안배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건설사, 구매자들이 이 거래의 파트너임을 인식해야 한다. 결국 거래의 개선이란 상호간의 나아짐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거래의 개선이란 ‘제로섬’의 세계가 아니다. 당장 건설업계가 수입 철근으로 관심을 돌리고 신규발주 자체를 망설이고 있는 상황에 대한 보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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