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사에게 감산은 언제나 최후의 선택이었다. 감산은 톤당 고정비 상승에 따른 원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감산은 경영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자, 경쟁력 저하를 자초하는 것이어서 감산은 선택하고 싶지 않은 선택일 수 밖에 없다.

현대제철이 금기를 깨고 철근 감산을 발표했다. 단기간 6만톤 가량 생산을 줄이겠다고 한 것이다. 당초 감산 대상에서 제외 될 것으로 알려졌던 당진제철소 철근라인도 감산 대상에 포함됐다. 원가 경쟁력에서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공장도 감산 대열에 포함된 것이다. 현대제철에게 철근 수익성 향상이 얼마나 절박했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국내 철근 가격은 연초부터 폭락했다. 70만원으로 출발했지만 58만원 전후까지 하락한 것. 그 사이 철 스크랩 가격은 등락속에서도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특히 5월 중순 이후에는 폭등세로 장이 바뀌면서 제강사의 위기감은 커졌다.

- 제강사 "두번의 기회를 놓쳤다"

철근 가격 폭락에는 연초 한파, 정부의 부동산 규제에 따른 심리 위축 등 다양한 외부 변수가 있었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한 외부 변수가 철근 가격 폭락의 주범이라고 돌린다면 무기력한 핑게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통제 불가능한 제강사의 생산이 폭락의 주 원인이다.

제강사들은 올해 철근 가격을 적정 수준에서 유지할 기회를 몇 차례 실기했다. 첫 번째는 한파로 인해 철근 재고가 불어나던 2월 시점이다. 수급 조절과 적정 재고를 위한 생산 관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오히려 밀어내기 판매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성수기 초입인 3월 시장에 부담을 가중시켰다.

두 번째 기회는 4월 찾아 왔다. 대한제강 신평공장이 사고로 가동을 멈춘 것. 대한제강과 사고 당사자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철근 업계로 봐선 수급 개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4월 제강사 판매량은 줄지 않았고, 재고도 큰 변화가 없었다. 가격을 정상화 시킬 두 번째 기회를 날린 것이다.

- "세 번째 실패는 무한경쟁 길로 가는 것"

제강사에 세 번째 기회가 왔다. 최대 철근 생산업체인 현대제철이 시장 반전을 위해 감산을 발표한 것이다. 비수기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최대 생산업체의 감산 발표는 시황 반전의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또 발표 후 시장 가격이 일부 상승하는 등 반등 조짐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현대제철만의 감산으로 시장 반전을 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동국제강 한국철강 등 주요 제강사가 공급량을 줄이지 않는다면 현대제철의 감산은 1위 기업의 시장 반전을 위한 몸부림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최후의 카드인 감산 카드 마져 날린다면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경쟁으로 가게 될 것이다.

결국 올해 실적 뿐 아니라 상당기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과거 처럼 보수를 앞당겨 조삼모사식 감산을 한다거나, 이미 계획되어 있는 전력 피크타임 조업을 통해 감산했다고 하는 속이 뻔히 보이는 감산을 하게 된다면 수급 균형은 다시 요원해 지게 될 것이다. 현 난국 타개는 전기로 제강사들의 보다 적극적인 공급량 조절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누차 지적했듯이 철근 시장은 초 호황의 끝자락에 서 있다. 양껏 생산하던 시대가 끝나고 수요에 맞는 생산을 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는 현대제철의 철근 감산 발표가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가는 신호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현대제철의 감산이 현대만의 감산으로 끝나서는 안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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